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민정 Feb 22. 2024

부산에서의 어느 하루


  일이 있어 부산엘 갔다. 일 보는 동안에 하루가 비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낸 도시에서 나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 같은, 나 혼자만의 시간에 가슴이 설레었다. 옛 친구들을 만나볼까, 바다를 보러 갈까, 을숙도 갈대숲에 가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득히 지나간 시간을 다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추억 여행. 내가 살던 집, 내가 다니던 학교, 우리 집 그 골목, 우리 학교 그 앞길, 아직 그대로 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아버지 직장을 따라 마산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은 부산에 조그마한 일본식 집을 사서 터를 잡으셨다. 그곳엔 나와 내 동생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중학교 입학시험 성적이 좋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그때 집을 사면서 맹모(孟母)를 생각하신 것일까?


  택시 기사에게 대신동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화랑초등학교를 아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학교는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전학하던 날 어머니 손을 잡고 떨리던 마음을 진정하며 학교 마당을 지나 들어섰던 그 현관도 교실도 그대로 있었다. 전신이 부산사범 부속학교였던 이 학교는 심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이라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전학한 첫날, 나는 학생들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학생은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며, 선생님 말 한마디에도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하는 학생들만 보다가 자유분방하고 선생님께 할 말 또박또박 다 하는 학생이 있다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전학생은 적응하기 어려운 학교였지만 덕분에 나는 원하는 중학교에 잘 진학할 수 있었다.


  학교 앞길이 좁은 것에 놀랐다. 그렇게 넓게 보였던 길이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다. 길이 좁아 일방통행으로 되어 있고 길 이름이 화랑교길이었다. 화랑교길을 따라 올라갔다. 좋은 주택가는 수십 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너무나 낙후된 동네로 바뀌었지만 골목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정말 반가웠다. 전국 방방곡곡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없어진 동네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곳은 골목길도, 내가 살던 집도 그대로 있었다. 마당 넓은 큰 집은 빌라가 되고, 작은 집은 이층 집으로 바뀌긴 했지만.


  집 앞을 떠나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대문을 열고 나오다 나를 보고 물었다.


  “누굴 찾아오셨어요?”  


  아니라고 하며 나오다 다시 그 집을 돌아보는데 대문을 열고 나오는 젊은 날의 내 어머니 모습이 환상처럼 스치며 엄마의 음성이 들렸다.


  “학교 잘 갔다 왔니?”


  “아, 엄마!”


  그때 내 친구들은 어질고 부지런한 엄마가 있는 나를 참 부러워했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시험 때면 우리 집에서 밤샘을 한다고 친구들이 와서  엄마가 해 주신 간식만 먹고 놀다가, 아침이면 어젯밤 그냥 자버린 것을 후회하며 돌아가곤 하던 생각이 났다.


  ‘저 집에 살 때가  내 어머니에겐 제일 좋은 시절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화랑교길을 따라 올라갔다. 다니던 중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큰길이 나타나 길을 잃었다. 귀 밑 2센티미터 단발머리에 단정하게 교복을 입은 여중생들이 구덕산 자락에 있던 학교까지 골목을 가득 메우고 걸어 다니던 그 길이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길을 찾다 다시 택시를 타고 말았다.


  교문 앞에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전국 소년 체전 여중부 배구 우승’ 그것을 보니 배구 시합이 있는 날이면 체육관으로 응원을 다니던 생각이 떠올랐다. 선수들이 공을 받아 패스할 때마다 ‘하나 둘 셋’ 목이 터져라 소리치곤 했다.  


  교문을 들어서 오른쪽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체육관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체육관을 세우고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는지, 잊고 있던 교장선생님 얼굴까지 생각나 신기했다.      


  학교는 그대로 있었다. 바로 뒤 구덕산 숲도, 아름다운 교정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나는 등나무 밑에 앉아 구덕산을 바라보다 도서관에 가보고 싶었다. 구덕수원지가 바라보이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 울창한 숲 속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빼앗기곤 하던 곳이었다. 출입금지가 되어 있던 수원지에 건너편 남자 고등학생들이 들어와 외마디 소리를 질러 조용한 도서관의 정적을 깨곤 했다. 독서에 처음으로 취미를 붙이게 해 준 곳,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살찌우게 했던 그 장소는 아쉽게도 지금은 컴퓨터실이 되어 있었다.  


  기름칠을 하고 걸레로 닦던 마루 복도는 그때처럼 반질반질하지는 않지만 아직 쪽나무 복도로 되어 있고 깨끗했다. 복도에 ‘왼쪽으로 사뿐사뿐’이라고 쓴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 팻말을 보는 순간 시간을 되돌린 듯 여러 장면들이 눈앞을 스쳤다. 우리는 교실 바닥과 복도를 마치 안방처럼 쓸고 닦았다. 초 칠을 하여 반질반질 광을 내었고 실내화는 항상 하얗게 깨끗이 빨아 신었다. 걸을 때는 정말 왼쪽으로 사뿐사뿐 걸었다. 그러다가 무슨 급한 일이 있거나 무슨 뉴스라도 있는 날은 우르르 복도를 뛰다가 선생님이 저 앞에서 오시면 딱 멈추곤 했다. 갑자기 텅 비어 있던 복도에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보이고 그들의 햇살처럼 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나간 시간을 찾아 나선 여행에서 나는 마들렌 조각을 먹다 깨닫게 되는 프루스트처럼 감미로운 쾌감을 경험했다. 비록 그것이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는 삶의 정수는 아니라 해도 말이다. 비록 사소한 기쁨이라 해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작가의 이전글 밤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