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그리고 'for good'이라는 말의 무게
영화 <위키드> 시리즈가 다시 한번 성공했다.
1995년에 발간된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키드>는 서양권에서는 이미 뮤지컬로 큰 인기를 누려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1편 영화가 개봉하며 단숨에 국내 관객의 관심을 끌었고, 이번 <위키드: 포 굿>은 개봉 첫 주부터 전 세계와 국내 관객을 모두 사로잡았다.
동화처럼 사뭇 단순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무엇일까?
<위키드>는 1900년에 출간된 소설 <오즈의 마법사>와 1939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의 프리퀄이자 재해석이다. 기존 작품에서 악역으로 그려졌던 서쪽 마녀 엘파바를 주인공으로 삼아, 같은 세계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다.
타고난 초록색 피부 때문에 부모에게조차 외면받으며 자란 엘파바는 평생 타인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간다. 시즈 대학교에 진학한 뒤 모두에게 사랑받는 소녀 글린다를 만나면서 둘은 처음엔 대립 관계에 선다. 그러나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아주 다른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가 된다.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의 실체를 알게 된 뒤, 엘파바는 서쪽의 사악한 마녀(Wicked Witch of the West)로 낙인찍히고, 글린다는 선의 마녀(Glinda the good)로 추앙받는다. 영화는 전형적인 선악의 구도를 넘어서, 두 인물이 정치적 압력과 대중의 기대 속에서 자기 정체성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둘은 갈등 끝에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으로 인해 변하게 된 자신을 받아들이며 각자의 진정한 위치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우정, 진실, 용기, 그리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는 힘을 강조하며, 선과 악의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Wicked 2>의 부제는 'For good'이다.
처음 영화를 볼 때 나는 이 표현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영화 초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Glinda, the good'이라는 표현 때문에, 막연히 '선을 위하여', '좋은 일을 위하여'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다 영화 중후반, 뮤지컬 넘버 <For good>이 흐르는 순간에서야 이 말이 '영원히', '완전히'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다음은 <For good>의 노래 가사 중 글린다의 파트다.
Like a comet pulled from orbit
as it passes the sun
Like a stream that meets a boulder
halfway through the wood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But because I knew you.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노래 속에서 글린다는 궤도에서 벗어난 혜성, 바위와 맞부딪친 시냇물을 비유로 들며, 삶의 방향을 바꾸는 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신을 만난 뒤로 내가 '더 나은 사람'(the better)으로 변하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영원히(for good) 변하게 하였다는 고백이다. 두 사람의 우정이 단순한 감정의 교류를 넘어, 서로의 삶의 궤도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초반부에서 글린다는 "'선함(good)'이라는 단어를 상표 등록해야겠어"라는 말을 할 만큼 선함이라는 단어를 마치 자신의 브랜드처럼 자랑스럽게 여긴다. "Glinda, the Good"이라는 예명은 그녀가 집착하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for good'이라는 말이 나오기에, 이 표현은 '선함'과 '영원함'이라는 두 축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이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깔아 둔 언어적 장난이자, 선과 악의 경계, 기억과 변화의 영속성을 강조하는 장치인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엘파바와 글린다는 색으로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엘파바를 상징하는 초록색은 오즈의 세계에서 저주받은 인간의 표식이며, 불길한 색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피부가 초록색을 띠는 일은 정상적으로는 거의 없다. 현실에서 초록빛 피부는 황달, 저색소성 빈혈, 녹농균 감염 같은 심각한 질환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초록색은 자연에서 가장 흔한 색이다. 숲의 잎, 풀, 생명력 넘치는 풍경을 상징한다. 자연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색이, 인간의 몸에 올라온 순간 비정상과 기형의 상징이 된다.
근대 사회 이후 인류는 '인간:자연', '선:악', '죽음:삶'처럼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잘라 나누어 이해하려 했다. 자연은 공존의 대상이라기보다 지배하거나 착취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엘파바의 초록 피부는, 인간에게서 자연의 흔적을 지워내고자 하는 근대적 감수성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오즈 세계관 속에서 자연을 닮은 인간은 배제되고, 자연은 오히려 배경으로만 소비된다.
