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는 왜 여전히 죽음의 현장인가...

질문하는 하루 시즌 0 : 12편

by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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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현장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경북 경주의 한 공사장에서 질식사고가 발생해 두 명이 숨지고 두 명이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산소 결핍 공간에서의 사고, 매년 반복되는 참사, 그리고 익숙해져버린 언론의 문장.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한 줄의 설명으로 정리되는 죽음들.

그러나 그 문장 뒤에는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삶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통계로만 소비하면서, 다시 또 다음 사건을 기다리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덮어버릴 때,

그 말은 구조의 실패를 개인의 부주의로 치환하는 가장 편리한 언어가 된다.


일터에서의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구조가 인간보다 이윤을 앞세운 결과이자,

효율과 속도가 안전을 밀어낸 시대의 초상이다.

누군가의 하루는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 시작되지만, 그 하루가 목숨의 대가로 끝나는 사회라면

그곳은 더 이상 ‘일터’가 아니라 ‘전장’이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일하다 죽는 나라, 그 문장은 너무 오래 반복되어서 이제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징후다.

사회가 죽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생명에 둔감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은 여전히 생존의 경계 위에 있다.

‘일’은 삶을 꾸려가는 힘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운명이다.

산업현장의 구조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저가 경쟁의 압박, 원청과 하청의 불평등, ‘빨리 끝내야 돈이 된다’는 시스템 속에 숨어 있다.

그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죽음은 계속 반복된다.

사람이 일하다 죽는 사회는 단지 제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해 일터가 존재하는가?

일터가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면, 왜 인간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안전을 외치는 구호가 매년 반복되지만,

그 구호가 일상의 행동으로 바뀌지 않는 한, 추모는 또 다른 의례로만 남는다.

노동의 현장이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효율보다 책임을,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윤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의 문제다.


지문의 질문 : 일터가 여전히 죽음의 현장이라면, 우리는 정말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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