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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당장 엄마 입원시켜

네?? 어디로요??

by 쌍기역

급변하는 상황

엄마의 바로 위 이모, 즉 셋째 이모의 첫째 딸은 산부인과 의사다.

엄마와 셋째 이모는 20대 때 서울에서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두 분이 전화로 자주 소통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모네는 광명에, 우리는 전남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왕래가 잦지는 않았다. 특히 이모가 두 딸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이모가 내려오실 때 내가 시골에 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모의 딸들과 친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모의 둘째 딸과 나는 동갑임에도 서로 말을 편하게 놓지 못하고 데면데면한 관계였다. 연락처를 알리가 없고, 평생 얼굴을 마주한 것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이모의 첫째 딸, H언니가 산부인과 의사라는 사실도 내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더군다나 H언니는 올해 8월, 자녀 유학 문제로 두바이로 떠난 상태였다. 이 사실을 엄마를 통해 들었기 때문에, H언니에게 어떤 도움을 기대한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엄마의 수술 날짜가 가족과 이모에게 공유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끼는 동생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도 충격적이고 속상한데, 수술 날짜마저 한참 뒤라니... 이모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으셨던 것 같다. 결국 두바이에 있는 H언니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셨다.

H언니는 평소 부탁이나 친척 간 연줄을 이용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모로부터 엄마의 상태를 전해 들은 언니는, 엄마가 난소암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듯했다. (복수가 찰 경우 난소암일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는 인턴 시절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했었고, 그 당시 잘 알고 지냈던 교수님이 계셨던 모양이다. 이모의 간절한 부탁을 들은 언니는 결국 교수님께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엄마를 받아주시라 부탁을 했나보다.


이 모든 일이 11월 21일 목요일, 오후 5시 이후부터 벌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전화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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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이모가 내일 당장 세브란스에 입원부터 하라고 했어.

(??? 입원을 어떻게 하죠??? 그냥 가서 입원할게요. 하면 될까요?)

엄마와 이모가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순간부터 너무 급해 보이셨다.

"나 지금 당장 올라갈 거야."

이런 말씀을 계속하시자, 나는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와 아빠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무작정 세브란스를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맞는지 의무이었다. 또 입원 할 때 "타 병원 진료 금지" 항목에 사인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일이 될까봐 걱정스러운 점도 있었다.

"내일 금요일인데, 첫차를 타고 출발한다고 해도 서울에 도착하면 오후 2~3시인데, 고속터미널에서 세브란스를 가면 4시~5시에요. 이 시간에 입원이 가능하다고요??"

나는 아빠에게 엄마를 진정시켜 보라고 부탁했다.


이후 이모의전화가 이어졌다.

이모 : 내일 당장 엄마를 입원시켜. 근데 아빠가 같이 안간다고 하는 것 같은데, 네가 아빠를 설득해봐.

이어 외삼촌도 연락이 왔다.

외삼촌 : 내가 이모랑 통화를 하고, 엄마랑도 이야기를 나눴어. H가 입원을 하라고 한 모양이더라. 내 생각엔 네가 H와 직접 통화해서 정확히 확인한 다음, 엄마와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

그렇게 다시 이모, 작은엄마, 고모, 아빠, 그리고 병원에 전화를 돌리며 확인하려고 했지만,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H언니가 말하길, 세브란스 병원 원무과는 오후 7시까지 통화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오후 5시까지만 연결이 가능했다. 또 세브란스 병원 누구와도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순천향대 수술 날짜를 받아놓은 상황에서 무작정 세브란스로 옮기는 게 옳은 일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엄마가 당장 올라가겠다고 하셨지만, 이미 버스는 끊겼고, 나주역에서 KTX를 타야했다. 아빠가 동행하지 않는다 하시면, 이모는 택시를 타서라도 타고 나주역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내일 아침에 출발하시는 게 좋겠다고 설득하며, 아빠와도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극심한 두통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엄마는 나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순천향대 병원으로 가서 그동안의 모든 서류를 발급받아 왔다.



혼란의 연속

하지만 금요일 오후 4시에 입원 수속을 밟으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입원 수속 시 제출한 진료 의뢰서와 진료 기록 사본이 병원 내부에서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말 동안 간호사들이 돌아가며 엄마를 찾아와 "진료의뢰서가 없으면 보험 적용이 안된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게 된다"며 말했다.

더군다나 진료 기록 사본 중 일부가 없다고 여러 간호사가 찾아와 문의하면서 엄마를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토요일 아침 순천향대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서류는 모두 발급해서 드렸어요"

"아니요. 여기엔 없어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거기에서 발급됐다는 기록이 있대요"

"아! 하나는 있네요. 그런데 다른 건 없어요."

결국 월요일에 다시 순천향대에 가서 누락된 서류와 CD를 추가로 발급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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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통해 배운 점은 명확했다.

1. 발급받은 서류와 CD의 목록을 정확히 체크해야 한다.

2. 서류를 사진으로 기록해 두어야 한다.


발급 받은 서류와 CD를 엄마와 아빠가 들고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나에게 남은 기록은 전혀 없었다. 보호자 1인만 입실할 수 있었기에 내가 직접 확인할 수도 없었다. 결국, 다시 순천향대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준비와 확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슬퍼할 시간이 없이 바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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