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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플라스틱 통들을 늘어놓고 잡다한 것들을 팔고 있었다. 통에 들어있는 것들 중에는 과일 깎는 칼도 있었다. 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칼을 꺼내봤다. 손바닥보다 작은 얇은 칼날이 달려있었다. 패거리가 생각나서 하나 살까 했는데 칼이 너무 약해 보였다. 괜히 설치다가 잘못해서 손이라도 베면 안 되었다.
칼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드라이버를 들었다. 손잡이에 빨간 고무가 칠해진 게 잡기가 편했다. 어느새 다가온 주인이 날을 빼서 돌려 끼울 수 있다면서 보여줬다. 이런 것도 힘을 받지 못했다. 드라이버 통에는 투명한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놈이 있었다. 날 길이는 먼저 것보다 더 길었다. 대충 한 뼘이 넘어 보였다. 그놈으로 두 개를 골라 들었다.
안주머니에 드라이버들을 집어넣고는 공원으로 갔다. 한 놈을 꺼내서 나무에다 찍어봤다. 날이 없어서 살짝 찍히기만 했다. 인적이 뜸한 곳에서 콘크리트에 날을 갈았다. 일어나면 드라이버 날을 갈고 졸리면 잤다. 밥 얻어먹을 때와 저녁에 구걸할 때를 빼고는 드라이버를 갈았다.
역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안주머니에 잘 챙겨 넣고 꺼내지 않았다. 날을 갈다가도 사람 기척이 느껴지면 재빨리 숨겼다. 며칠이 지나자 날이 제법 날카로워졌다. 갈려진 날이 얇게 반짝였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만져보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병신같이 꼭 만져봐야지 아나 싶어 성질이 났다.
나무에다 찍어봤더니 전보다는 훨씬 깊게 들어갔다. 몇 번 찍다 보니 날이 무뎌졌다. 한두 번만 찍어도 되는 걸 몇 번을 찍다가 날만 작살났다. 다시 콘크리트에다 갈아서 날을 세우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다. 잘 갈아진 두 개의 드라이버 날이 반짝거렸다.
구걸을 하기 전에 안주머니에 드라이버를 챙겨 넣었다. 삥을 뜯으러 오는 놈들은 날마다 바뀌었다. 가끔이기는 했지만 대장이 오는 날도 있었다. 대장이 오는 날에는 다른 날보다 더 많이 뜯겼다. 안 내놓으면 내놓을 때까지 발길질을 했다. 미리 내놔도 두들겨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장만 조지고 나면 나머지 놈들은 떨거지들이었다. 전에 조진 놈도 얼굴에 한 대 얻어맞고는 도망갔다. 나머지들도 그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저번에 맞을 때도 대장 놈은 떠들지 않고 두들겨 패기만 했다. 삥을 뜯으러 와서도 똑같았다.
다른 놈들은 삥을 뜯으러 와서도 시끄럽게 떠들었다. ‘더 내놔라’, ‘이게 다냐’, ‘뒤져서 나오면 맞는다’ 그런 소리들만 떠들고는 적당히 집어주면 받아 들고 갔다. 대장 놈은 말 한마디 없었다. 발로 차서 내놓는 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후려 차고 밟았다.
때리다 기분이 풀리거나 맞으면서 내놓는 돈이 마음에 들면 때리지 않았다. 시끄러운 놈들은 다 껍데기들이었다. 정말 무서운 놈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놈이었다. 대장 놈이 그런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