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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삭발하던 날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by 쌍기역

우리집엔 나만 여자고 남편과 아이들은 모두 남자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주무시는 방과 침구, 화장실은 내가 챙기게 됐고, 덕분에 엄마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눈치챌 수 있었다.

1차 항암이 끝나고 2차 항암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욕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부쩍 많아진 걸 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머리를 밀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막연히 상상만 헸던 순간이 눈앞에 닥치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욕실 바닥의 머리카락을 조용히 치우고, 침구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돌돌이로 정리한 뒤 이불을 세탁했다. 그런데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던 어느 날, 엄마의 어깨 위로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깨에 있는 머리카락을 조용히 떼어내고 있던 나를 보며 엄마가 먼저 말했다.

"머리카락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나는 조용히 돌돌이를 가져와 엄마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정리해드렸다. 그리고 다이소에 가서 작은 돌돌이를 사와 엄마 방에 놓아드렸다.

엄마는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내릴 때마다 깊어지는 그 눈빛을.

엄마는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2차 항암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최대한 평소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일 예약할까? 근처에 1인 미용실이 있어"

그날 밤, 나는 혼자서 눈물을 훔쳤다. 작은엄마의 유방암 투병 경험이 있어서 언젠가 이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저 조심스러웠다.

미용실 예약을 하면서 원장님께 엄마가 항암 치료 중이라고, 6mm 정도로 커트할 예정이라고 메모를 남겼다. 원장님은 6mm가 너무 짧을 수도 있다며 12mm로 잘라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 알아서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커트가 시작됐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갔다. 나는 묵묵히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엄마, 머리 자르니까 할아버지랑 너무 닮았어"

엄마가 빙그레 웃었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아버지는 삭발하신 채 갓을 쓰고 계셨고, 두상이 크신 편이었다. 엄마가 삭발을 하니 그 모습이 떠올랐다. 전날 밤 그렇게 울었는데, 엄마는 홀가분한 얼굴로 미용실을 나섰다. 나도 이상하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날 밤 동생이 물었다.

"가발이라도 하나 사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모자쓰시면 되지. 무슨 가발이야. 불편하시잖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한 생각이 들면 어쩌나 싶어 쿠팡에서 가발을 몇 가지 주문했다. 비싼 것, 저렴한 것, 모자가 달린 것, 긴 머리까지 다양하게.

다음날 가발이 도착하자 엄마는 "무슨 가발이야, 모자쓰면 되는데"라고 하면서도 하나씩 꺼내 써보셨다.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모양을 다듬고, 머리를 쓸어내리며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도 사실 이걸 원하셨던 거구나.'

여러 개를 써본 끝에 엄마는 한 가지를 골랐다. 자연스러워 보이고, 착용감도 편안한 가발이었다. 전화로 소식을 들은 아빠도 "무슨 가발이냐"고 하셨지만, 엄마가 외출할때마다 쓰신다고 하니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엄마는 삭발한 날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머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이 놀랄까 봐 절대 모자를 벗지 않았고, 몸이 아플 때조차도 혼자 욕실에서 씻고 머리까지 감으신 뒤 모자를 쓰고 나오셨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고, 우리는 여전히 함께였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엄마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건, 결국 우리 가족 모두의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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