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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시고 계속 구역질을 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멀리 가게 불빛이 보였다. 다리를 질질 끌고서 가게로 다가갔다. 주머니를 뒤지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씨발. 잠든 사이에 어떤 새끼가 주머니를 뒤져서 싹싹 다 긁어갔다. 가게주인에게 사정해서 있는 돈을 다 주고 소주 한 병을 받았다. 술이 들어가니까 속 뒤집어지는 게 덜했다. 바람이 서늘했다. 소주병을 안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 가다가 재떨이를 뒤져서 꽁초 다섯 개를 주웠다. 어떤 놈이 반도 안 피우고 버렸네. 돈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오줌이 마려워서 들어왔는데 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돌아다니다가 놀이터가 나왔다. 화장실로 보이는 건물에 불이 켜져 있었다. 아파트 입구 옆에 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쓸만한 박스 몇 개를 끌고 화장실 뒤로 돌아갔다. 빛이 들지 않는 구석에다가 박스들을 펼치고 기어 들어갔다. 바람을 막으니까 그런대로 따뜻했다. 안주머니에서 소주를 꺼내 남은 걸 다 마셨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뭐가 계속 머리를 찌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다. 아파트 경비들이 모여서 있었다.
“이봐. 여기 당신 자는 데 아니니까 빨리 일어나. 경찰 불러서 쫓아내기 전에 빨리 안 일어 나.”
햇살이 너무 세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경비들이 빗자루로 찔러댔다.
“다 늙은 우리도 이러고 있는데 사지 멀쩡한 놈이 일은 안 하고 술이나 처 마시고 이런데 퍼질러 자고 있으니. 에이. 쯧쯧.”
일어서려고 해도 박스가 걸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경비 둘이 다가와서 팔을 잡고 일으켰다. 박스가 발에 걸려 다시 나동그라졌다. 엉금엉금 기어서 박스를 빠져나왔다. 빗자루를 들고 있던 경비가 또 쿡쿡 찔러댔다.
“빨리 나가. 경찰 부르기 전에. 다음에 또 보이면 가만 안 둘 거니까 얼쩡거리지 마.”
경비대장인지 말하는 게 싸가지가 없었다. 눈을 부라리고 봐도 계속 빗자루로 찔러댔다. 두어 걸음 그놈에게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며 다른 경비 뒤로 도망쳤다. 별거 아닌 것들이 숫자만 믿고 까불었다. 조금만 겁을 줘도 도망가는 것들이 설치는 걸 보면 우스웠다. 경비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겁먹은 얼굴의 영감이 눈동자만 굴렸다.
“돈.”
경비는 뒤에 붙어선 경비대장을 돌아봤다. 다른 경비가 대장 옆구리를 찔렀다. 대장이 구시렁거리며 지갑을 꺼내서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줬다.
“더… 줘.”
이번에도 옆에 선 경비가 옆구리를 찔러서야 겨우 천 원짜리 한 장을 더 줬다. 이것들이 누굴 거지로 아나. 억지로 잠을 깨우고는 겨우 이천 원으로 때우려 하고 있었다.
천 원짜리 두 장을 집어넣고 손을 계속 내밀었다. 경비 영감들이 대장 옆에 몰려서서 수군거렸다. 대장이 얼굴을 구기며 오천 원짜리를 꺼내었다. 주기 싫어서 부들거리는 손에서 뺏어 쥐고는 걸음을 옮겼다.
경비들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단지를 벗어나는 길이 어딘지 몰랐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면 따라오는 경비들이 소리를 질렀다. 안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난리를 피웠다. 다 늙은 영감들이라 겁은 많아 가지고 멀찍이 떨어져서 소리만 질러댔다. 대장 놈이 제일 뒤에서 깩깩거렸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상가가 있었다. 슈퍼에 들어가서 소주 네 병하고 담배를 샀다. 네 병 가지고는 모자라서 슈퍼 밖을 봤는데 경비들은 다 도망가고 없었다. 비닐 봉투를 들고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