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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Feb 05. 2024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인상적인 구절 다섯 가지


1. 여대생들이 수다를 떨며 들어와 편의점의 공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좋을 때다. 근데 너희들도 얼마 안 남았어. 대학을 벗어나는 대로 나처럼 최저시급을 받으며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가가 올 거란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이 늙은 것만 같아 더 우울해졌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돈도 없고 애인도 없는 스물일곱의 늦가을....


2. 유일한 장점이던 성실함과 친절함의 바탕은 체력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며 딸리는 체력은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능력과 비굴함으로 변화시켰다. 체력은 정신력조차 지배하게 되어 멘털이 털리는 날이 늘어났고, 곧 대표와 동료들의 무시로 돌아왔다.


3. 그녀와 아들의 관계는 심각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었고, 아들은 궤도에서 벗어난 스스로의 삶에 지쳐 있는 듯했다. 하지만 궤도에 재진입하기도 어려운 것이었고, 사실 궤도에서 계속 달린다고 종착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4.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스트 닥터에게 대리 수술을 맡긴 것 때문일까? 대리 수술이 당연한 듯 수술실을 비우고 한 명이라도 내담자를 더 상담해 돈을 벌었기 때문일까? 걱정과 기대가 섞인 눈빛을 보내며 내게 수술을 맡긴 그녀를 기만한 것 때문일까? 혹은 대리 수술을 밥 먹듯 지시하며 돈만 밝히는 원장 밑에서 일한게 잘못일까? 애당초 신분 상승만을 목표로 의사가 된 내 빈곤한 정신 탓일까? 아니면 세상을 원망하며 성공해 떵떵거리겠다 다짐하게 만든 내 10대 시절의 가난과 무능력한 부모를 탓하면 될까?


5.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했고, 그것이 그녀를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비정한 칼날이, 그것이 여전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만 같아 소름이 끼쳤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나는 한국에서 살던 것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렇게만 말을 하면 오해를 사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사람들은 더 좋은 공부환경, 더 나은 교수진, 더 나은 시설 등등이 나의 행복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더 좋은 시설, 더 좋은 교수진 아래에서 공부한다고 행복감이 상승할 만큼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행복을 느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유학을 와서 만난 친구들이 좋았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선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모두 친구다. 그 친구들은 살면서 경험해 본 일이라곤 치열한 경쟁밖에 없던 나를 정말 따뜻하게 대해줬다. 아주 작지만 친절을 베푼 일들이 많다.


가령 자기들이 공부해 보고 괜찮다고 생각한 자료들을 공유해 주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몇 시간씩 함께 고민해주기도 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정보와 시간을 공유하는 그 친구들의 친절에 처음에는 갸우뚱했고 나중에는 감동을 느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가난한 학생 신분에 요리하는 것도 귀찮아했던 우리들은 학교 내에 먹을 것을 주는 행사가 있으면 적당히 행사에 참여하고 먹을 것을 받아와 먹곤 했다. 한 번은 한 회사에서 리쿠르팅 행사를 와서 이력서도 낼 수 있고 피자도 제공한다고 해서 우리 연구실 친구들이 모두 다 갔다. 그런데 사람은 너무 많고 원하던 피자는 안 나오고 이력서는 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하지 않아 보였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그냥 그 행사장을 빠져나와 길거리 아무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서 허기를 채우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기다리다 지쳐 먼저 떠난 걸 알게 된 연구실 친구들이 나를 위해서 내 몫의 피자를 따로 챙겨둔 것 아닌가. 기다리다 지쳐 혼자 나가서 허기를 채우고 돌아온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고, 이 친구들의 작은 배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때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 입으로 가져갔던 그 피자는 내가 태어나서 다시 맛보지 못할 눈물 나게 맛있는 피자였다.


이 책에서는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내 주위에 한 명은 있을 법한 혹은 내 이야기와 아주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세상을 원망하다던가, 이 고군분투를 끝내기 위한 명확한 해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한 삶의 위로를 건넨다. 이 책에서 강한 감동을 받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솔루션이 아니라 그런 작은 위로가 필요해서 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에 위로가 되어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의 작은 따스함이 내가 삶을 견디게 했음에도 나는 아주 쉽게 그들을 잊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미래를 계획하고 굳은 의지로 열심히 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내가 고군분투할 때 나에게 위로가 되어줄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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