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티턴
2.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6개의 국립공원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가기 전 설산과 호수가 아름다운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내에 있는 숙소(lodge)에서 일박을 했다. 만년설로 덮인, 해발 3000m가 넘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앞으로는 거대한 코발트빛 호수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 곳이다.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 물에 그 풍경이 그대로 반사되어 더욱 멋진 풍광을 만든다. 산봉우리들 중 하나의 이름이 모란봉(Mt.Moran)이다. 옐로스톤과 그랜드티턴에 대한 그림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풍경화가 토마스 모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이름 때문에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커피 한 잔을 들고 테라스에 앉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벅찼다. ‘태초의 세상이 저러했을까?’
옐로스톤 국립공원 내에 있는 숙소에서 2박을 했다. 밖에서 자고 다시 공원 안으로 들어오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오롯이 2박3일 동안 국립공원 내에서만 있을 수 있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첫날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차들은 움직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어딘가를 보며 환호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멈춰 서서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저 멀리 숲에 어슬렁거리는 곰 한 마리가 보였고 레인저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동하지 않고 카메라에 곰을 담느라고 야단들이었다.
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린 새끼를 데리고 있는 엄마 버펄로(아메리카 들소)들을 포함해서 백 마리가 넘는 버펄로 무리가 도로를 건너고 호수를 헤엄쳐서 이동하는 것을 본 것이다. 사람들은 차 안에서 들소들이 길을 다 건널 때까지 1시간을 꼼짝도 않고 기다려주었다. 옛날 북미에는 수천 만 마리의 버팔로가 살았고 그들은 떼를 지어 천지를 진동하는듯한 소리를 내며 대륙을 횡단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소수의 버팔로만이 보호구역에서 살면서 이렇게 천천히 길을 건너고 있었다.
레이크 루이스
3. 진찰 한 번에 500불
손자 손녀가 아직 어린데도 여행을 곧잘 한다. 차안에서도, 휴게소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쉴 때도 무척 즐거워하며 깔깔대고 잘 놀았다. 그렇게 잘 놀던 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 데빌스타워 숙소에서 무엇에 물렸는지 몸에 알러지가 생긴 것이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딸은 병원에 갈 생각은 하지 않고 마트에 있는 약국에서 약만 사서 발라주었다. 하루가 지나자 더 심해졌다. 아이는 괴로운 지 짜증을 내며 자꾸 울었다. 바로 병원에 가야할 만큼 심각해 보이는 데도 머뭇거리고 미루더니 결국에는 할 수 없이 옐로스톤 공원 내에 있는 진료소에 들렀다. 그런데 의사가 한번 진찰하고 약 주는데 500불이 넘게 나왔다. 여긴 딸네 집과 주가 달라 보험금 청구도 안될거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60만원 가까운 거금을 병원 한 번 갔다가 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다가 병을 키운다는 말이 실감났다. 집 가까이 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있고 단 돈 몇 천원으로 전문의 진료를 받고 약을 살 수 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고마움을 절감했다.
4. 우리나라 제품
자동차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히 고속도로나 주차장에 있는 차들에 눈이 간다. 놀랍게도 일본차의 미국점령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0대에 7대 꼴인 것 같다. 도요다와 혼다가 가장 많이 뜨이고 닛산, 마쯔다도 자주 보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다가도 우리 현대나 기아차가 지나가면 먼저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호텔에 가면 어디서나 LG나 삼성 텔레비전이다. 아 여기도 우리 제품이네! 하면서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다. 일본차가 너무 많은 것은 마음에 걸리면서도 우리나라 가전제품이 미국을 점령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좋기만 하니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작은 호수 위의 반딧불이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밤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 왔다. 6000마일 (9500km)의 긴 자동차여행이었다. 집 앞 테라스로 나갔다. 그동안 미국의 4개 국립공원과 캐나다의 3개 국립공원에서 지냈다. 캐나다 밴프와 제스퍼 국립공원에서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들, 가문비나무, 전나무숲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오랜만에 집 앞 작은 호수가 보고 싶었다. 여전히 잔디와 수풀에 반딧불이가 반짝이고 있다. 호수 물도 반짝거렸다. 물 위에도 반딧불이가 있나 싶어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둥근 달이 떠있다. 보름 전 날이라 그 달이 호수에 비춰 달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풍경들을 몇 주동안 보고 돌아왔다. 그런데 한번도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다만 너무 감격해서 가슴이 먹먹하고 뻐근한 적은 있다. 그런데 작은 호수 속에서 빛나는 달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 이태백이 달을 건지려고 물에 뛰어들었다더니 이런 느낌이구나.'
한참동안 뛰는 가슴이 잠잠해질 때까지 가만히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