brunch

30대의 반란

by 권민정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마음속 깊이 억압되어 있던 욕구였을까? 그래서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폭발한 것일까?

그날 그녀는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아이들 양육문제로 남편에게 심한 말을 들어 기분이 나빠진 그녀, 양주를 꺼내 주스 잔에다 가득 붓고 그것을 한숨에 다 마셔버렸다. 평소 그녀는 맥주 한 잔도 몇 번에 나누어 마시고 두 잔을 마시면 취하는 주량이다. 남편 앞에서 시위하듯 술을 마신 그녀, 문소리도 요란스럽게 쾅 닫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아이들 눈치가 이상했다. 남편의 태도도 심상치 않았다. 입었던 옷도 바뀌어 있었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고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꿈을 꾼 것도 같은데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남편이 그녀에게 물었다.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그녀에게 무척 심각한 얼굴로 남편은 또 말했다.

“밥하는 게 그렇게 지겨워?”

그녀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밥하는 거 지겨워, 설거지하는 거 지겨워, 나는 공부가 하고 싶어, 하면서 당신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알아?”


그녀는 자기가 했다는 그 말이 너무 유치해서 웃음이 쿡 터져 나왔다. 남편과 싸우고 양주 한 잔을 단숨에 마셔 버리고 잠을 자던 그녀,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너무 심해서 병원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남편은 그녀의 주정 때문에 얼이 반쯤은 빠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녀는 평소에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뜰 때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하루 종일 책이나 읽었으면 하는 생각은 더러 했다.


그녀는 삼십 대 후반의, 아직 어린 세 아이 엄마인 전업주부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쓸고 닦고 치우고 나면 다시 어질러져 있는 집안,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또 다시 차려야 하는 밥상, 그녀는 주부의 일이 먼지 닦는 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닦아도 닦아도 다시 내려앉는 먼지, 그러나 닦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부질없는 일같이 느낄 때도 많았다. ‘이 일을 하려고 그 힘든 입시지옥을 치렀던가?’ 하는 생각이 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주부 역할을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니었고 어린 자녀에게 엄마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 자신 좋은 엄마가 있어 행복한 유년을 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살림살이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딸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신신당부를 하셨다.

“살림도 잘하면 참 재미있는 거란다. 재미를 붙이려고 애를 써 보렴.”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재미를 붙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녀, 이번 사건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살림을 도와줄 사람을 찾고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자기 시간을 가져 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어느 날 한나절 혼자만의 시간이 났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도서관엘 갔다. 도서관 서가에 들어가 이책 저책을 빼보며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그 후로 혼자만의 시간을 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다 문득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볼 때나, 저녁때가 되어 집에 오려고 도서관 언덕을 내려올 때 그녀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 온몸 마디마디에 퍼지는 것 같았다. 아무 이유 없이 명치끝이 아프던 증상도, 숨을 크게 몰아쉬던 습관도 어느새 사라졌다.


이전에 그녀가 직장에 나갈 때, “내 아이들이 남의 손에서 크는 걸 생각하면 회사 일도 손에 잘 안 잡혀.” 하며 화를 내곤 하던 남편도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서관에 다니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다 우연히 한 연구기관에서 현상 모집하는 논문 공모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가슴이 뛰었다. 아이들 키우느라 전업주부가 된 지 만 6년이 지났는데 어쩌면 새 직장을 얻을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자기 일을 하며 돈도 벌고 싶었다. 매달 일정한 날짜가 되면 지불 되던 수고의 대가가 그리웠다. 달이 가고 해가 지나면 경력이 인정되고 지위도 올라가는 그런 일이 하고 싶었다.


그녀는 도서관에 앉아 논문의 얼개를 짰다. 고치고 고치면서 며칠이 걸렸다. 어느 저녁의 일이다. 그녀는 저녁을 먹고 곧 책상에 붙어 앉았다. 이제는 집에서도 논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다.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놀고 있던 남편이 커피 한 잔을 타다가 말없이 놓고 나갔다.



3인칭으로 내 이야기를 썼다. 그래야 내가 할 말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별일도 아닌 사건이고, 반란이라기보다 조용한 변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은 반란과 같은 큰 사건이었다.

다행히 몇 달에 걸쳐 쓴 논문이 당선되었고, 나는 그 국가연구기관에서 추천하여 좋은 직장을 얻었다.

keyword
이전 04화광화문 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