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이 가져다 줄 이야기
나는 고등학생 시절 공부대신 운동을 선택했다.
유명하지도 잘하지도 못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왔긴 했다. 그리고 좋아했고 열정이 있었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나는 게을렀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를 진학하는 시기에 부모님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먼저 가셨고 내가 뒤쫓아갔다.
평생 살 것 같던 동네를 벗어나자 부모님을 따라온 사람들의 비난은 내가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길을 걸으며 많이 울었다. 슬펐고 외로웠다. 어쩌면 나에게도 어른이 필요했다.
내 인생 중 10대의 카테고리에는 파란 하늘은 없었다. 모든 삶이 까만 먹구름만 같았다. 하지만 18살 인생에 한줄기에 희망이 생겼었다. 나처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비전트립이 미국에서 열린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표 구매할 형편도 안 돼서 포기를 해야만 했고 이래서 난 안되나 보다 하고 좌절했는데 엄마는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선정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사비용까지 털어 날 그곳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정말 무거웠고 힘들었다. 어쩌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텐데 행복하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매번 부모님에 사명에 나는 불평불만만 가득했고 절대 같은 사명을 갖지 않겠다고 매번 다짐하고 다잡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내 자식에겐 절대 그 가난과 질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결핍 또한 마찬가지다. 10대의 어린 나이지만 어쩌면 없을 수도 있는 내 자녀에게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서 난 착한 딸이라고 할 수 없다. 실천에 많이 옮기진 못했지만 여러 방면에서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기 싫다고 몰래 빠지거나 다른 진로를 찾고 싶다고 찡찡거리고 난리를 치기도 했다.
그 누구도 응원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길이니까 그랬다는 걸 이제야 이해한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18세는 너무나도 이상하다.
왜냐하면 절대 그 이상에 어떠한 나쁜 짓을 하거나 누구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단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참 이상한 게 호기심이 삐뚤면 하는 행동과 말투도 못나야 하는데 늘 학원은 빠져도 학교는 가고 공부는 못해도 예의는 바랐다.
부모님이 욕먹는 게 싫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일반적인 사춘기였을 수도 있는데 나의 18세는 그랬다.
모범생인생을 걸어오신 부모님이 보시기엔 18세만큼은 못난 딸 같다. 엄마를 울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나의 18세 생일이면서 엄마를 울린 절대 잊지 못할 날이다..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라고 울었고 난 세상을 사는 게 처음이라고 울었다.
엄마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고 난 어른이 필요했다.
엄마를 돌볼 나이가 아니라 그늘이 필요했는데 나의 18세의 하늘엔 파란 하늘은 없었다.
답답했고 뭐 때문인지 늘 억울했다.
지금의 나는 한참을 울고 불평을 하다가도 아무것도 모르는 하늘은 나를 기분 좋게 해 준다. 그땐 몰랐다.
맑은 하늘, 파란색은 나에겐 힐링이다..
그때도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 파란색은 그렇다.
바다의 파란색과 하늘의 파란색은 차이가 엄청나다.
바다의 파란색은 볼 때마다 한결같은데 하늘의 파란색은 엄청나게 감정기복이 심하다.
나의 열여덟처럼.. ㅎ
이런 삶을 살다가 미국에 가야 할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