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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데기에서 별을 보다

by 권민정

평창은 자주 가는 여행지다. 여름에는 대관령음악제가 있고, 더위도 피할 수 있는 곳이라 선호한다. 오대산의 아름다운 숲과 월정사 전나무길, 상원사의 고즈넉함도 매력이다. 2시간 남짓 차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라 더욱 좋다.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안반데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중에 육백마지기와 안반데기가 있다. 육백마지기는 올라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여 엄두를 못 냈지만 안반데기는 그렇지 않아 용기를 냈다.


초행길, 밤중에 올라가는 것이 아무래도 염려가 되어 낮에 답사를 했다. 낮에도 그곳은 경치가 좋았다.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던 곳이었을까? 산 위 넓은 평원이 다 고랭지배추를 기르는 배추밭이었다. 배추 수확이 끝났는지 황토색의 밭이 잘 정리되어 이색적인 풍광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풍력 발전기가 여러 대 세워져 돌아가고 있었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밤중에 산 꼭대기를 향해 운전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기 전에 안반데기에 올라갔다. 밤을 새우고 새벽어둠이 걷힌 뒤 내려오려고 두꺼운 코트와 차에서 덮을 담요까지 준비하고 갔다. 밤에 먹을 간식과 컵라면과 보온병에 따끈한 물도 준비했다.


내일모레가 그믐이라 달이 어두워 별 보기에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덮여 있었다. 밤 3시 이후 구름이 걷힌다는 예고를 믿고 떠났다. 예상보다 빨리 구름이 걷혔다.


하늘에 북두칠성과 카시오피아좌, 삼태성이 나타나고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12시가 넘자 구름이 다 걷히고 까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반짝였다. 그 수는 작아졌지만 새벽, 거의 5시까지 별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밤 9시경부터 새벽까지 별을 보고 또 보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별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은하수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 여름날 마당에 펴 놓은 평상에 누워 보았던 그 은하수는 아니었다. 별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희미하게 은하수처럼 흐르는 것 같았지만 기억 속의 은하수는 아니었다. 풍력발전기가 없었다면 훨씬 선명하게 보였을 것

같았다. 산 위라 엄청 추울 것을 예상했으나 바람이 불지 않아 많이 춥지는 않았다. 성인이 된 후 별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녔다. 우리나라에서 별을 가장 많이 본 날이었다.


처음 안반데기 주차장에는 우리 차까지 4대가 있었다. 그런데 밤 9시경부터 차들이 자꾸 올라왔다. 주차장이 꽉 찼다. 구름이 걷히자 별을 보기 위해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올라온 것이다. 밤중이라도 운전하는데 어려움이 없는지 젊은이들은 밤에 왔다 밤중에 내려갔다.


별은 주위에 불빛이 없고 캄캄해야 잘 보인다. 별을 보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이라 모두 불빛을 조심하고 주차한 후에는 불을 껐다. 강아지, 아이와 같이 온 젊은이도 있었는데 그 차조차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남을 배려하고, 예의 바른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지 감동적이었다.


우리 앞에 주차한 차 주인은 커다란 망원경을 가지고 왔다. 망원경을 조립해서 세워놓은 후 바로 불을 껐다. 가까이 가서 인사했더니 망원경을 통해 목성을 보라고 했다. 예전에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2개를 본 적이 있는데 4개 위성을 보았다.

토성도 망원경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토성의 귀여운 고리와 토성 주위를 도는 위성 2개를 보았다. 천체지식이 많은 그에게 목성 때문에 우리 지구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산 위에서 먹는 라면에 대한 로망이 있다.

알프스에서도 컵라면을 먹었다.

그런데 안반데기에서 먹지 못했다. 컵라면과 따끈한 물까지 준비를 다 해갔는데 젓가락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밤이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일로 기억에 남는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또 다음을 기약한다.


새벽 6시, 주위가 밝아진 뒤 산에서 내려왔다. 12시간을 산에서 지낸 날이었다.

참 아름답고 황홀한 밤이었다.


안반데기에서. 친구들과 같이 온 학생들이 찍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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