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아침 10시, 길 위에 있는 것

by 류해인


’은 집을 나선다.


10월의 처음, 다섯의 평일 중 어느 날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속아 외투 하나 걸치지 않았다. 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그늘에만 가면 서늘함이 온몸을 싸고돌았다. 얇은 긴팔티셔츠는 체온을 유지시켜 주기에 턱없이 약했다.


본디 약한 것을 약한 것으로 보살피기에는―


휘이잉― 우우우우웅―


바람이 분다.


“…….”


바람이 김의 말을 채갔다.


그는 고개를 쳐올려 방금까지 본인이 머무르던, 누군가 시간을 쏟아 열세 개의 층으로 가지런히 쌓아올린 아파트를 봤다.


페인트칠을 앞둔 외벽은 군데군데 색이 비어있었다.


어느 늙은이의 얼굴에 들러붙은 못된 검버섯 같다고 김은 생각했다.


혹, 세월이 갉아먹은 흔적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빠앙―


그때, 신경질적인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김은 미동도 없이 그저 내딛던 걸음을 마저 내딛던 참이었다.


그의 좁고 왜소한 등이 경고를 보내왔다.


인기척을 넘어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란 김은 뒤를 돌아봤다.


택배 차량이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차도 한복판에 서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운전자를 향해 미안함을 담아 고개를 살짝 숙인 뒤에 그는 인도로 올라섰다.


차는 차도에, 사람은 인도에, 김은 당연한 사실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당연한 사람이었다.


차도 위 택배 차량은 당연한 이를 지나쳐 저만치에서 정차했다. 1017동 앞이었다.


벌컥 차문이 열렸다.


택배기사가 단상에서 내려오듯 사뿐한 몸놀림으로 하차했다.


회사 로고가 박힌 파란 모자와 파란 조끼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이어 기사는 차 뒤편으로 가 대문 열 듯 짐칸을 활짝 열어젖혔다.


덜그럭덜그럭― 끼익 ―덜그럭


―삑삑― 삑― 삑


이내 바코드 찍는 소리가 연이어 공기를 때렸다.


붉은 띠와 기계음은 고요한 공기에 묵묵히 스며들지 못하고 통통 튀었다.


택배기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바코드를 찍어대고는 짐칸 구석 벽에 기대어놓은 접이식 손수레를 꺼냈다.


김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택배기사의 능수능란한 동작들을 눈에 담아냈다.


김은 잘 보는 사람이다. 잘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잘 봐야 하는 사람이다.


택배기사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기사의 얼굴이 그려내는 상()이 자연스레 공기를 지나쳐 김의 두 눈에까지 닿았다.


회색빛이 감도는 피부와 지쳐 보이는 표정, 온몸으로 토해내는 무거운 숨이 고됨을 대신 말해주었다.


김은 잘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능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택배기사는 턱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무선 이어폰을 향해 연신 중얼거렸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 ……! ……….”


턱― 턱. 턱. 퉁! 텅 ―깡!


손수레에 택배박스를 올려놓을 때마다 다양한 소리가 났다.


1017동에 사는 누구의 물건이 턱, 소리를 내고, 퉁, 텅, 깡, 소리를 내는 건지, 김은 그 소리들이 궁금했다.


소리가 어떤 식으로 공기를 진동시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귀에까지 와닿는지, 무척 궁금했다.


모두들, 집에 있기는 한 걸까? 제때 물품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김은 새삼 걱정했다.


그의 걱정은 아랑곳 않고 택배기사는 수레를 끌고 단숨에 아파트 현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탄탄한 등판이 활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김은― 걸음을 옮긴다.


……휘이잉―


바람이 분다.


스스스― 톡... 톡, ―토토톡... 틱틱― 스윽, 턱... ―사락사락


길 위에 놓인 것들이 이리저리 나부꼈다.


은행잎과 단풍잎. 정체 모를 쓰레기. 시간. 바람. 빛, 소리.


김은 그저 걸었다.

집에서 외투라도 챙겨 나올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으면 따스했다.


손차양을 만들어 눈을 보호할까 하다 말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균형이 잘 잡힌 날씨였다.


“…….”


김이 속삭였다.


그는 눈을 살짝 감은 채 빛을 들이마시듯 심호흡했다.


햇빛이 비치는 곳만을 따라 내처 걸었다.


빛이 내려앉는 자리가 열꽃이 피어오르듯 포근해졌다.


계속 빛 속을 걷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곳곳에 대나무처럼 높이 솟은 아파트가 볕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시멘트 건물이 만들어낸 두터운 그늘 속에서 김은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벗어났다.


