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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문을 흔들어 봤다. 문은 잠겨 있다. 필통 안에는 주사기와 유리 앰플, 작은 줄칼과 고무줄이 들어 있다.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가느다란 주사기 안에 하얀 가루가 들어있다. 주사기를 내려놓고 줄칼과 앰플을 들었다. 줄칼로 앰플의 모가지를 가는데 손이 떨려서 잘되지 않았다. 앰플을 내려놓고 소주를 깠다. 두 병을 마시고 나니 기분도 좋아지고 손도 떨리지 않았다.
증류수를 주사기에 빨아 넣고는 흔들었다. 약이 녹아 들어가며 뿌연 게 사라졌다. 오랜만에 하는 거니까 제대로 해야 했다. 팔을 걷어 올리고 고무줄을 묶었다. 핏줄이 올라오지 않아 손으로 때렸다. 몇 번을 하고 나서야 겨우 핏줄이 올라왔다.
주삿바늘이 자꾸 빗나갔다. 한 병만 마실 걸 너무 마셨는지 바늘이 들어가질 않았다. 엉뚱한 데만 찔러서 피가 났다. 머리를 흔들고는 다시 천천히 바늘을 찔러 넣었다. 이번에는 바늘이 제대로 들어갔다. 약이 바늘을 타고 핏속으로 뿜어져 들어갔다.
주사기를 뽑아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주사 자국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손가락으로 누르고는 문질러댔다. 약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턱이 덜덜거리고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이 턱에서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약이 너무 세서인지 모르겠지만 떨림이 멈추지가 않았다. 중심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꿈이었네. 하지만 너무 선명해서 나도 모르게 팔을 쓰다듬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욕이 나왔다. 몸을 웅크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열차가 들어오는지 천장에서 시끄러운 벨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슴츠레하게 뜬눈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군가 다리를 툭툭 찼다. 귀찮게 건드리는 사람이라야 뻔했다. 몸을 움츠리며 모른 척했다. 몇 번을 더 건드리더니 조용해졌다. 저벅저벅 멀어져 가는 발소리가 났다. 잠에 막 빠지려는데 또 흔들어댔다. 아까 그놈들이 벌써 한 바퀴를 돌고 왔는지 다시 잠들려는 걸 흔들어서 깨웠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아저씨. 아저씨. 여기서 자면 안 돼요. 일어나요. 아저씨.”
공익 놈 둘이서 하나는 어깨를 잡아 흔들고 나머지는 발을 툭툭 찼다. 싸가지 없는 놈들이 그냥 잠 좀 자게 내버려두지 꼭 깨워서 내보냈다. 옷을 말아 쥐고 버텨도 어디로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해서 흔들어댔다. 할 수 없이 머리를 내밀고 일어나 앉았다. 발을 차던 놈이 손에 든 몽둥이로 밀어댔다. 일어나서 걸어가는 데도 새끼가 짜증 나게 밀어댔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에 물이라도 뒤집어쓰면 지끈거리는 게 덜해질 것 같았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리면서 쳐다봤다. 지들은 평생 그렇게 폼 잡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가소로웠다. 저런 꼴같잖은 것들을 보면 욕밖에 안 나온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 큰 가게에서 사장님 소리도 원 없이 들어봤다. 그랬는데, 쉬는 날 아는 놈 따라 정선에 놀러 갔다가 이 꼴이 났다. 잠깐 논다는 것이 하루가 이틀이 되고 한 달이 석 달이 되던 어느 날 가게를 팔아치우고 거기 눌러앉았다. 그날 이후로 마누라도 애새끼들도 본 적이 없다.
마주 오던 여자들이 흠칫거리며 멀리 피해 갔다. 웃기지도 않았다. 남은 쳐다도 안 보는데 같잖은 것들이 지랄을 한다. 화장실로 들어가다가 나오던 사람과 부딪혔다. 나이도 어린 노무 새끼가 눈을 부라렸다. 눈깔을 확 파내 버리려고 손가락을 곧추세우니까 잽싸게 도망을 쳤다. 거기 서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죽어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