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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용산역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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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연 Aug 26. 2024

용산역

10

가게주인에게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다섯 장을 줬다. 주인은 아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천 원짜리를 들어 보였다.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았다. 웃으며 끄덕거리자 주인은 봉지 두 개에 나눠 담았다. 주인이 소주를 들어 보이자 아이가 씩 웃었다. 주인에게서 봉지 두 개를 받아서 적은 걸 아이에게 줬다.

  날씨가 꾸물거리는 게 비가 올 거 같았다. 좀 전에 공익들에게 쫓겨난 역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디 고가나 다리 밑을 찾아야 했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휘적거리고 걸어갔다. 아이는 벌써 과자 하나를 뜯어서 먹고 있었다. 한 손으로 봉지와 과자를 끌어안고는 따라오고 있었다.

  전에는 있었던 거 같은데 고가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거 같기도 하고 짜증이 났다. 여기 어디에 고가가 있었던 거 같은데 아무리 돌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사거리에서 어디로 갈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호가 대여섯 번 바뀌는 동안 어디로 갈지 정하지를 못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멍하니 거리를 보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팔을 잡아당겼다. 아이가 주춤거리면서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턱짓을 하자 아이가 앞장을 섰다. 아이가 앞서 간 곳은 커다란 상가 건물이었다.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 아이는 건물의 주차장 쪽으로 올라갔다.

  일층과는 달리 건물의 삼사 층은 수리를 하는지 다 부서져 있었다. 들어선 가게도 없고 사람들도 없었다. 철거 작업만 끝나고 공사는 아직 시작을 안 한 것 같았다. 아이는 거리낌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조명도 다 떼어내서 대낮인데도 컴컴했다. 창가는 그런대로 빛이 들었지만 안쪽은 어두워서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깨진 유리들이 널려있어서 걸을 때마다 버석거리며 밟혔다. 컴컴한 게 눈에 익으니까 주위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기둥에 기대앉아있는 놈들이 보였다. 아이가 판때기를 잡고 끙끙거렸다. 판때기를 같이 끌어당겨 기둥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려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아이는 자리를 깔고 앉자마자 봉지에서 소주병을 꺼내 마셨다. 과자를 먹으며 술을 마시는 게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가져온 것들을 먹어치우고 아이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품에 안은 아이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물이 콧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재채기가 나서 잠에서 깨었다. 대여섯 놈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한 놈이 앞에서 고추를 덜렁거리고 있었다. 고추에서는 오줌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오줌을 싸고 있는 놈 뒤로 어제 두들겨 팬 놈이 보였다. 놈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아이는 놈의 옆에 가 있었다.

  아무런 말도 설명도 없었다. 깨자마자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두들겨 팼다. 어제 맞은 놈이 복수를 하려고 패거리를 끌고 왔다. 놈은 아이가 어디로 갈지 뻔히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를 감싸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한참 발길질을 당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얼마나 두들겨 패놨는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놈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 어디서 보고 있을까 봐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웅크렸던 몸을 슬며시 펴도 다가오는 놈들은 없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기둥에 기대앉았다. 몸에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기대앉아서 팔다리를 움직여 봤다. 부러진 데는 없는 거 같은데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더러운 놈이 혼자서는 안 될 거 같으니까 치사하게 패거리를 끌고 와서 복수를 했다. 아이도 냉큼 놈을 따라가 버렸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봉지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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