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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엔지니어
Jan 28. 2024
인상적인 구절 일곱 가지
1.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2.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3.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신이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의 믿음에 집착한다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4.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먹고 살기에도 유리했다. 마찬가지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찾아 천하를 유랑했다.
5. 거기에 나의 그림자는 없었다. 이 년을 넘게 살았지만 곧 자리를 털고 떠날 구경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회에 아무 책임도, 의무도 없었다.
6.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7.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은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학위를 마친 후에 미국에 남겠다고 결정한 것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 이유는 약간은 독특하다. 나는 많은 회사를 다녀보기 위해 미국에 남고 싶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활동한 엔지니어들을 보면 물론 한 회사를 꾸준히 다닌 사람도 있지만 평생 동안 다양한 회사를 열 군데 이상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경력을 쌓은 나이 많은 엔지니어들도 있었다. 독특한 점은 미국의 경우 한 회사를 너무 오래 다니는 사람보다 다양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엔지니어를 오히려 선호하는 문화도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회사를 매년 바꿔서는 안 되겠지만 한 회사에 머무른 지 3-5년 후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직하는 것을 좋게 보는 시각이 많다.
나는 이상하게 그렇게 자주 이직 하면서 살고 싶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다른 회사에서 조금 새로운 엔지니어링 과제를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라고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은 수면 밑의 이유는 아마도 여행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한 군데에 메이지 않고 언제든 내가 속한 조직을 떠나도 괜찮다는 안도감, 이직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조직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긴장 동시에 설렘, 보다 다양한 세상을 보고 싶은 욕망,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치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처럼.
이 책의 작가도 평생 다양한 여행을 하며 다녔다. 여행을 하며 안도감을 느끼고 고생이 되는 여행길에서도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며 되려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그리고 여행이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서술하고 있다. 내가 힘이 들더라도 평생 이직을 하며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은 이유를 이 작가는 여행의 이유로 잘 풀어내고 있어서 읽는 내내 작가에게 많은 공감을 하기도 했고 내가 표현해 보고 싶은 나의 감정들을 나보다 훨씬 더 좋은 글로 설명하고 있어서 고맙기도 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왜 이렇게 한 군데에 정착하지 않고 이직을 하면서 사냐고 물어보면, 혹은 이렇게 삶을 살기로 결심한 나의 결정에 의문이 드는 때가 온다면, 이 여행의 이유에서 본 구절 몇 개를 인용하여 내가 선택한 삶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행자에게는 돌아올 집이 있어야 한다. 돌아올 집이 없으면 그것은 여행자가 아니라 집이 없는 방랑자, 즉 영어로는 홈리스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평생 동안 10군데 이상의 회사를 다녀보며 내가 직업적 여행(?)을 꿈꾸는 나지만 나에게도 돌아올 곳은 필요하다. 나에게 집 같은 곳은 어디일까?
나는 아직 경력이 짧은 엔지니어이지만 벌써 한 번의 이직을 했다.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얼마 못 가 해고가 될 것 같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제 발로 나왔다. 다행히도 나는 다른 다양한 회사들에서 오퍼들을 받을 수 있었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돌아올 집은 나의 지식과 기술들을 담은 이력서였고, 내가 공부해 왔던 노트와 책들이었다. 이런 것들이 있었기에 나는 안전하게 또 다른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주에 작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느라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했다. 재택근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일터에 나가 직접 일을 하는 것과는 효율이 다르다. 특히나 나처럼 실험실에 매일 붙어있어야 하는 엔지니어는 더더욱 그렇다. 일주일 넘게 집에 있으니 직장에 나가고 싶다. 나가서 직업적 여행을 빨리 하고 싶다. 직장생활을 여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나는 특별히 복이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