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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건축법

by 권민정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간 후였다. 빗물이 들이칠까 하여 닫았던 창문과 베란다 문을 열었다. 스무 평 남짓한 작은 시골 살림집이지만 앞마당에는 넓은 잔디가 깔리고 키 큰 야자나무와 단풍, 무화과나무가 서 있다. 더운 날씨에 축 쳐져있던 나무들이 샤워를 마친 처녀처럼 상큼해져서 마치 젖은 머리를 말리려는 듯 바람에 물보라를 날리고 있다.


잘 열지 않는 뒷문을 열다가 무심코 뒷마당을 보았다. 제주의 담은 현무암으로 쌓은 것이라 바람이 잘 통해서 아주 좁은 뒷마당에도 나무들이 자라 무성하다. 돌배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키 작은 나무들, 그 아래에는 머위가 땅을 가득 덮고 있다. 거기에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신비로운 조형물을 보았다.


물을 방울방울 머금고 있는 거미집이었다. 지름이 80cm는 될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만든 것인지 둥근 거미집이 가로 세로 정교한 기하학적 무늬로 짜여 있었다. 그 거미줄 하나하나에 작고 투명한 물방울들이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것이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어릴 때 부르던 동요가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거미가 어디 있나 찾아보았더니 제일 위쪽 줄 구석에 조용히 웅크린 채 달라붙어 있다. 나는 그 집 앞을 떠나기 싫어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았다.


허공에 짓는 집, 그 작은 몸 어디에 저렇게 많은 건축자재가 있어 이토록 큰 집을 지었을까? 나무와 나무 사이, 잎들을 배경으로 하여 집을 지을 때 어둡고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조용한 뒷마당에 터를 잡았겠지. 몸속, 꽁무니에서 실을 빼 내어 나무 사이에 기초줄을 잇고 뼈대인 세로줄을 친 다음 저렇게 촘촘하게 가로줄을 이어갈 때 태고 때부터 그의 조상에게서 내려온 설계도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틀을 맞춰갔을까?


아니 어쩌면 저건 아라크네가 변신한 거미일지도 모른다. 미네르바 여신과 베짜기 시합을 할 때 베틀에 올라가 날실을 걸고 부테를 허리에 감고 잉아에 날실을 꿴 다음 재바른 손놀림으로 씨실을 북에다 물려 날실 사이에 밀어 넣던, 그 훌륭한 솜씨에 베 짜는 여신 미네르바조차 이길 수 없었지. 화가 난 여신은 아라크네의 몸에 독초 즙을 뿌렸고 그러자 아라크네의 머리에서는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코와 입이 없어졌다. 머리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줄어들었고 몸통도 아주 조그맣게 줄어들었지. 갸름하던 손가락은 양 옆으로 길어져 다리가 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배가 되고 말았어.


평소 징그럽게 보이던 거미의 모습이 베 짜는 처녀, 유능한 건축가처럼 다시 보였다. 시인 휘트먼이 거미를 가리켜 ‘조용하고 참을성 있는’존재라 칭송했던 것도 생각났다.


바람이 불었다. 물방울 무게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 집이 철렁하며 동그랗던 집 모양이 타원형이 되었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유연하고도 단단한 집이다. 그 속에서 먹이도 구하고 안식도 취하는 기막히게 잘 지은 집이다.


집 때문에 고민이 많은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났다. 결혼하여 몇 년 동안 열심히 맞벌이하여 이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나 했는데 너무 터무니없이 집값이 올라버려 다시 셋집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리 절약하고 돈을 모아도 턱없이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 때문에 절망하는 젊은이들. 그들 몸속에서도 건축자재가 원할 때마다 무궁하게 나와서 어디 빈 좋은 자리 잡아 예쁜 집을 지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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