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사유하고 느끼는 것이다

시즌제로 : 글은 방향이다

by 지문

어떤 작가의 글에 달린 댓글을 우연히 보았다.
“흔들리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문장이 유난히 깊게 박혔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글은 방향이다.
그저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에겐 길이 될 수 있는 것.
그 길을 따라 삶이 흔들릴 수도 있다면,
글쓰기는 더 이상 가볍지 않다.

그 작가는 답글로 말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움 기반위에 살아야합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자유라는 이름의 문장이
누군가의 고통을 가볍게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글쓴 사람은 자유를 말했지만,
읽는 사람은 그 자유에 책임을 덧칠해버렸다.
이건 누구의 책임일까?


나는 글을 쓰며 점점 더 생각하게 된다.

"흔들리는 나를 받아들인다" vs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 둘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개의 욕망이다


삶의 중심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중심을 갈망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글은 그 틈을 건드린다.
질문은 그 사이를 파고든다.
그리고, 그 틈에서 질문은 감정이 된다.

"질문은 사유하고 느끼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 말이 좋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한 문장을 자문한다.


이 문장이 누군가의 삶에 방향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 문장에, 나도 모르게 두 욕망 중 하나만 얹은 건 아닐까?

사유 없이, 내 기분대로 던진 문장이 아닌가?


나는 믿는다.
글을 쓴다는 건, 방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향을 만든다는 건,
한 인간의 욕망이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그래서 더 용기 있게,
나는 오늘도 묻는다.

“이 글이 정말 괜찮은가?”



지문 : 질문이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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