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쭉 살아오다 미국에 오게 되면, 과연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영어를 써야 한다는 점은 당연히 큰 변화지만, 언어 외에 가장 생경하게 다가오는 문화적 차이는 무엇일까?
쓰레기 분리수거를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점?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유연한 점? 일부 주에서는 마리화나가 합법인 점? 정말 다양한 부분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충격은 ‘위아래,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의 관계’일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랬다.
한국은 유난히 수직적인 체계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회다.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 기관과 기관 간에도 명확한 서열과 위계가 존재하고, 그 위계에 따라 언행과 예절, 의사결정 방식 등이 달라진다.
이러한 위계 구조는 단순히 문화적 분위기나 관행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오랜 유교적 전통, 군사 정권 시절의 상명하복 문화, 상당수 남성들이 군 경력을 경험하는 사회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 사회는 위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를 수치화해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Power Distance Index(PDI, 권력격차지수)’인데, 한국은 이 지수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머문다. 이는 한국이 위계 구조를 얼마나 인정하고 따르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강력한 서열 문화가 과거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로 인해 갑질, 직장 내 괴롭힘, 불통 등의 병리적 현상도 많았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문화는 고도성장기 산업화의 속도를 단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의심 없이, 묻지 않고, 피곤해도 참으며 공부하고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적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효과적인 방식으로 계속 운영하면 안 되는 걸까? 위계 문화가 일사불란함을 낳고, 그로 인해 빠르고 효율적인 실행이 가능한데, 왜 바꾸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마주한다. 우리가 경제 선진국으로 인식하는 미국이나 독일같은 나라들은, 오히려 PDI 지수가 한국보다 훨씬 낮다. 이는 이들 나라에서는 상하관계가 강하게 작동하지 않으며, 서열이 비교적 약하다는 뜻이다.
왜 선진국일수록 권력 격차가 낮은 경향을 보일까?
내 생각엔, 위계 구조는 ‘명확한 목표가 주어졌을 때’ 빠르게 달성하는 데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취약하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려면 수평적인 문화가 훨씬 유리하다.
세 가지 이유를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런 구조는 올바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윗사람이 존중받는 이유가 실력이 아니라 단지 ‘지위’ 때문이기 때문에,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거나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현실을 모르고 방향도 잘못 짚은 ‘위에서 내리는 결정’은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실무를 잘하는 사람보다 윗자리에 오르는 경쟁이 더 중요시된다. 따라서 탁월한 실무자보다는 성공적인 '관리자 지망생'이 만들어진다. 그런 구조 안에선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탈영하거나 무시되기 쉽다. 결국 독창적인 기획, 의미 있는 시도보다는 누군가 이미 해놓은 것을 따라하는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셋째,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설명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더 많은 범위를 다루는 윗사람이 각각의 주제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 수준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열이 강한 조직에서는 윗사람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아랫사람이 설명책임을 지게 된다. 이는 PPT 만들기, 보고용 자료 만들기 등 실질적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과업에 조직 에너지를 빼앗기는 원인이 된다.
외국에 나와 조금만 살아봐도, 한국의 위계문화가 얼마나 강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왜 이걸 해야 하죠?", "이 방식보다 다른 방안은 어떤가요?"와 같이 질문과 토론이 더 자연스럽다. 반대를 표현해도 그 자체가 문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이건 과연 미국 사회의 윗사람들이 유달리 인격적이거나 아랫사람을 더 존중해서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어디든지 윗사람마다 성격은 다양하다. 일부는 반대를 존중하지만, 일부는 불쾌해하거나 심지어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차이는 윗사람의 ‘자질’보다는, 아랫사람이 그런 위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데 있다.
미국의 아랫사람들은 "윗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틀릴 수 있는 인간"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스스로도 의견을 낼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 배경엔 문화적 차이 뿐만 아니라 제도적 차이도 있을 것이다.
즉, 위계질서의 완화는 윗사람의 착한 성품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의 인식 변화와 이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한국 사회가 이 위계 문화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문화적인 변화만이 아니다. 호칭을 바꾸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도 분명 필요하지만, 수천 년 다져진 서열문화를 해소하려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도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평가하게 하고, 그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되도록 한다거나, 실무자의 능력을 정교하게 평가하고 실력이 관리자보다 더 나은 대우로 연결되게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는 의사결정 권한도 실무자들에게 더욱 분산하여 조직 전체가 책임과 판단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개혁은 당연히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특히 이미 시스템의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의 변화에 쉽게 수긍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 본질적이고 더 근본적인 저항의 이유는, 한국 사회가 바로 그런 위계 구조를 통해 그동안 너무나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명확하게 말해준다. 어떤 방법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이건, 그 방식에 집착하면 결국 새로운 시대에서 실패하게 된다.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한국 사회 역시 지금 어떤 선택을 할지의 갈림길 위에 서 있다. 기존 방식을 고집해 뒷길로 밀릴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변화를 시도할 것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효율을 내려 놓을 때 혁신의 자유가 시작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