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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내가 뭘 해드릴 수 있을까?

by 쌍기역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오던 우리가, 이제는 한 지붕 아래에서 다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엄마와 내가 함께 살았던 시간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어릴 적, 셋째 고모가 "큰 도시에서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엄마를 설득했고, 덕분에 나와 언니는 시골을 떠나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 언니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에는 둘째 고모댁에서 언니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1년쯤 지나 고모댁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작은아빠댁으로 이사했고, 거기서 몇 년을 살았다. 작은아빠댁에서는 할머니와 작은엄마, 그리고 사촌동생 세 명과 함께 지냈다. 잘해주신다고는 했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작은아빠의 간섭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대학은 무조건 광주를 떠난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후로 내 거처는 끊임없이 바뀌었다. 셋째 고모댁에서도 몇 달을 살다가 다시 작은아빠댁으로 돌아왔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언니와 함께 살았다. 이렇게 이사를 반복하며 독립된 생활을 이어오다 보니,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은 중학교 1학년 이전으로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시골집에 가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시골집에는 이제 내 물건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겨우 몇 장의 가족사진과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엄마와의 동거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동시에 걱정도 앞섰다. 오랜 시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우리가 다시 함께 살아간다니. 거기에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상황이라 나도 나지만, 엄마가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엄마가 세브란스에 입원하셨다가 11월 28일에 퇴원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어느새 2개월이 흘렀다. 처음 1~2주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엄마 밥을 차려드리고, 아이들 밥을 챙겨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다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졌다. 그도 그럴것이 엄마가 계시니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내가 피로에 허덕이고 있는 사이 다행히 우리 집 생활에 익숙해지신 엄마는 이후부터 나보다 머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시고, 스스로 밥을 챙기셨다.

우리의 생활은 항암 치료 주기에 따라 바뀌었다. 항암 후 첫 주는 엄마가 힘들어하시기에 내가 주로 움직였고, 다음 주에는 반반씩 일을 나눴다. 세 번째 주쯤 되면 엄마는 다시 기운을 차리셔서 반찬을 만들고 집 정리까지 하셨다. 그렇게 손발을 맞추며 지냈다.

다만, 설거지 거리가 몇 개만 나와도 바로 하시는 엄마 덕에 나와 남편은 부지런해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집에 방은 3개다. 안방, 첫째 방, 둘째와 내가 함께 쓰는 방. 하지만 둘째 방에는 장난감이 가득해 비교적 정돈된 첫째 방을 엄마가 쓰시도록 했다. 그 결과 안방에서 네 명이 함께 자는 상황이 되었다. 발차기가 현란한 첫째 덕분에 나와 남편은 번갈아 가며 소파에서 자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적응이 되었다. 지금도 소파에서 잘 때가 있지만, 모두 안방에서 자는 날도 있고, 엄마와의 동거 역시 조금씩 우리만의 편안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도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걸 무척 좋아했다. 첫째는 혼자 자는 걸 싫어했는데 매일 안방에서 함께 잘 수 있어서 좋아했고, 할머니가 먹고 싶은 걸 물어보시고 사다 주시는 것도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둘째는 매일 아침 할머니에게 안기고, 어린이집에서 돌아와도 제일 먼저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있다.


가끔은 이 동거가 낯설고, 익숙했던 생활이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웃으며 할머니 품에 안기는 모습, 엄마가 우리를 위해 작은 반찬을 하나 더 만들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훗날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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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2024년 크리스마스, 2025년 설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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