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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Aug 25. 2024

코끼리의 세 가지 이미지

세계 코끼리의 날을 맞아

TV에서 코끼리  영상을 보았다.

세계 코끼리의 날 (8월 12일)은 지났지만 코끼리를 생각하며.


  상아 때문에 잔인하게 죽어가는 코끼리들, 아프리카에서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코끼리가 많아졌다고 한다. 상아 때문에 죽임을 당하니 유전적으로 변형이 온 것이다.  기후위기 때문에 죽어가는 경우도 많다.


TV에서 본 코끼리의 모습들이다.




코끼리의 세 가지 이미지


     1. 춤추는 코끼리

   아프리카 사바나에 비가 내린다. 대지를 태워버릴 것만 같던 건기가 끝난 것이다. 비는 주룩주룩 시원하게도 쏟아진다. 모든 생명이 바싹 말라죽어가던 땅, 누런 먼지 폭풍만 일던 그 땅이 초록빛으로 살아난다.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초원에 코끼리 가족이 내리 퍼붓는 빗줄기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다른 동물들은 비를 피해 어디론가 숨어 버린 모양이다. 초원 위에는 코끼리 가족뿐이다. 열 마리쯤 된다. 엄마, 언니, 오빠, 이모,  사촌들일까?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 속 주인공의 춤도 멋있었지만,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를 맞으며 코끼리 가족이 만들어내는 흥겨운 몸짓에는 비길 것이 못된다.


  환희! 그들의 춤은 바로 환희 그 자체이다. 얼마나 기다리던, 얼마나 느끼고 싶던 상쾌함일까! 그들은 그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며 행복해한다. 미소 지으며, 환호하며, 서로를 애무하며, 진흙탕 속에서 뒹굴며, 긴 코로 물을 뿜기도 하며 온몸을 흔든다.  


  땅 위에 사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졌음에도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고 오직 풀만 먹고사는 코끼리, 천성이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코끼리들의 참 행복한 모습을 언젠가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2. 죽은 코끼리

  아기코끼리들이 죽어 쓰러져 있다. 눈물이 관자놀이 부근을 온통 적셔 검게 얼룩졌다. 목이 말라죽어 간 아기코끼리들이다. 엄마를 따라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째 계속된 지독한 가뭄은 생명의 젖줄을 말려버렸다. 호수는 물이 말라 사막이 되었다. 몇십 년 전의 일도 잊지 않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 엄마조차도 어디로 가야 물을 구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타들어 가는 아프리카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건 눈물이 아니야. 죽은 동물의 몸에서 빠져나온 수분일 뿐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너무나 또렷하고 깊은 눈물 자국은 죽어가던 아기코끼리의 슬픔과 고통을 말해주는 것 같아 머리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웬 코끼리 타령….’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는 일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물 긷는데 하루해를 다 보내고, 집에서 두어 시간을 걸어가도 깨끗한 물을 구하지 못해 흙탕물을 먹는 일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라고.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의 가뭄은 이미 재앙의 수준이라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더 죽어 나갈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맑은 물을 구하지 못해 기생충이 있는 더러운 물을 마시는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죽어 간 아기코끼리의 모습 또한 그 못지않게 가슴을 아리게 했다.     

   


     3. 분노하는 코끼리

  사람이 사는 마을에 어린 코끼리들이 몰려와 길고 힘센 코로 닥치는 대로 들이받고 부순다. 사람도 코로 말아 올려 공중에 높이 던지고 땅에 떨어지면 발로 밟는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평화를 사랑한다는, 결코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않는다는, 착하고 온순한 천성을 가졌다는 코끼리가 왜 이렇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무슨 일을 당했기에 이 코끼리들은 분노와 원한, 복수심에 가득 차 있을까? 상아를 팔아 돈을 벌려고 밀렵꾼들이 어미 코끼리를 죽였을까? 욕심 많은 밀렵꾼이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어미에게서 상아를 베어간 것일까? 피투성이가 된 엄마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공포에 떨며 지켜본 것일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심리학자들은 코끼리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한다. 코끼리도 자아가 있고 감정이 있고 사람처럼 고통에 약하단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으면 슬퍼하고 오랫동안 애도하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으면 이상행동(이를 코끼리 트라우마 라 한다)을 보인다고 한다.  


   코끼리들이 상아 때문에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단지 우리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 생각 없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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