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의 형제는 6남매, 2남 4녀 중 다섯째다.
아빠의 형제도 6남매, 2남 4녀 중 셋째다.
내가 보기에는 엄마의 가족, 즉 외가가 훨씬더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것 같았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연락을 주셨던 분은 작은엄마였다. 작은엄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경험이 있고, 두 명의 며느리가 있는 윤씨 집안에서 또 다른 며느리로서 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로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시고, 실제로 찾아오셨다.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다보니 손님이 다 우리 집으로 오는 상황이었다. 나는 집에 손님을 맞이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혼 후 약 10년의 시간동안 집에서 손님을 맞이한 횟수가 그동안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더 많았던 것 같다.
엄마의 형제
1. 큰이모는 중환자실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병상에 누워 계셨고, 최근 한 달 전 돌아가셨다. 이모의 큰아들인 사촌오빠는 엄마 소식을 듣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몬데 왜 그런일이"라는 말을 했었고, 셋째 오빠네 올케언니는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곧 찾아뵙겠다고 했다.
2. 큰 외삼촌은 엄마와 가까운 곳에 사셔서 소식을 빠르게 접하셨고, 아빠와 남동생에게 자주 전화를 하시며 상황을 물으셨다. 엄마의 첫 수술 전날에는 많이 우셨다고 한다.
3. 둘째 이모는 엄마에게 전화 거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하셨고, 전화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았다. 예전부터 마음이 여렸던 이모는 엄마의 소식에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이모는 아빠와 남동생을 위해 김장김치를 보내주셨다.
4. 셋째 이모는 광명에 사시는데 진짜로 진짜로 전화를 많이 하신다. 매일 오전 8~9시 사이에 꼭 전화를 하셔서 밥은 먹었는지 몸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고 우리집에도 3번 찾아오셨다. 더 자주 오신다는 거 엄마가 말렸다고 한다.
5. 작은 외삼촌은 나와 가장 많이 연락하는 분이었다. 작은외삼촌과 작은엄마께는 항암이나 수술상황, 진료 후 중요한 내용이 있으면 공유를 해드린다. 작은 외삼촌은 엄마 바로 아래 동생이라 그런지 관계가 돈독했고, 우리가 순천향대병원에 첫방문 하던 날, 이미 병원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빠의 형제
1. 큰 고모는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라서 아빠와 사이도 대면대면했다. 엄마의 소식도 작은아빠에게 전해달라고 하셨을 정도. 이후 엄마한테 전화왔는지는 모르겠다.
2. 둘째 고모는 엄마와 성격이 가장 비슷하고 잘 맞는 고모라서 그런지 광주에서 폭설을 뚫고 귤 한박스를 들고 우리집에 오셨다. 다른 용무가 있으셨던 거겠지 싶었는데 오로지 엄마를 보려고 오셨다. 집에 가시고 나서도 나에게 전화와서 목이 메여 엄마한테 전화를 못하겠다고 엄마의 안부를 물으셨다.
3. 셋째 고모는 용인에 사시는데 소식을 듣고 나한테 전화를 했다가 엄마와 거의 1시간을 통화하셨었다. 수술 전 작은엄마, 작은아빠와 함께 우리집에 오셨다.
4. 넷째 고모는 가까운 곳에 사셔서 자주 오신다. 김장김치도 가져다주시고 불고기, 장어, 모자, 장갑, 목도리 등등 다양한 것들을 챙겨서 주고 가시는데, 맛은 좀...
5. 작은 아빠는 나는 거의 작은엄마랑만 연락하기 때문에 작은 아빠와는 별로 연락을 하지 않지만, 작은엄마와 사이가 좋아 서울에 함께 오시고, 광주에서 딸기 두 팩 직접 들고 오셨다. 작은엄마는 김장김치를 시골 친정집, 그리고 우리집에 보내주시기까지 하셨다. 올해 김장김치는 엄마가 담그지 않아도 곳곳에서 보내주셔서 김치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엄마는 남한테 싫은 소리를 할 바에야 내가 그 일을 한다. 일을 할때도 그냥 내가 한번 더 하지, 이런 식으로 일을 하시는 편이라 남들보다 고생은 많이 했지만, 그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엄마를 좋아한다. 누군가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부르면, 신발을 신거나 옷을 입는 그 순간을 못참아서 엄마가 돈을 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병환 소식을 듣고는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위로를 보내주셨다. 그것만으로도 엄마한테는 큰 자산이자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싶다. 특히 가족들이 자주 엄마의 안부를 묻고 내 일처럼 안타까워 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 정말 열심히 사셨구나" 싶었다.
엄마 지금처럼 형제들한테 사랑 듬뿍받는 막둥이로 오래오래 옆에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