그러다 햇볕이 무사히 닿는 곳이 나오면 걸음을 늦췄다. 우두커니 섰다.


……쏴악_


쓰윽 ―쏴악...


새로운 음이 공기를 채웠다.


김은 우연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빗자루가 움직이고 있었다.

싸리빗자루.


아파트 경비원은 영문 모를 므흣한 미소를 머금은 채 경쾌한 몸짓으로 빛바랜 낙엽을 쓸어내고 있었다.


칭찬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듯 보이기도 했다.


경비원의 마음이 묻어나듯 빗자루가 움직일 때마다 낙엽이 춤을 추듯 자리를 옮겼다.


몇몇 미련 많은 낙엽만이 검게 칠해진 땅바닥에 들러붙어있었다. 미련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쏴아, 쏴아― 쏴악―


파도의 포말이 터지는 소리일 것 같다고, 분명 그럴 거라고 김은 생각했다.


하얀 물거품을 대신해 낙엽이―흩날렸다.


적갈과 황이 모인 자리가 봉긋했다.


모래성을 쌓듯 정성스레 낙엽을 모으는 경비원을 보며 김은 몰래 웃음을 만들었다.


가을바람과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낸 낙엽들은 비쩍 말라 한데 뭉치지 않고 제각기 놀며 힘없이 몸을 겹쳐갔다.


김은 걸어왔던 길과 걸어갈 길을 휘이 둘러봤다.


∩ ∩ ∩ ∩


바람이 다섯 걸음도 채 가지 못할 간격으로 봉긋한 낙엽무덤이 연석에 기대어 정갈하게 쌓여있었다.


어떤 무덤은 욕심 많은 왕의 것처럼 한가득 부풀어 올라있었다.


또 어떤 것은 아담한 것이 보기 좋았다.


김은 경비원의 노고를 위로했다.


그 순간, 볕이 가득 들어차있던 자리에 돌연히 안개 같은 그림자가 한가득 꿰차고 들었다.


빛 아래 서있던 김은 다시금 사늘한 기운을 느꼈다.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아파트가 아니라 구름의 짓이었다. 도독한 구름이 해를 막아선 것이었다.


바람을 타고 하늘 저편으로 흐르는 구름을 한참 올려다봤다.


하얗고 흐릿하고 거대한, 하지만 조용한 생명체 같다고 김은 생각했다.




오늘도 혼자 있었대요. 친구들이랑은 어울리지도 않고. ……어쩌면 좋아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괜찮아, 혼자 노는 게 뭐 어때서. ……잘 웃잖아.


종일 말도 없이 하늘이랑 나무만 쳐다보고 있다는데 뭐가 괜찮아요.


부엌에서 오가는 부모의 열띤 대화에도 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은 어려서부터 잘 보는 아이였지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수는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부엌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를 보는 건 불가능했다.




김은 시선을 길 위로 가져온 뒤, 걸음을 옮겼다.


날이 샌 어둠 속을 스무 걸음정도 걷자, 다시 길 곳곳에 빛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김은 다시 빛 속을 걸었다.


꺅, 꺄악! 꺅! 크하하학, 까악―


앙칼진 비명이 들렸다. 행복과 즐거움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초록색 담장너머로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김은 가까이 다가가 담장너머 비명이 터져 나오는 운동장을 들여다봤다.


시끌벅적, 북적북적, 왁자지껄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만한 광경이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축구공을 따라, 농구공을 따라, 피구공을 피해, 달렸다.


그 모습만 보고도 어울리는 소리를 거뜬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비슷한 것이 김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개중에 김의 시선을 단번에 끈 한 아이가 있었다.

축구 골대를 지키는 남자아이였다.


웃통을 훌러덩 벗은 모습이었다. 앙상한 어깨에서 뻗어 나온 새하얀 팔이 무척이나 짧고 얇았다.


저런 팔로 친구들이 펑펑 걷어차는 공을 막을 수 있을까, 김은 내심 걱정스러웠다.


“○○! □□!!”


아이는 큰소리로 정체 모를 주문 같은 것을 내지르며 요란한 자세를 취했다.


아이의 앙증맞은 입술을 아무리 유심히 살펴도 김은 좀체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두 팔을 마구 내저으며,


피슝! 우오오― 크아아아!!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마치 만화에서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듯했다.


동작을 취할 때마다 여봐란듯이 꿈틀대는 아이의 날개뼈가 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이가 무사히 공을 막아내는지 궁금했다.


김은 담벼락이 내뱉는 숨결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다가가 아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격자무늬로 구멍이 송송 뚫린 담벼락을 타고 올라온 덩굴이 유난히 거슬렸다.