에메랄드 시티의 상징색이 초록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도시는 초록빛 옷, 초록빛 도로, 초록빛 건물로 가득하지만, 초록빛 인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환경은 소비하되, 자연 그 자체를 닮은 존재는 배척하는 세계. 이 모순이 엘파바라는 인물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더불어 오즈의 세계관에는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마법이 사라진다는 설정이 깔려있다. 과학과 마법은 양립 불가능한 두 축으로 그려지고, 초록빛 마녀는 점점 더 구세계의 잔재로 취급된다.
반면, 글린다는 핑크색과 함께 등장한다.
핑크는 자연에서 그리 흔한 색이 아니다. 핑크빛 꽃은 특정 계절, 짧은 시간 동안만 피었다가 금방 사라진다. 그런데 오즈의 세게 속 먼치킨랜드는 분홍빛 튤립밭으로 가득하다. 계절의 흐름 없이, 순간의 아름다움만이 영구히 고정된 세계처럼 보인다.
언뜻 아름답지만, 이건 어쩌면 순간을 영원히 붙들어 두고 싶어 하는 욕망의 시각화에 가깝다. 변화하고 다층적인 인물을 하나의 색으로 고정해 '선 혹은 악'으로만 구분하려는 대중의 태도 역시, 초록과 핑크의 대비를 통해 비판적으로 드러난다.
초록과 핑크는 색상환에서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보색이다. 두 색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고, 두 색의 빛을 섞으면 흰색이 된다. 노래 <For good>의 메시지처럼, 둘이 만난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the better)"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이 만나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색이 있는 것이다.
원작 <오즈의 마법사>에서 엘파바는 '절대 악'이다. 도로시가 쓰러뜨려야 할 빌런일 뿐이다. 그러나 <위키드>는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시선에서 서술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은 얼마나 쉽게 뒤바뀌는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으로 휩쓸려 오즈로 떨어지고,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을 받아 서쪽의 나쁜 마녀를 물리친 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서쪽 마녀는 말할 것도 없는 악당이다.
하지만 <위키드>에서 우리가 만나는 엘파바는 정의롭고, 진실을 좇으며, 동물을 사랑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인물이다. 엘파바의 행동 어디에도 '악의'는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대중에게 악인으로 낙인찍힌다. 거짓은 진실보다 빠르게 퍼지고, 올바르다고 믿는 행동을 할수록 그녀를 둘러싼 공포와 혐오의 서사는 더 단단해진다.
흥미로운 건, 이 시점에서 오히려 도로시가 관객에게 빌런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엘파바의 하나뿐인 동생이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고, 도로시는 그녀의 신발을 빼앗아 신는다(물론 악의는 없다). 엘파바가 동생의 신발을 돌려받으려고 하자 도로시는 물을 끼얹어 엘파바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동일한 사건을 다른 구성,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었을 뿐인데,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도로시가 '정의의 영웅'이 되고, <위키드>에서는 엘파바가 '억울한 희생자'로 읽힌다.
역사는 늘 승자의 언어로 다시 쓰인다고 한다. 누군가는 악인이 되고, 누군가는 정의로운 영웅의 얼굴을 쓰게 되는 과정. <위키드>는 그 과정을 극적으로 뒤집어 보여준다.
영화 속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은 사실이나 근거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진실은 그저 모두가 믿기를 원하는 것이다."
(The truth is not a thing of fact or reason, the truth is just what everyone agrees on.)
에메랄드 시티의 주민들은 정말로 위대한 마법사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알기를 원했을까? 그의 통치 아래 사회는 적어도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대중의 상상 속에서 그는 희망과 질서의 상징이다.
때로는 차가운 진실이 현실을 더 냉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은, 여전히 진실 혹은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편안한 거짓 속에서 눈을 감고 살아가는 편이 더 행복한가?
<위키드:포 굿>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정의된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우리에게 새롭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를, 무엇을 근거로 '악'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지금 믿고 있는 '진실'은,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편하기 때문에 믿고 있는 건 아닌가
누군가와의 만남이 나를 영원히(for good) 바꾸어 놓는다면 그 변화는 과연 두려운 일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영화관을 나오는 길, 초록과 핑크, 선과 악, 마법과 과학, 진실과 안락함이 뒤섞인 그 세계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