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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용산역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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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연 Aug 26. 2024

용산역

8

담배를 물고서 불을 붙였다. 재수 없는 도둑 새끼가 담배까지 다 긁어갔다.

  감방에서 나온 첫날치고 재수가 더러웠다. 어떤 놈이 등쳐먹지를 않나 자다가 다 털리지를 않나 정말 지랄 맞은 하루였다. 전에는 아무 데서나 드러누워서 자도 털어가는 놈이 없었는데, 역시 너무 깔끔하니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지나가는 것들이 힐끔거리면서 쏘아봤다. 여자는 할망구까지 전부 멀찍이 떨어져서 피했다. 하는 짓거리들이 가소로웠다. 쫓아가면 도망도 못 갈 것들이 티만 팍팍 내었다. 술맛 떨어지는 것들밖에 없었다.

  뒤에서 차가 빵빵거렸다. 시커먼 차에 탄 놈이 계속 빵빵거렸다. 시끄러워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다 소주를 쏟았다. 씨발 놈이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금방 딴 소주를 흘려버렸다. 남은 병을 들이마시곤 차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전하던 놈이 허둥거리더니 차를 뒤로 뺐다. 병을 집어 던졌는데 길옆으로 날아갔다.

  도망가던 차는 다른 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길이 막혀서 섰다. 골목으로 들어선 차가 빵빵거렸다. 저 새끼 때문에 아까운 소주 반병이 없어졌다. 차 앞으로 다가서자 운전하는 놈이 질린 얼굴로 쳐다봤다. 옆으로 돌아가 운전석 유리창을 두들겼다. 갑자기 차가 앞으로 움직이더니 쏜살같이 도망쳤다. 뒤따르던 차들도 재빨리 지나쳐 갔다.

  돈 줄 때까지 가로막고 있어야 하는 건데 오랜만이다 보니까 깜박깜박했다. 길 중간에 쏟아진 소주가 스며들어 생긴 얼룩이 남아있었다. 아까운 술을 생각하니 뚜껑이 열렸다. 술병을 입에 물고 길을 내려갔다.

  술병을 들었던 손이 비어있었다. 금방 한 병을 꺼내 물었던 거 같은데 아무것도 없었다. 술병이 어디 갔나 두리번거렸다. 바닥에 떨어져서 깨진 소주병이 보였다. 이게 언제 떨어졌는지 생각이 안 났다.

  쪼그려 앉아서 유리 조각에 고여 있는 걸 마시고 혀로 핥았다. 비닐 봉지 안에 한 병이 남아있었다. 술병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길을 따라 내려갔다. 골목 끝에 도로가 있었다. 지나가면서 술을 마셨다. 소주병은 너무 작아서 금방 바닥이 났다. 병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었다. 뭐가 시끄럽게 빵빵거렸다. 누가 소리를 질러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까 차 유리창 너머로 머리를 내민 놈이 빽빽거렸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손을 휘저어 가면서 뭐라고 열심히 떠들어댔다.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벤치에서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까 어둑어둑해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자 돈이 그대로 있었다. 재수 없는 건 첫날로 끝이 났다. 돈 안 벌어도 며칠은 충분히 지낼 수 있었다. 아침에 마신 술이 깨려는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공원에서 나와 가게를 찾아갔다.

  인상은 더러워도 가게주인은 장사를 할 줄 알았다. 손님에게 필요한 것만 물어보고 나머지는 알아서 했다. 장사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했다. 그래서 가게주인은 몇 년이 되어도 항상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주고 소주 여섯 병과 과자를 받았다.

  역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했지만 그냥 들어갔다. 공원까지 갔다 오는 게 귀찮았다. 역 안을 돌아봐도 공익들이 보이지 않았다. 공익만 안 보이면 귀찮게 할 놈들이 없었다. 얼쩡거리며 돌아다니는 놈들이 한두 놈 있었다. 자판기 뒤에 끼어있는 박스를 꺼내서 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분 좋게 뒤로 기대어 있는데 어떤 놈이 박스를 발로 차서 찌그러뜨렸다. 귀찮아서 그냥 앉아 있으니까 옆으로 돌아가면서 발로 찼다. 옆구리를 채이고서야 일어났다. 이상하게 생긴 놈이 뭐라고 소리를 질러대었다. 놈의 뒤에는 열댓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주춤거리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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