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복판, 광장에는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주말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놀러 나온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분수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결혼식이 있어 광화문에 갔다가 광화문광장을 구경하고 나니 시원한 물이 있는 청계천 길이 걷고 싶어졌다. 물가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천천히 걸었다. 다시 되돌아 청계천 입구 쯤 왔을 때 길 건너편 높은 건물 하나가 불현듯 눈에 들어왔다. 코리아나 호텔이다. ‘이 호텔이 아직도 여기 있었구나!’ 그 건물은 쭉 거기 서 있었을 텐데 나는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감회에 잠겼다.
70년대 청계천은 온갖 쓰레기와 구정물이 흐르는 개천이었고 천변에는 수많은 빈민들이 모여 살았다. 학교 신문에 청계천변 판자촌과 그곳 활빈교회 기사가 특집으로 실렸다. 대학 4학년이던 나는 그곳이 보고 싶어 같은 과 친구와 같이 청계천 판자촌을 찾아갔다. 한양대학교 뒤편 뚝방 동네였다. 처음 방문 하던 날, 도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누더기 같은 판자 집들이 청계천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구나!’
눈 여겨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 그런 세상이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또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런 곳에 교회를 세워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여러 일을 하는 목사님 가족에게 감동을 받았다. 그곳에서 어린이집 교사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졸업 후 그 일에 동참하였다. 그곳이 내 첫 직장이었다.
무척 무더운 여름 어느 날이었다. 좁은 사무실은 열기와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사무실 옆으로 악취가 코를 찌르는 청계천 물이 흐르고 있어 창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날 목사님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직원들을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햇빛 찬란한 여름 한 낮,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호텔의 호화로운 카펫을 밟으며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 대여섯 명과 여자 두 명이 호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목사님이 방 하나를 빌려 우리 일행을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호텔 방은 정말 시원했다.
지역 주민으로 교회 일을 보던 분이 방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뜨거운 물과 찬 물이 펑펑 나오고 있어!”
그는 급히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갔다. 얼마 후 연락을 받고 온 청계천변 판자촌 주민 한사람이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따뜻한 물로 가득 채워진 혼자만의 욕조에 몸을 담그는 천국을 맛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들이 사는 동네는 얼마나 물이 귀한 곳이던가. 온수는커녕 먹을 물도 귀한 동네였다. 주민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공중화장실, 수도가 없어 비싼 돈을 주고 사먹던 물. 빌린 호텔 방에서는 하룻동안 이 모든 것을 다 누릴 수가 있었다.
저녁 때 쯤 내가 집에 돌아간 후 몇 사람이 더 왔는지는 모른다. 청계천 주민 모두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며 찬물과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쓰는 상상을 하며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갈 때부터 ‘왜 하필 이런 곳에서 일을 해야 하나?’하고 화가 잔뜩 났던 나는 호텔방에서 즐거워하는 주민들을 보고 목사님이 호텔방을 빌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 황당한 발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선한 이상을 위해 일할 각오가 되어 있는 분임에는 틀림없지만 목사님이 마치 돈키호테처럼 너무 엉뚱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더운 여름 날, 고생하는 직원들을 시원한 곳에 데리고 가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따라다닌 산초 판사가 그 주인의 엉뚱한 행동 때문에 이런 저런 봉변을 당하듯이 그 방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그날 그렇게 무섭다는 중앙정보부 직원에 의해 사진이 찍히며 요주의 인물이 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우리가 호텔에 들어갈 때부터 수상하게 본 호텔 직원들은 간첩으로 의심하여 신고를 했고 우리가 있는 방에 “도와드릴 일 없습니까?” 하며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사람들이 정보부원 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그 호텔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수 십 년 그곳에 서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욕망의 장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타적인 한 사람의 엉뚱한 행동으로 행복을 누린 몇몇 사람과 그 사건을 기억하는 호텔 역시 나처럼 때때로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른다.
청계천 물가에 앉아 있던 젊은 연인이나, 광화문 광장 분수에서 즐거워하던 어린아이들이 내가 가르쳤던 그 아이들의 자녀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의 엄마 아빠와 할머니들이 수도꼭지에서 펑펑 쏟아지는 물을 얼마나 소망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더욱이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있는 세상은 꿈에도 그리던 천국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