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바다가 시커먼 기름덩이로 검은 바다가 되었다. 은빛으로 빛나던 모래사장으로 검은 파도가 밀려들었다. 모래사장은 물론 바닷가 바위와 돌들까지 검게 변했다. 그 속에서 살던 모든 생명이 죽어갔다. 양식 중이던 굴, 바지락, 김은 폐사했다. 돌에 붙어살던 조그마한 고둥과, 돌 사이사이를 기어 다니던 작은 게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바닷새는 시커먼 기름을 뒤집어쓴 채 영문을 몰라 몸부림쳤다. 15년 전 겨울, 태안 바닷가 모습이다.
‘태안의 기적’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충남 태안 앞 바다에 정박해 있던 초대형 유조선에 크레인선이 충돌해 엄청난 양의 기름이 쏟아진 사고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몇 십 년이 지나도 결코 바다와 생태계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예상을 깨고 단시간에 회복한 모든 과정이 위대한 기록물로 남았다. 그렇게 생산된 기록물이 무려 22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유네스코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에 주목했다. 12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바다를 다시 살리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기록 유산 등재 뉴스를 듣자 그 당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고가 생긴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교회에서 기름 제거 작업에 나갈 봉사자를 모집했다. 아마 어린 아이들과 연로해서 도저히 건강이 안 되는 분들을 빼고는 다 신청했을 것이다. TV에서는 계속해서 그곳 바닷가 주민들이 눈물 흘리며 맨손으로 타르 덩이를 떠서 쓰레기봉투에 담는 모습, 부직포가 모자라 헌옷가지로 기름을 걷어내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서 돌이라도 닦자.’ 봉사자 대부분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휴가까지 냈다. 교회에서 버스를 대절하고 도시락을 준비했다. 고무장갑과 못 쓰는 수건, 헌옷가지, 갈고리 등은 각자가 준비해 갔다.
우리 교회에서 대절한 대형 버스는 20대가 넘었다. 새벽 6시에 버스는 겨울바다를 향해 떠났다. 몇 시간을 달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우주복처럼 생긴 옷을 받아 옷 위에 입었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손에는 기다란 주황색 고무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었다. 사고가 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기름 냄새가 지독하고, 바위와 돌들은 기름에 덮여 있었다. 다행히 바다에 있던 기름은 많이 제거된 후인지 검은 파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작업할 장소는 평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구석진 바닷가였다. 사람들이 촘촘하게 돌 위에 앉았다. 나도 검은 돌 위에 앉아 먼저 돌들 사이에 고여 있는 타르 덩이를 떠내고, 갈고리를 가지고 헤쳐 거기에 고여 있는 기름을 걷어 냈다. 큰 돌은 그 자리에서, 작은 돌들은 들어서 하나하나 닦아 나갔다. 마치 아기 목욕시키듯, 끈적끈적한 기름에 덮인 돌들을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아, 이제 돌들도 숨을 쉬겠구나!”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닦고 돌아서면 또 밑에서 기름이 올라왔고, 깨끗이 닦았다고 해도 돌 속 깊숙이 스며들어간 것들이 어느새 몸 밖으로 빠져나와 검게 되었다. 하루 종일 돌만 닦았다. 밀물이 되어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그 작업을 했지만, 검은 색이 조금 옅어졌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날도 사람들이 올 것이라 믿고 바다를 떠났다.
집에 돌아오며 나는 그곳 돌들을 생각했다. 긴 세월 동안 돌들은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내 옆에는 한 여중생이 앉아있었다. 예쁜 여중생은 돌이 무거워 들지 못해 아예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닦았다. 사람들이 마치 돌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애무하듯이 헝겊으로 닦고 또 닦았다. 거기 있던 돌멩이 모두, 아마도 여러 사람들의 손에 들렸을 것이다. 엄청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지만 천 년 세월동안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호강을 했을 것 같다. 돌들은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 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들었지.”
먼 훗날까지, 몸이 부서지고 깎여 모래알이 될 때까지, 돌들은 이 일을 결코 잊지 않고 소곤거릴 것 같았다.
아주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 세계가 놀란 역사가 되었다. IMF 사태 때 장롱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아기 돌 반지까지 꺼내 들고 줄서기 했던 것처럼 그때도 그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123만 명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역사를 이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