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 있듯, 미국에는 두 가지 주요 승진 트랙이 있다. 첫 번째는 관리자 트랙이다. 한국처럼 연차가 쌓이고 나이가 들면 실무에서 점차 물러나 조직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커리어가 전환되는 길이다.
두 번째는 엔지니어 트랙이다. 실무자로 남아 기술적 역량을 계속해서 쌓아가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이 트랙에 남는다.
각각의 트랙은 장단점이 있다. 관리자가 되면 더 넓은 업무 범위를 다루게 되고, 더 많은 리소스를 이용해 더 큰 단위의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무와 멀어지며 기술적 역량이 퇴화될 위험이 있다.
반면, 엔지니어로 계속 남는다면 기술을 계속 익히고 발전시킬 수 있다. 다만, 업무 범위는 제한적이고, 뛰어난 기술력으로 계속 인정받아야 하는 압박이 따른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승진의 구조가 다르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계층 구조 속에서 자동적으로 관리직으로 향하는 길이 존재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엔지니어 트랙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실무자로 오래 남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단순히 한국이 기술자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에서 '상사'가 갖는 문화적, 사회적 의미에 있다.
미국에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역할의 변화'를 의미한다. 더 이상 직접 프로그래밍하거나 실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들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된다. 이 변화는 더 큰 시야와 역량을 요구하는 도전이지만, 동시에 기술 전문성을 잃고 반복적인 업무에 갇히는 불편한 전환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관리자가 되는 것이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역할의 전환이 아니다.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곧 ‘위에 서는 자’로서의 지위를 의미한다. 관리자의 직함은 그 자체로 인간적인 존중을 확보하고, 사회 내에서의 위치를 확정짓는 것이다. 실무자가 상사를 대할 때의 태도는 단지 역할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상하 인식으로 이어진다.
‘어느 회사의 부장’이라는 직함은 개인의 전문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암시한다. 직장은 기능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회적 계층의 지도이고, 승진은 그 위에서의 상승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승진은 단순한 직무의 변화가 아니라, 조직 내 위계의 확정, 인간적 존중의 확보, 그리고 사회적 신분 상승이 교차하는 문화적 제도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 당연히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제도적으로 엔지니어 승진 트랙을 마련하더라도, 그 길이 소수에게만 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이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기술자가 오래 일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돼야 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는 지금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고수는 오랜 시간 기술을 연마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몇 년간 실무를 하다가 관리자 트랙으로 올라간 사람이 그 분야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는 어렵다.
둘째, 우리는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점점 더 많은 고령층이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모두가 관리자가 될 수는 없기에, 각자의 실무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초저출산 사회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가 막대한 세금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고 탁월한 기술을 갖춘 사람도 관리자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관리자의 권한을 나누는 것이다. 관리자는 조직 운영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기술적 판단과 실행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전문가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질 때, 존중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그 존중이 쌓이면 사회적 위상도 함께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