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별이 빛나는 밤에

은하수를 보러 와요

by 권민정

대관령에 갔다. 서울은 연일 무더운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는데, 서늘한 공기가 딴 세상 같았다. 동해안 쪽으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날씨가 차츰 흐려졌다.

다음날 아침, 비가 내렸지만 가까운 산사를 찾았다. 오대산 국립공원 깊은 곳에 자리한 상원사에 좋은 전통찻집이 있었다. 조용한 찻집,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솔잎차를 마셨다. 잘 발효시킨 향기 좋은 차였다. 잠시 더운 여름을 잊었다.


상원사에서 나오는 길에 한 여승이 우리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남편과 오랜만의 오붓한 여행길이라 차를 세우고 싶지 않았지만, 큰길까지 걷기에는 먼 것 같아 스님을 태웠다. 스님은 경남 거창에서 왔다고 하며, 야생화를 연구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야생화로 차와 생약을 만드는데, 근처에 있는 자생식물원에 가는 길이라 했다. 우리도 그곳에 가는 길이었다. 잠시 함께 차를 탔다 헤어지는 그저 스치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그 스님과 저녁 늦게까지 긴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식물원 안에 있는 벌개미취 군락지에 우리 일행은 넋을 잃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산등성이 끝이 보이지 않게 피어 있는 연보라색 꽃들이 제법 세차게 부는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었다. 벌개미취는 별개미취라고도 부른다. 별처럼 생긴 꽃모양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날씨 때문에 어제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지 못해 서운했는데, 오늘은 땅 위에 핀 별들이 그 서운함을 다 가시게 했다.

식물원을 나와서 스님과 강릉 쪽으로 같이 갔다.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대관령 구길로 들어섰다. 굽이굽이 대관령 고갯길은 비안개구름에 휩싸여 있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무서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다가도 조금 시야가 열리면 신비로운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비안개 사이로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풍경이 구름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안개구름을 바로 가까이서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산사에서 사는 스님은 그런 경치에는 익숙할 것 같은데도 신음하듯 말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참 멋진 동양화를 봅니다.”

강릉 가까이 갔을 때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산은 안개구름에 완전히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 속을 우리가 탄 차가 통과한 것이었다.

스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별 이야기가 나왔다.

“옛날 어릴 때는 마당에서 은하수도 많이 봤는데, 요즈음은 시골에 가도 도무지 볼 수가 없어요.”

내 말에 스님이 물었다.

“보살님, 은하수가 왜 안 보이는 줄 아세요?”

그는 기독교인인 나에게 보살이라 했다.

“공해 때문이겠죠, 뭐.”

내 대답에 스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별들이 우리 집으로 다 이사를 왔기 때문이에요.”

스님이 사는 암자는 차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 산골 깊은 곳에 있다 고 한다. 헤어지면서 스님이 선물을 하나 주었다. 직접 만든 산야초차(山野草茶)다.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선물 받은 꽃잎차를 마신다. 산사 찻집에서 마신 솔잎차 못지않게 향이 좋다. 차를 마시며 그 꿈속 같았던 하루를 생각한다.

맑은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보살님, 은하수 보러 안 오세요? 어젯밤에도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는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