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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Oct 02. 2023

세로의 가출

                    

  검고 흰 줄무늬가 선명한 얼룩말 한 마리가 서울 거리를 달리고 있다. 8차선 도로를 달리고, 골목을 누빈다. 얼룩말이 달리면, 달리던 차는 멈춘다.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 사이, 빈 화분이 나와 있는 주택가 골목 그리고 헬멧을 쓴 오토바이 배달원 앞에 서 있는 얼룩말의 모습은 초현실적이다. 얼룩말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친구들과 함께 초원을 달려야 어울린다. 그런데 도심을 달리는 얼룩말을 보니 마치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을 보는 것만큼 놀라움을 준다.

 

  어린이 대공원 동물원에서 살던 얼룩말 세로가 나무 울타리를 부수고 가출했다. 세로는 가로세로줄이 예뻐서 동물원 직원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3세 된 세로는 동물원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니 아프리카 초원을 알 리는 없고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탈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가 죽고 세로의 반항 시대가 시작되었다. 집에도 안 들어가고, 옆집 캥거루와 싸웠다.” 동물원에서는 세로의 탈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혼자되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속상하고 분노에 가득 찼으면, 몸태질이 얼마나 심했으면 울타리까지 부수었을까. 그렇게 부수고 나가서 생전 처음 본 풍경, 도시와 마주한 세로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참 낯설고,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동물원을 탈출한 세로처럼 이 도시 밖의 어딘가로 탈주하고 싶은, 견디고 견디다가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30대가 끝나가던 무렵, 그런 때가 있었다. 육아와 직장 생활의 어려움으로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며 직장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낙관했던 나도 문제였지만, 아이 돌봄의 문제를  전적으로 엄마 책임으로 몰아가는 인식도 문제였다. 전업주부 몇 년 만에 힘겹게 다시 얻은 직장이었는데 또 포기해야 했다. 두 번 째였다. 우울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아이들이 잠들면 밖으로 나가 걷고 또 걸었다. 밤의 도시는 낮의 도시와 다르다. 낯설었다. 그러다 사고를 당했다. 지금도 낯선 곳을 헤매다 다쳐서 꿰맨, 머리 뒤쪽 상처가 날씨가 궂은날이면 욱신거린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돌봄이 필요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좋은 직장 구하기가 힘들었다. 보호관찰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비행소년 상담자로 10년, 그 후 상담실 운영자로 10년을 일했다. 내가 만난 수많은 아이들이 가출소년이었다.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많은 아이들이 가출한 뒤 범죄에 빠지기도 하고, 일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 세상은 아이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3시간 반 동안 서울 거리를 누비다 붙잡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 세로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그 시간 동안 세로가 만난 이 도시의 어떤 것들도 세로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사람들도 세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그러나 세로가 돌아간 동물원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왜 우리는 지금껏, 전시하는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을까. 얼룩말만 해도 그렇다. 얼룩말은 원래 아프리카 대륙에 무리 지어 서식하는 동물이다. 말이나 당나귀와 달리 가축으로 길들이지 못한 유일한 말의 종이다. 그만큼 야생성이 강한 동물이다. 좁은 우리에서 외롭게 살며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감옥형 전시관 동물원은 주요 선진국에서는 20세기 중반에 이미 사라졌다고 한다. 야생에서 살다 구조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거나, 야생동물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물원으로 바뀌고 있다. 이곳에서는 동물들이 친환경적인 장소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국적인 동물을 수집해 과시하는 건 왕실과 귀족의 고급취미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트리아 쇤부른 동물원은 1752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설립했다. 전 세계에서 동물을 포획해 자국으로 들여오는 건 제국주의 열강이 힘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한때는 인간동물원도 있었다. 1889년 파리박람회는 400여 명이 전시되어 있던 흑인 마을이라는 인간동물원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제국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아프리카, 남미, 필리핀 등지에서 원주민을 납치해 신기한 볼거리 취급하며 이들을 전시했다. 뉴욕 브룽크스 동물원은 납치한 콩고의 피라미족 남성을 데려다 놓고 강제로 춤추게 했다. 그는 오랑우탄, 침팬지들과 함께 철창 속에 갇힌 채 굴욕적으로 구경거리가 됐다. 이후 그는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1907년 도쿄에서 열린 박람회에서도 인간 전시가 있었다. 이러한 잔혹한 인간 전시는 1958년 벨기에의 콩고 주민 전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세로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옴으로써 자기 존재를 알렸다. 사람들은 세로의 탈출을 응원하면서 세로가 달리는 모습을 편집해 인터넷 밈(Meme)으로 퍼다 날랐다. ‘두 발의 세로’, ‘라이더 세로’, ‘기타리스트 세로’, ‘춤추는 세로’ 등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중에는 ‘미래도시를 질주하는 사이버펑크 세로’도 있다.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과 같은 동물원은 한때 있었던 저 추악한 인간동물원처럼 사라지게 될까? 미래의 아이들은 메타버스(Metaverse)로 동물을 구경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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