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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선 놈은 손가락질을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지 자리라고 비키라고 하는 것 같은데 더러운 새끼가 침까지 튀기고 지랄이었다. 상대하기 귀찮아서 꺼지라고 손을 내저었다. 놈이 갑자기 가슴을 손으로 밀었다. 벽에 뒤통수를 박았다.
뒷골이 띵해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놈이 옆에 서서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눈앞에 굴러다니는 소주병이 보였다. 병을 집어 들고는 놈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아무것도 아닌 새끼들이 앵앵거리면서 시끄러웠다. 뭔가를 하려면 그냥 하면 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들기만 했다.
이놈도 한방 후려갈기자 코피를 쏟으며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박스 밖으로 쫓아 나가다 발이 걸려 넘어졌다. 쓰러지면서 소주병이 박살이 났다. 손에 남은 병 모가지만 들고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기겁을 하고는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도망을 쳤다. 도망가는 놈의 뒤에다가 병 모가지를 집어 던졌다. 승강장에 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박스에서 봉지를 꺼내 들고 화장실로 갔다. 좀 있으면 역무원이 몰려와서 귀찮게 할 게 뻔했다. 세면기에 봉지를 얹어놓고 손을 씻었다. 물이 닿자 손바닥이 쓰라렸다. 손을 들어보니까 병 조각이 박혀 피가 났다.
유리 조각을 뽑아내고는 물로 손을 씻었다. 화장실로 들어가서 변기 뚜껑 위에 걸터앉아 문을 잠가 버렸다. 봉지를 안고서 벽에 기대어 졸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와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역무원들이 왔다 갔는지 박스하고 깨진 병 조각들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의 핏자국도 지워져 있었다.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여기저기에 다른 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혼자서 박스를 세 개나 깔고 앉은 싸가지 없는 놈에게서 박스를 뺏어왔다. 안 뺏기려고 일어서는 놈을 몇 번 밟아줬다. 두 개면 충분한데 그것도 안 뺏기려고 맞는 놈이 바보 같았다.
자판기 옆에 웅크리고 있는 놈에게 발길질을 해서 내쫓았다. 박스를 둘러치고는 기대앉아서 술병을 땄다. 시원하게 한 병을 나발 불었다. 속이 싸르르한 이 맛은 역시 소주가 제일이었다. 한참 나발을 부는데 누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놈의 뒤에 주춤거리고 있던 계집아이가 앞에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부라리자 움찔거리고 뒷걸음질을 쳤다가 다시 슬금거리고 다가왔다. 과자봉지를 하나 꺼내자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과자를 던져주자 받아 들더니 봉지를 잡아 뜯고 정신없이 집어먹었다. 먹다가 목이 메는지 끅끅거리며 가슴을 쳤다.
아이가 손을 내밀고는 주춤거리며 다가섰다. 눈을 부라려도 고개를 숙이고는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소주병을 흔들어 보이자 후다닥 달려들었다. 나이도 어린 게 병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대여섯 모금을 마시고서 아이는 술병에서 입을 떼었다. 정신없이 들이키더니 눈이 풀려서 해롱거렸다.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는 봉지에 남아있는 과자를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가까이서 보니까 그런대로 귀엽게 생겼다.
“일루… 들… 어 와.”
아이는 눈치를 보더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과자를 건네주자 아이는 쪼그려 앉아서 정신없이 입에 집어넣고 게걸스럽게 먹었다. 중간에 과자가 떨어지자 제가 알아서 봉지에서 꺼내먹었다. 아이는 갈증이 나는지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이는 다음날도 따라다녔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