김이 때 아닌 덩굴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웃통을 벗은 아이의 기합소리는 상대편 아이가 공을 몰고 달려올수록 커져갔다.


후합! 크아아! 이야얏!


뻥! ……촤륵, 통, 통, 통통통……


그다음은, 아이들의 함성소리였다.


“골~~~~!! 예에!”


골이 터졌다.


덩굴을 한쪽으로 치운 김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하이라이트장면이 지나간 뒤였다.


추욱 늘어진 날개뼈가 골대를 지키지 못한 아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화에 나오는 멋진 기술을 따라 하기 위해선 피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 ……!”


김은 담벼락에서 물러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조금 전에 아이가 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 보았다.


부들부들 몸이 떨릴 때까지 힘을 줘봤지만, 아쉽게도 어떤 특별한 힘도 발휘되지 않았다.


머쓱한 듯 사위를 둘러보고 김은 다시―


걷는다.


초등학교 후문에 다다르자 문득 배고픔이 몰려왔다.


김은 아침식사를 깜박했다는 걸 생각해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식사를 차려먹기에는…….


간단히 요기라도 하자, 그는 생각했다.


김은 손이 시려 무심코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손에 종이가 잡혔다.


……천 원이다!


천 원을 보자, 그는 집을 나설 때 지갑은커녕 휴대폰마저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손에 들린 꾸깃꾸깃한 천 원이 전부였다.


어떻게 하면 천 원으로 배고픔을 달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김에게 있어서, 고민은 참으로 좋은 것이었다. 고민은 시간을 잘 죽이는 고마운 것이었다.


김은 무언가의 손을 빌려 시간을 곧잘 죽이는 편이었다.


김은 무엇이든 잘 볼 수 있지만, 시간이 죽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은 언제나 그의 눈을 피해 외로이 죽어갔다.


순간 김은 자신과 시간이 비슷한 신세라고 생각했다.


그저 흘러가고 누군가의 무언가에 의해 그저 죽임 당하는 그런 고요한 존재.


내친김에 근처 편의점에라도 가서 고민을 이어나가자고 결심했을 때였다.


김의 눈에 붕어빵 수레가 밟혔다.


빨간색과 노란색이 줄무늬를 이룬 지붕과 수레를 덮고 있는 짙은 초록색 비닐.


익히 봐왔던 붕어빵 수레가 틀림없었다.


수레는 초등학교 후문과 면해있는 놀이터 구석에 세워져있었다.

수레는 여직 잠에 갇혀있는 것이었다.




……깜짝이야.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몸을 위아래로 크게 움찔거렸다.


아들의 얼굴을 확인한 엄마는 고무장갑을 벗고 이어폰을 뺐다.


……언제 왔니? 라디오 듣느라 못 들었네.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엄마는 부엌에 내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하교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엄마는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자 김도 웃었다.


그때만큼은 엄마의 입술을 뚫어져라 볼 필요가 없었다. 웃음은 단번에 알 수 있으니까.


웃음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나 그렇다.

웃음은 입술이 아니라 얼굴과 공기에 실려 오기 때문이다.


꼭 김처럼 잘 보는 아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엄마는 웃음을 거뒀다. 그녀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매번 그랬다.


……간식 먹어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서는 친절이나 배려가 아닌 의무와 책임이 보였다.


이럴 때면 김은 눈이 안 좋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의 웃음은 눈이 썩 좋지 않아도 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의무와 책임은 눈이 좋아야만 보였다.

김은 그게 싫었다.


……먹고 싶은 거 있니?


엄마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고민을 떠넘겼다.


김은 때때로, 선택을 강요받곤 했다.


김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엄마는 싱크대 위로 난 작은 창문을 가리키는 조용한 아이를 봤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지 않았다.


몸짓의 이면을 탐색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들이 에둘러 내비치는, 에둘러 내비칠 수밖에 없는 몸짓에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그간의 경험과 아픔으로 추측했다. 추측으로 판단할 뿐이었다.


아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에, 그녀는 너무 지치고 말았다.


……붕어빵?


엄마는 바지주머니에서 낡은 지폐를 꺼내 김에게 건넸다.




김은 붕어빵에 반응하는 허기를 달래고자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엉덩이에 닿는 부분이 기분 좋게 차가웠다.


잎이 하나둘 떨어져가는 은행나무가 벤치 한켠에 엷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가을의 그림자는 옅다.


“…….”


그는 해돋이를 보며 새해다짐을 하는 사람처럼 새삼스레 의욕적으로 생각했다.


그나저나 놀이터는 과연 놀이터다웠다.


