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에 있는 LG아트센터에서 연극‘토카타’를 봤다. 연극 ‘토카타’는 이탈리아어로 ‘만지다’는 의미인 ‘토카레’에서 나왔다. 손숙의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창작 신작이다.
극본 배삼식, 연출 손진책, 음악 최우정, 배우 손숙과 김수현, 춤추는 사람 역에 정영두가 출현했다.
극한의 바닥에서 느낄 수 있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반려견을 떠나보내 혼자가 된 노인, 노인이 혼잣말하듯 독백을 쏟아 낸다.
“당신 품에 안겨서 이렇게 당신 품에 안겨서 눈을 감고 누워서 나는 가벼워져요. 낱낱이 샅샅이 당신은 내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나는 내 몸을 잊어버려요. 거북이 목, 굳은 어깨, 굽은 등, 어긋난 허리, 처진 가슴, 흘러내리는 배, 늘어진 엉덩이, 앙상한 허벅지, 닳아버린 무릎, 갈퀴 같은 두 손, 나무뿌리 같은 두 발, 뒤틀려 서로 부딪치며 아우성치는 구멍 난 뼈들, 주저앉은 근육들, 촛농처럼 허물 허물한 살들, 구겨진 종잇장처럼 얇아진 살갗, 그 위에 새겨진 시간들 (중략)
오래된 창가로 가서 오래전에 내가 시장에 가서 일일이 만져보고 고른 커튼을 치고, 오래된 마루 위를 어정거리다가, 오래된 책상에 앉아 오래된 돋보기를 끼고 오래된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오래된 전등이 깜빡거리는 걸 보다가, 오래된 욕실로 가서 오래된 얼굴과 오래된 손발을 씻고, 오래된 이빨을 닦고, 오래된 침대로 가서 오래된 잠옷으로 갈아입고, 오래된 베개를 베고 오래된 이불을 덮고, 오래된 쿠션을 오래된 습관처럼 끌어안고 누워서, 오래된 벽지들을 바라보며 오래된 일들을 어제처럼 생각하다가, 오래전 사람들을 오래오래 떠올리다가 잠이 들지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오래된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고 감싸고 있고 나는 그것들을 어루만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죠. 오래된 내 몸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잠들기 전에 스위치를 내리듯이 이 오래된 생을 탁 꺼버리고 싶어요.”
연극을 보며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대사를 유튜브에 나와있는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를 반복해서 보며 기록해 보았다.
극작가 배삼식은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계의 단절 속에서 '접촉'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며 최근 몇 년 동안 희박해진 때로는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는 '촉각'과 '접촉'의 의미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존재가 살아있다고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타자와의 물리적인 접촉에 의해서일 것이다. 대상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감각으로 느끼면서 접촉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이 상호 혹은 개별적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작품 전 편을 통해 반복적으로 주제로 제시한다.
얼마 전에 15년 동안 같이 살던 반려견 하양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서인지 나는 연극에 처음부터 몰입되었다. 80세 된 손숙이 대사를 읊으며 그의 고독을 말할 때 나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이 메마른 고독을 씻고, 부드러운 절망을 걸쳐 입고 당신 품에 안길 거예요. 당신한테 노래를 불러줄게요.”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인간의 숙명 같은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어떤 위로와 희망을 보았다.
연극이 끝난 뒤 나는 한 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집 한 권을 읽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