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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로 가서 꼭지를 틀고 머리를 처박았다. 머리 옆으로 물이 흘러내렸다. 옆을 돌아보니 달랑거리는 비누가 보였다. 오랜만에 세수나 하려고 비누를 잡아 뺐다. 세면대에 머리를 대고 비누로 문질렀다. 땟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비누를 던지고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비눗물이 눈으로 흘러들었다. 머리를 흔들어 비눗물을 털어냈다. 손으로 물을 받아 눈에 묻은 비눗물을 닦아내었다.
고개를 들자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머리를 쥐어짜고 옷으로 얼굴을 닦았다. 뒤에서 인간들이 구시렁대면서 지나갔다. 목이 말랐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머리 아픈 게 조금은 덜해졌다. 화장실을 나와 지하철역을 나섰다.
역에 걸린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되면 어련히 알아서 일어나서 나갈 건데 씨발 놈들이 꼭두새벽부터 깨우고 지랄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을 찔렀다. 얼굴을 찡그리고 비틀거리며 거리를 내려갔다. 저 앞에 있는 가게에서 주인이 나와 셔터를 올리고 있었다.
“소주… 줘요. 소주.”
셔터를 올리고 난 주인이 힐끔 돌아봤다. 인상은 더러워도 돈만 주면 술을 줬다.
“몇 병?”
주머니를 뒤져서 돈을 꺼냈다. 동전이 몇 개에 오천 원짜리가 하나 있었다.
“다섯… 병.”
주인은 소주 다섯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줬다. 한 병을 따서 그 자리에서 병나발을 불었다. 머리 아픈 게 싹 사라지고 기분이 좋았다. 빈 병을 가게 앞의 박스에 넣고 주인을 향해 웃어줬다. 주인이 과자 한 봉지를 내밀었다. 과자를 받아 봉지에 집어넣었다. 비틀거리며 거리를 내려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남은 소주를 깠다. 과자도 꺼내 먹었다. 멀거니 앞을 보았다. 지금이 몇 월인지 무슨 계절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주가 전부 바닥났다. 빈 병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다. 한 병만 더 마셨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올라가서 사오려니까 귀찮았다. 벤치로 햇볕이 따뜻하게 비쳤다.
식판에 퍼준 밥을 들고 건물 옆에 자리를 잡았다. 국물을 떠 넣어도 입이 깔깔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식당 앞에는 늦게 온 놈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오는 사람이 없나 입구를 살핀 후 옷 속에 감춰둔 소주를 밥에 말았다. 한 숟갈 뜨자 혀끝에 소주 맛이 싸리하게 퍼져나갔다. 그제야 입맛이 돌았다. 식판을 딸딸 긁어 먹었다. 그릇에 남은 소주는 다 핥아먹었다. 옆에서 밥을 먹던 놈이 쳐다보았다.
“형씨, 같이 좀 먹읍시다.”
병에 남은 걸 달라는 소리였다. 흥. 웃기고 있네. 너 주려고 남긴 게 아니었다. 대꾸도 안 하고 병나발을 불었다. 탈탈 털어 마시고는 병을 던졌다. 옆에 놈이 뛰어가서 병을 줍더니 핥았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배부르고 머리는 알딸딸하고 담배까지 무니 아쉬운 것이 없었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손이 툭 하고 떨어지는 바람에 눈을 떴다. 잠깐 존 것 같았다. 밥을 먹던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가 없어졌다. 주머니도 비어있었다.
아까 옆에서 깐죽대던 새끼가 고새 빼간 게 틀림없었다. 지밖에 모르는 저런 새끼들은 어딜 가나 꼭 있다. 도박에 미쳐 정선에 붙어 있을 때 저런 놈들한테 숱하게 뜯겼다. 마지막 땡전 한 푼까지 쪽쪽 빨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