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람이 적은 길로 가다 보니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구석에 적당한 그늘이 있어서 자리를 잡았다. 소주 한 병을 안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마셔버렸다. 그늘에 있으니 몸이 으슬거렸다. 햇볕이 비치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따뜻하게 몸이 데워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른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구석 자리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자다가 더워서 잠에서 깨었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받고 자고 있었다. 더워서 목덜미로 땀이 흘러내렸다. 가랑이와 겨드랑이도 끈적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역으로 걸어갔다. 도로로 지나가는 차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었다.
역을 드나드는 계단 중간에 엎드려 있는데 누가 발로 툭툭 찼다. 고개를 들어보니 패거리 중 하나였다. 얼굴을 알아보고는 씩 웃었다. 앞니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녀석이 땟국물이 전 손을 내밀었다.
“내놔.”
무슨 소린지 금세 알아차렸다. 누가 구걸을 하든지 상관없이 삥을 뜯어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잡히는 대로 꺼냈다. 녀석이 가만히 노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피하자 머리를 쿡쿡 찔렀다. 하는 수 없이 주머니에 있는 걸 다 꺼냈다. 주머니를 까뒤집어 보이자 겨우 믿는 눈치였다. 녀석은 동전은 놔두고 지폐만 다 긁어갔다. 몇 시간 동안 엎어져서 번 게 다 날아갔다. 앞으로는 중간중간에 숨겨야 했다.
생각대로 저녁에 한 번 더 삥을 뜯어갔다. 자리를 뺏으려는 놈이 하나 있었지만 버티고 있으니까 딴 데로 갔다. 가기 전에 옆구리를 후려 찼다. 전에 맞은 자리라 배로 아팠다. 그래도 보람이 있어서 만원 정도는 숨겨놓을 수 있었다.
가게로 다가가자 주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야 아픈 다음이었지만 보자마자 인상부터 찡그리는 게 손님을 대하는 게 돼먹지가 않았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세었다. 만원을 챙겨서 주인에게 건네줬다. 냄새가 안 나는지 주인은 찡그렸던 인상을 폈다. 그래도 더러운 인상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여섯 병?”
그대로 할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먹는 게 중요했다. 먹고 기운을 차려야 했다. 오른손을 쫙 펴 보였다. 주인이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소주 다섯 병과 과자들을 담았다. 주인에게 손짓해서 라면도 두 개 담았다. 역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건을 들고 가다가 패거리들에게 걸리면 다 뺏길 판이었다. 다른 데서 먹고 역으로 가야 했다.
건물 주차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라면을 뜯어 먹었다. 스프를 소주에 타서 생라면과 같이 먹었다. 적당히 같이 입에 넣고 씹으니까 먹을만했다. 라면과 과자를 다 먹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병 남은 소주는 안주머니에 넣었다.
역으로 들어가자 웬만한 자리는 다 차 있었다. 바람이 들이치는 자리들만 비어있었다.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소주병이 걸리적거렸다. 밑에 깔린 놈을 꺼내서 마시고는 병을 집어던졌다. 옷깃을 여미자 술기운이 올라왔다.
한동안 챙겨 먹었더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 패거리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삥을 뜯겼지만 조금씩 돈이 모였다. 처음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놈에게 몇 번인가 돈이 적다고 두들겨 맞았다.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내놓지 않았다. 몇 번 당하고 나니까 대충 놈들이 원하는 액수를 알 수 있었다. 적당히 내놓으면 맞지 않고 넘어갔다.
놈들은 밤이면 몰려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아이도 놈들과 같이 몰려다녔다. 자려고 하는데 끙끙대는 놈들의 소리가 역 안을 울렸다. 그럴 때면 자다가 깨서 꿈틀거리는 놈들도 있었다. 아침에 보면 아이를 안고 자는 놈이 날마다 바뀌었다. 대장인 놈이 제일 많이 끼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