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안 것은 몇 년 전이다. 전혀 증상이 없었는데 건강 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검진만 받다가 이번에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날짜가 정해지고 가족들에게도 알렸다. 수술이 잘 되어서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 부탁했다. 수술명은 유리체절제 황반전막수술이라고 했다.
수술하기 며칠 전 미국에 살고 있는 큰딸이 두 살, 여섯 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엄마 간병을 위해서 왔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도 있었지만,‘특별히 간병할 것도 없을 텐데 아기들을 데리고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하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가 미국에서 왔다는 소식에 둘째가 두 살, 셋째가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기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머물기 시작했다. 딸 셋과 손자 손녀 넷, 그리고 강아지까지 마치 잔칫집 같았다. 남편과 둘이서 조용하게 살던 집이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이 시끌벅적하게 되었다. 낮에는 아기들 웃는 소리, 우는 소리, 강아지 짖는 소리가 요란했고 아기들이 다 잠이 드는 밤에는 “이제 드디어 평화의 시간이 도래했도다.”하며 세 자매는 신나서 치킨을 배달시키고 이야기판을 벌렸다. 딸들과 함께 하는 남편도 덩달아 신이 난 것 같았다.
수술 날짜가 다가오자 내 마음은 좀 복잡해졌다. ‘괜히 수술하는 건 아닌가? 좀 더 버텨 볼걸 그랬나? 수술하면 책 읽는 게 좀 편해질까, 더 힘들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아 아이들과 같이 즐길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엄마 간병 온 게 아니고 놀러 왔네.’하는 고까운 마음까지 들었다.
입원하기 전날 밤, 수술받는 것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망막수술이라 해도 예전에 비해 수술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염려할 게 없다고 했지만 겁이 났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딸들은 아기들을 재우고 또 식탁에 모여 앉았다. 무엇이 즐거운지 딸들과 남편의 하하 호호 웃는 웃음소리가 방문을 닫고 누워 있는 나에게 들려왔다. 나는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큰딸에게 “너 도대체 왜 왔니?” 하고 싶은 걸 겨우 삼키고 몰래 집 밖으로 나왔다. 캄캄한 밤, 혼자 아파트 마당을 걸으며 ‘어쩌면, 남의 심정도 모르고 저렇게 재미있게 웃고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괜히 눈물이 났다. “초상집에서 술 퍼마시고 떠들며 노는 사람들하고 다를 게 뭐야.” 중얼거리며 한참을 걸었다.
입원하여 여러 검사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수술을 받았다. 부분마취로 수술하는 동안 의사 선생님의 손길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 같은 데서는 수술하면서 의사들이 농담하는 것도 보았는데 1시간 동안 “칼”, “가위” 하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
3박 4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깜짝 놀랐다. 큰딸은 동생들을 다 보내고,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내가 좋아하는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퇴원한 후에도 나는 며칠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서 안정해야 했기에 그동안 딸의 보살핌은 정말 고마웠다. 큰딸은 마치 딸 해산구완하는 엄마처럼 나를 보살폈다.
‘아, 이렇게 해주고 싶어서 그 먼 곳에서 힘들게 달려왔구나!’
나는 딸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그제야 그 마음을 이해했고 가슴이 찡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賞給이로다.”라는 시편 한 구절이 떠오르며 인생의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수술받기 전 내 마음이 심란하여 가족들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거슬렸을 때, 가시 돋친 말을 내뱉지 않고 침묵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