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쪽 기둥에 기대있던 놈이 어슬렁거리고 다가왔다. 옆에 앉은 놈이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건네줬다. 불도 붙여줬다. 저도 같이 한 대 피워 물었다.
“형씨는 몰랐던 모양인데. 여기서는 그 패거리를 건드리면 안 돼. 그 두목 놈은 깜방에도 몇 번을 갔다 온 놈이유. 앞으로 조심하슈.”
저 할 말만 하고는 휘적거리며 건물 안쪽으로 사라졌다. 재를 떨려고 담배를 물었던 입을 떼자 입술이 따가웠다. 담배 필터에 피가 묻어있었다. 손으로 만지자 터진 입술에서 피가 묻어 나왔다. 침을 뱉고는 성한 입술로 담배를 물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몸에서 나는 지린내를 없애려고 건물 밖으로 기어나갔다. 날도 덥고 목도 말랐다. 엉금엉금 기어 빗속에 드러누웠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시원하게 씻어 내리지 못했다. 입을 벌리고 있어도 몇 방울 감질나게 떨어졌다. 드러누운 등이 빗물에 젖어 들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건물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정신을 잃고 빗속에 누워 있다가 감기가 들어버렸다. 열이 오르고 오한이 나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정신이 들어보니 건물 안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 일어서려고 해도 다리에 힘이 없어서 픽픽 쓰러졌다.
어떻게든 나가서 뭐라도 먹어야 했다. 옷을 뒤지다가 꼬깃꼬깃한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퍼런색인 게 돈 같았다. 집으려고 숙이는데 바람이 불어서 돈이 굴러갔다. 벽에서 떨어져 걸음을 옮기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바닥에 엎어지면서 턱을 찧어버렸다. 다리만 아니라 팔에도 힘이 하나도 없었다.
바람에 돈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팔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팔꿈치로 기어서 돈을 쫓아갔다. 간신히 나무쪼가리에 걸려있던 돈을 잡아서 펼쳤다. 접혀있던 걸 펴보니 천 원짜리였다.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돈을 보자 힘이 났다.
가게로 가서 천 원짜리를 내밀었다. 주인이 쳐다봤다. 소주를 달라고 말을 하려고 해도 입안이 바짝 타서 말이 안 나왔다. 입만 벙긋거리는데 주인이 알아보고 소주를 한 병 줬다. 말도 안 했는데 작은 과자를 하나 같이 내밀었다. 그래도 챙겨주는 건 단골 가게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자 주인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코를 싸잡고 뒤로 물러섰다. 과자를 던지고는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주려면 곱게 줄 거지 냄새 좀 난다고 집어던지고 하는 싸가지가 평생 가게 주인 밖에 못할 놈이었다.
박스가 갑자기 벗겨지더니 양팔이 잡아 당겨졌다. 공익 둘이 양쪽에서 팔을 잡고서는 끌고 갔다. 품에 안고 있던 봉투에서 술병과 과자들이 쏟아졌다. 뒤에 남은 공익이 떨어진 것들을 주워서 봉투에 도로 담았다.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뿌리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계단으로 끌려 올라가다 신발이 벗겨졌다. 발뒤꿈치가 계단 모서리에 부딪혀 까졌다. 개찰구까지 끌려가서 내동댕이쳐졌다. 뒤따라온 놈이 봉투와 신발을 던졌다.
신발을 주워 신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빠른 걸음으로 옆을 지나치면서 눈을 흘겼다. 엉거주춤 일어서서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바닥에 침을 뱉고 돌아섰다. 시계가 8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도 봉투 안에 제법 되는 소주와 과자들이 남아있었다. 갑자기 잡아당기는 바람에 떨어뜨려서 금이 간 소주병이 있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금이 간 병을 따서 마셔버렸다. 잘못해서 깨지면 그냥 날아가는 게 아까웠다. 정신없이 끌려 나와서 정신이 몽롱했다. 오랜만이라 길도 가물거렸다. 내키는 대로 그냥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