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유언
그 말은 떠올랐다.
충분히 정리된 말이었고,
상대를 공격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지금 말해도
틀렸다고 지적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대화는 흐르고 있었고,
분위기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 말 하나로
판이 뒤집힐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말을 지금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가 먼저 시작됐다.
이 말이 꼭 필요한가.
지금 이 타이밍이 맞는가.
이 말을 함으로써
굳이 감당해야 할 불편은 없는가.
잠깐 사이에
여러 가능성이 스쳤다.
설명이 길어질 수도 있고,
의도를 오해받을 수도 있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가
늘어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 쪽이 선택됐다.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화는 그대로 이어졌고,
흐름은 끊기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됐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랬다.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말의 기준이 조금씩 달라진다.
해야 할 말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늘어난다.
말은 점점
머릿속에만 머무르게 된다.
정리된 채로 남아 있지만
사용되지 않은 상태로 쌓인다.
그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진다.
다만
말하지 않았다는 선택만
선명하게 남는다.
지문 : 질문이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