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창문을 여니 파란 하늘이 유난히 높고 공기는 맑았다. 산들바람까지 부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날씨는 그 자체로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떠나자. 이렇게 좋은 날에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까워 길을 나섰다. 평창 동계올림픽 덕분에 강원도 가는 길이 수월해졌다.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설악산과 동해 바다를 다 볼 수 있는 속초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여행하는 즐거움에 가슴이 뛰었다.
홍천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핫바, 꼬치, 맥반석오징어구이, 호두과자 등 간식거리가 한자리에 모여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떡볶이와 통감자구이, 커피를 사서 야외탁자에 앉았다. 저 멀리 숲과 마을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맛있는 것을 먹으니 “아, 참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설문 조사한 기사가 생각났다. 한국 생활 체험 중 외국인들이 독특하게 느끼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 고속도로휴게소가 1위로 뽑혔다는 내용이다. 외국인들은 고속도로에 이렇게 큰 휴식공간이 있다는 점에 놀랐고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즐거웠다고 했다.
많은 나라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나라를 여행하며 경험했던 고속도로 휴게소 중 우리나라 같은 휴게소는 없었다. 미국 중북부 지역을 고속도로를 달리며 약 4주간 자동차 여행을 한 적이 있다. 1만 Km 가까이 달렸는데도 통행료가 거의 없이 공짜로 도로를 이용하고, 휴게소에 도착하면 탁 트인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넓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높고 파란 하늘과 구름을 보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넓은 잔디밭을 걸으며 답답했던 기분을 풀 수 있어 좋은 점도 많았다. 그러나 휴게소 안에는 화장실과 자판기 밖에 없고 사 먹을 곳이 없으니 모든 음식은 본인이 준비해 와서 먹을 수밖에 없어 한국 휴게소에서 팔던 맛있는 음식들이 그리워지곤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경험 중 잊히지 않는 곳이 독일과 이탈리아이다. 버스를 타고 아우토반을 달리는 독일 일주 여행 중이었다. 독일의 휴게소는 우리나라 휴게소보다 크지는 않지만 간단한 음식과 뜨거운 커피도 팔고 편의점도 있어 편리했다. 가이드가 지금까지 지나온 곳은 옛 서독 지역이었고 이제 통일되기 전 동독 지역으로 들어간다고 안내를 했다. 독일은 고속도로변이 거의 숲이라 무척 아름다웠는데 동독지역 역시 숲이 이어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운영이 어려워 문이 닫혀 있었다. 가이드가 다음 휴게소까지는 한참 가야 하니 급한 사람은 숲에 들어가 볼 일을 보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세계 최정상의 나라에서 어느 가난한 나라의 시골에서 당할 만한 경험을 한 것이다. 통일된 지 20년쯤 됐을 때인데도 옛 동독 지역은 서독과 그렇게 차이가 있었다. 지금쯤은 그곳도 달라졌을까 하고 휴게소에 오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이탈리아는 휴게소 커피가 정말 맛이 있었다. 휴게소 안에 들어가면 커피 향의 유혹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직접 갈아서 주는 에스프레소 맛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고 진한 환상적인 맛이었다. 휴게소는 크지 않지만 어디에서나 에스프레소를 단돈 1유로에 사서 마실 수 있었는데 아주 작은 잔에 주는 에스프레소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여행의 피곤이 풀리곤 했다. 그때 마셨던 에스프레소 맛을 잊지 못해 가끔 한국에서 주문을 해보지만 너무 진하기만 해서 잘 마시지 못한다. 무슨 차이일까 늘 궁금하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자선공연인 것 같았다. 이젠 휴게소에서 생음악까지 듣게 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가을날에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노래를 듣고 있자니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수필동인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고인이 된 K 수필가가 “나는 남편과 여행을 하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따끈한 우동 국물을 마실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기억이란 타임캡슐을 보관한 것과 같다. 행복이라는 단어와 함께 몇 년 전에 돌아가신 K 선생이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것 같이 내 기억 속에서 불려 나왔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여유로운 마음과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분이 그리워졌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보통 사람들의 추억의 장소, 어린아이에게 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속초에 도착하니 집에서 출발한 지 4시간이 훨씬 지났다. 휴게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