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랜드(Badland)는 그 이름대로 나쁜 땅, 황무지이다. 배드랜드는 미국의 사우스다코타 주에 있는 국립공원인데, 보통 공원이라면 연상되는 에메랄드빛 호수나 울창한 숲 등 아름다운 경치로 인해서가 아니라 황량함이 주는 특이함 때문에 공원이 된 듯싶다. 한없이 넓은 광야에 중세기의 성곽, 교회의 첨탑,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모양의 사암으로 된 바위산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세찬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과 빙하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땅인 이곳은 정통 황무지의 진수를 보여준다. 1만 년 전부터 이 지역에 살면서 수렵생활을 해 오던 원주민 라코타 족은 그들의 언어로 이곳을 마코 시카 (mako sica)라 불렀는데 bad land 라는 뜻이다.
딸네 식구의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밴을 타고 3세대 6명이 4주 예정으로 미국과 캐나다의 국립공원을 여행했다. 딸이 살고 있는 일리노이 주를 떠나서 이틀 동안 옥수수 밭이 이어지는 대평원을 지나 사우스다코타 주로 들어서자 수우(Sioux)라는 명칭이 적힌 간판이 눈에 많이 띄었다. 수우 족은 북미 대평원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하나인데 이것은 영어 이름이고 수우 족은 스스로를 다코타, 라코타 라고 한다. 수폴스(Sioux falls) 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제일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배드랜드 국립공원이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주인공 던바 중위가 진정한 서부가 보고 싶다며 지원하여 찾아 간 곳이 이곳이며, 영화는 그가 라코타 족과 접촉하여 결국 라코타 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면적 24만 에이커에 달하는 국립공원에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은 아주 제한되어 있다. 나무도 강도 없는 사막지역인데 이곳에도 생명은 살고 있어서 ‘방울뱀조심’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걸을 수 있게 데크를 깐 곳 밖으로는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마치 화성이나 다른 혹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높고 낮은 바위산과 계곡들을 전망대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숙소는 국립공원 인근에 있는 캠프장인데 수십 대의 캠핑카가 마당에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 방 하나를 빌렸다. 맑은 여름날, 밤이 되자 하늘에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감이 좋았다. 배드랜드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여행객이 숙소를 공원근처에 잡지 않고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데 우리는 야간에 별을 보기 위해 그 곳에서 묵기로 한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별을 보지 못할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하루 종일 아주 맑은 날씨가 계속되었고 구름 한 점 없고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다. 깊은 밤, 아이들이 모두 잠 들고 어른들은 밖으로 나와 별을 보았다. 캠프장 안 불빛이 여기저기 있지만, 수천 수 만개의 별들이 밤하늘에 빛을 발하고 있었다.
딸은 남아서 아이들을 지키고 남편과 사위 그리고 나, 세 사람은 차를 타고 국립공원 깊숙이 들어갔다. 캄캄한 밤, 불빛 하나 없는 곳, 세상에 아무도 없는 사막을 30분 쯤 달려 차를 세웠다. 자동차 시동을 끄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그 경이로운 광경에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보고 싶던 은하수가 그곳에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캠프장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경,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크고 작은 별들이 쏟아질 듯하고 그 한 가운데 강처럼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얼마동안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그렇게 하늘을 보며 감탄을 하다가 갑자기 방울뱀 생각이 났다.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드러누워 하늘을 보고 싶었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생전 처음 보았다는 사위는 기어이 그 밤에 자기 처를 데리고 한 번 더 그 곳에 다녀왔다.
어두울수록, 캄캄할수록 별은 더 빛난다. 밝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