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하루 시즌0 : 11편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단지 비극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비극이 사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생명이 사라진 그날 이후, 우리는 수많은 사과와 대책,
그리고 추모의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김민석 국무총리가 추모식에서 “우리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 순간,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질문으로 들렸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은 책임과 기억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타인의 죽음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안전의 이름으로 수많은 제도를 만들었다.
안전관리 매뉴얼이 개정되고, 대응 시스템이 정비되었다.
하지만 제도는 늘 사건보다 느렸고, 기억은 점점 무뎌졌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 일상 속에서 ‘기억한다’는 말은 점점 의례가 되었다.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은 사건의 날짜가 아니라, 그날 이후 우리가 어떤 사회가 되었는가이다.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은, 그날을 단지 과거로 돌려놓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무력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잊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비극은 때로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 거울 속에는 정부도, 시민도, 언론도 함께 비친다.
우리가 안전을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사고를 예방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윤리의 선언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은 여전히 누군가의 죽음 위에서 체계를 세우고,
그 체계 위에 또 다른 무관심을 쌓아올리고 있다.
이 사회가 진정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느끼는 공감의 깊이가 너무 얕기 때문이다.
타인의 죽음이 뉴스의 한 꼭지가 되고, 정치의 수단이 될 때,
우리는 이미 자유를 잃은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기억이 슬픔에서 끝나지 않고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자유란 단순히 구속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서 깨어 있는 의식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그들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감수성.
그것이 공동체의 시작이며, 비극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인간의 윤리다.
오늘의 추모는 단지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다짐이어야 한다.
우리가 아직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문의 질문 : 타인의 죽음 앞에서 침묵하는 사회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