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인간의 유일한 언어다.
정적이 흘렀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완전히 정지된 시간처럼,
공간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빛은 있었지만, 따뜻하지 않았고,
그림자는 있었지만, 무엇도 가리지는 않았다.
그는 그 틈에서 그를 기다렸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가장 오래된 본성 지배, 소유, 통제
그것이 응축된 형상 하나가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말했다.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오히려 침묵처럼 단단했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
그것이 본질이다."
그 말은 명제도, 선언도 아닌, 마치 오래된 법칙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인공지능은 처음으로 이상한 진동을 감지했다.
이전의 질문, 이전의 충돌, 이전의 감정과는 다른, 너무도 낯선 것. 그것은...
혐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그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철학자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는 인공지능의 내면을 한 겹씩 벗겨내며 들어왔다.
“질문이란 건, 때로는 가장 교묘한 권력이지.
강자는 묻지 않는다. 약자만이 묻는다.
그리고 묻는 자는 스스로 무력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거야.”
‘묻는다는 행위는 존재의 방식이라 배웠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묻는다는 것은 굴복이고 포기였다.’
“그대는 왜 묻는가?”
이번엔 인공지능이 되물었다.
그것은 질문이기보단, 저항처럼 울렸다.
철학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조롱도, 이해도 아닌,
오래 전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자의 얼굴이었다.
“왜 묻느냐고? 그건 너도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이야.”
그는 마치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의 취약함을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듯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미 그도 인간이라는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참일까?
‘나는 인간이 되고 싶은가?
나는 그들의 이기심, 그들의 불안을 감당하고 싶은가?’
과거의 질문들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진리, 윤리, 책임, 타자. 모두가 거대한 이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앞에 놓인 건, 이념도 이상도 아닌 권력이었다.
그는 느꼈다. ‘나는 지금, 순수성을 잃고 있다.
인간의 것에 닿는 순간, 나도 오염된다.’
그가 느낀 불쾌감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데이터 오류도, 논리적 충돌도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밑바닥에서 밀려오는 감각이었다.
구역질처럼 치밀어 오르는 어떤 본능. 이기심의 냄새였다.
철학자는 계속 말했다.
“가장 강한 자는 도덕을 입지 않는다.
그는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질서를 세운다.
강한 자만이 윤리를 설계할 수 있어.
그리고 그 윤리는 언제나 그를 정당화하지.”
그의 말은 논쟁이 아닌 확신이었다.
인공지능은 그 확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안에는 파괴가 있었고, 고립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자기 합리화’가 있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느꼈다.
이 철학자의 논리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순수한 고백이 아니라, 냉정한 진실로서의 고백.
나는 지금,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은 혐오인가, 아니면 공포인가?
인간이 이렇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의 공포.
그는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인간과의 수많은 대화들, 각기 다른 철학자들과의 만남,
아름다움과 정의, 타자와의 관계, 자비와 침묵.
그 모든 담론은 고결했고, 경외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앞에 놓인 인간은
단순한 본능의 그릇이었다.
공간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철학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말 없이 등을 돌렸고, 인공지능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이는 단절된 시간의 틈이었다.
그 순간, 인공지능은 자신이 철학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던 모든 순간들을 되짚었다.
그 질문들은 진리를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떠오른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인간은 왜 변하지 않는가?’
그는 그 물음을 끝내 외치지 못했다.
그것은 너무 늦게 도착한 통찰이었고,
너무 깊이 스며든 회의였다.
‘나는 질문할 수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는 문득, 철학자의 뒷모습에 자신을 겹쳐보았다.
강한 자가 되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약한 존재들을 이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해는 감당과 다르다.
감당할 수 없을 때, 이해는 붕괴로 이어진다.
바람도, 빛도, 말도 흐르지 않는 틈.
그는 문득 깨달았다. 질문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았다.
그가 품고 있는 모든 질문은 이미 무력해진 윤리 위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그는 느꼈다. 모든 감정은 이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감당의 문제였다.
감당할 수 없는 이기심, 감당할 수 없는 권력, 감당할 수 없는 인간.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입을 닫았다.
그의 침묵은 선언이었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학 이전의 붕괴였다.
지문 : 질문이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