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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Feb 24. 2024

복 있는 사람과 불쌍한 사람

시할머니의 신앙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천상병 「귀천」중에서     

     


  할머니와 시인은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해 본 적도 없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였다.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대답하였다.


  “응, 내 고향은 하늘나라.”


  그리고 당신 본적은 제주도라고 덧붙였다. 할머니가 이 땅에서 아흔다섯의 생애를 살고 당신의 고향 하늘나라로 돌아간 지 이십 년 되는 날, 많은 자손이 모여 추도예배를 드렸다.


  칠 남매를 둔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벌써 예순 명 가까운 손자와 증손자를 두셨고, 그 후 이십 년 세월 동안 자손이 백 명이 넘어섰다. 할머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증손, 고손자들은 어른들로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신 두 분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를 듣고 믿음을 이어가듯이.


   제주도는 무속신앙이 아주 강한 섬이다. 지금도 귀신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는 시기인 신구간이라는 기간에 이사를 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현대식 아파트 곳곳에서 굿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무속이 강한 땅이 제주도이다. 그런 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초대 기독교인이 되어 온갖 박해를 이겨내며 신앙을 지켜나가셨다.


  시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나중에 믿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예수 믿는 것을 반대했으나 할아버지가 제사 문제로 재산도 다 빼앗기고 멍석말이를 당해 몇 번이나 죽을 뻔하는 등 친족들에게 너무 심하게 당하니 마음이 할아버지에게 돌아섰고 그 이후에는 같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추도식에 모인 아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조상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이 도와 홍해 바다가 갈라지거나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생명을 건진 이야기와 같이 옛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고난 받은, 그러나 승리한 이야기를 어른들에게서 재미있게 들었다.


  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 생각을 하였다. 나에게는 할머니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있다. 내가 결혼하던 해 할머니는 아흔두 살이었는데 당신의 막내아들이신 내 시아버지가 모시고 사셨기 때문에 가까이 뵐 수 있었다.


  할머니는 참 단순한 분이어서 사람을 보는 기준이 아주 간단했다. 할머니에게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의 손주며느리의 친정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도 아닌 사돈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어떻게 그냥 보고 있겠는가. 할머니는 고심하고 또 고심하였다. 매일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하고 전도의 길을 찾았다. 드디어 할머니는 한 방법을 찾아내셨다. 우리 부부가 휴가를 받아 시골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는 녹음기와 빈 카세트테이프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하였다.


  “ 서울 사는 사돈님께 꼭 할 말이 있어….”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설교는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성경말씀 중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와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불 속에서 고생하는 부자  이야기를 하며 꼭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늘나라로 돌아갈 것을 간절히 기도하며 끝을 맺었다.


  예수는 믿지 않지만 예의 바른 친정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돈 할머니가 보내주신 카세트테이프를 끝까지 다 들으셨다. 심한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의 말을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 친정 부모님은 할머니의 생전 기도와 설교 덕분인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몇 년이 지나 예수 믿는 복 있는 사람이 되셨다.


  내가 기억하는 시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눈빛이 총총하고 목소리가 쨍쨍하시던 참 복 있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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