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말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사전에 의하면 '시련'이란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를 뜻하기도 하고, 의지나 사람이 되는 것을 시험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시련을 겪는 시점은 다를 거지만 저에게 첫 시련은 아마 초등학교 5학년일 것입니다. 살면서 수많은 시련을 겪고, 겪을 예정이지만 시련이 긍정적인 효과와 내면의 성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솔직함입니다. 어떤 사람은 솔직함이 장점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너무 솔직한 것은 지나치고 사회생활 잘하는 방법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제 얘기를 참고하시면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춘기라는 것은 12살 즈음부터 시작하기에 저도 제 의견을 표출하고 싶은, 반항적일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께 항상 예의 바른 모습만 보여드리려던 제가 독립적으로 살고 싶고 내 뜻대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부모님께 여러 번 했습니다.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되돌아보며, 솔직함이 내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내 의견을 서슴지 않게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나니까요.
제 꿈이라고 생각했던 '판사'라는 직업은 그저 어른들이 좋아하는 명예가 따르기에 인정욕구가 있었던 저에게는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일인지는 몰랐기에 중학교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나를 위해 접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은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약 10년 동안 내 장래희망을 없애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이제 왜 공부를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되고 싶은 것도 나랑 맞는 것도 없어서 학업 집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부모님께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자녀의 새로운 모습을 본다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1+1은 3이라고 자부했는데 알고 보니 2였던 것이나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생각지 못한 독립적인 자세와 고집이 센 내 모습이 어색했던 부모님과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크게 싸웠습니다. 늘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었고, 꼴 보기 싫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부모님은 내가 내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냥 버릇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저 자신은 솔직하고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멀어졌습니다. 독단적이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는 건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것이고, 소통이 전혀 되지를 않아 원래 친하던 친구도 저를 멀리하게 되고 '따돌림'이라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인간관계에서는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내 꿈에 대한 식은 열정까지 모두 잃어버린 저는 성적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지면서 모든 게 버겁기만 했습니다.
"왜 나만 미워하지? 왜 이렇게 힘들지?"
이 생각만 계속 되뇌면서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못했죠. 코로나가 터지고 개학이 4월까지 미뤄지면서 예비 6학년의 저는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냥 계속 누워서 작년에 왜 난 힘들었을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되돌아보니 너무 솔직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습니다. 친구를 더 만들고 싶고 내가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내 매력인 솔직함을 더 드러내려고 했는데, 도리어 상대방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려고 하고 상대방을 고려하니까 인간관계가 그제야 좀 잘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다고 솔직함이 꼭 불필요한 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맞지 않거나 힘들면 솔직하게 말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힘들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오해할 수도 있고 마음속의 힘듦은 점점 곯아가니까요. 보통 말하는 솔직함에서 '정의감'이라는 것이 분명해서 내가 이 사회를 고치겠다는 마인드는 틀린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도덕적인 사회로 만들겠다는 그런 마음 가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명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통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 일관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앞서내는 것입니다. 솔직함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남들과의 소통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5학년에게 첫 시련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함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주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준 첫 계기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시련은 그리 나쁜 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 상황을 기억하는 친구들과 불편함을 겪었던 친구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나중에는 다시 잘 어울리게 되었을 때 다시 친해지고 잘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친구들에게 고마웠습니다. 나 자신만 생각하다 보니 나 혼자였고, 외로움과 고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우리 인간은 소통하고 interact 하는 동물로써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배려하고 조금씩은 참아주는 것이 제 인생 교훈입니다. 만약 제 글이 와닿지 못한다면 아마 몸소 겪으면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 글을 참고하여 표출하고 싶은 대로 표출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