파랑, 초록, 노랑, 빨강 같은 강렬한 원색위주로 칠해진 각종 놀이기구가 놀이터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듯했다.


바닥을 모조리 우레탄으로 메운 신축아파트단지의 놀이터와는 달리,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가득했다.


완공된 지 이십 년도 더 된 아파트니 그럴 만도 했다.


끼익― 끼이이……익―


……끼이익


그네가 꿈틀대듯 바람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줄기차게 봐왔던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갇혀있을 시간이었다.


“…, …, …, ….”


김은 이십 년쯤 전에 어딘가의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다른 이름들도 뒤이어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모두 어디 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설마 죽기야 했겠어? 하고 장난 섞인 생각을 하다가도 며칠 전 사고로 세상을 뜬 친구의 동생이 생각나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


이내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가 앉아있던 벤치 옆 정자에 두 여인이 앉았다.


발목까지 덮는 니트 원피스에 카디건, 큼직한 선글라스까지, 두 여인은 빼다 박은 듯 유사한 옷차림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 것까지 같았다.


주부를 주 독자층으로 하는 유명잡지 속 모델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한 듯 보였다.


“민준이, 영어는 하고 있어요?” 아이보리 원피스에 하얀 카디건을 걸친 여자가 유모차를 해가 등지는 방향으로 돌리며 말했다.


“민준이요? 영어? 그냥 뭐… 학원 다니고, 집에서 가끔 교육용 영어방송 같은 거 틀어주고……. 하윤이는? 시작했어? 하윤이가 올해 일 학년 들어갔나?”


둘의 대화가 이어졌다.


김은 눈을 부릅뜨고 한껏 집중했다.


하윤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둔 여자가 대답했다.


“응, 일 학년. 아직 학원은 안 다녀요. 이제 슬슬 생각해봐야죠. 이게 남들도 똑같이 안 다니면 상관을 안 하겠는데, 다른 집 애들은 다 다니니까……. 우리 애만 안 보낼 수도 없고……. 민준인 괜찮은 거 같아요? 잘 다녀요?”


“학원선생님 말 들어보면 수업도 잘 따라가는 거 같고. ……뭐, 일단 애가 싫다는 소리는 안 하니까.”


“민준이가 몇 학년이죠? 하윤이보다 한 살 많았나?”


“나이는 같은데, 학년은 한 학년 위지. 민준이가 학교를 빨리 들어갔잖아.”


“아, 맞다, 맞아. 그럼 민준인 영어 말고는, 다른 학원 다니는 거 없어요?”


“그 뭐야, 운동하는 거 다니지. 축구. 일주일에 한 번씩. 원래는 태권도나 시키려 했는데, 애가 축구가 좋대. 난 태권도학원이 요 앞에 있으니까 그냥 거기 보내면 딱 좋겠다, 했더니…….”


민준 엄마는 턱으로 놀이터 대각선방향에 있는 큰 상가건물을 가리켰다.


상가 5층엔 ‘경희대 태권도’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렇구나…….” 하윤 엄마는 잠시간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분명 아이를 어떤 학원에 보내야 할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하윤이도 운동 같은 거 하나 해야 하지 않나? 보니까, 어릴 때 시작한 애들은 키 크는 게 다르더라고.” 민준 엄마가 말했다.


“키야 어련히 알아서 크겠죠. 지 아빠 키가 있는데.”


“어머,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더라~ 아예 어려서부터 제대로 관리를 해줘야 돼. 얼굴이야 나중에 커서 수술로 된다지만, 골격이나 키는 안 되잖아. ……난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걱정이야. 나나, 애 아빠나 큰 키가 아니니까.”


“남자애들은 늦게까지 큰다니까 꾸준히 신경만 써주면 웬만큼 크겠죠. ……그건 그렇고, 민준이가 다닌다는 그 영어학원 어디 있는 거예요?”


“거기? 수내역 근처에 바로 있어. 하윤이 보내게?”


“그럴까 생각 중이에요. 그럼 민준이는 지하철 타고 다녀요?”


“아니, 저기 단지 내에 학원버스 정류장 알아? 거기서 셔틀버스로…….”


김은 그만 몸을 일으켰다.


학원 얘기는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놀이터를 빠져나간 그는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차라리 어느 학원에 갈까, 고민하는 편이 더 나을 성싶었다.


고민스럽지 않은 고민이 외려 가장 고민다운 것 아닐까? 하고 김은 속으로나마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붕어빵 수레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붕어빵 수레는 여전한 모습으로 고고히 잠들어 있었다.


김은 배가 고팠다.


어딘가를 한참 돌아다니다 돌아오면 먹음직스러운 붕어빵이 노릇하게 구워져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다시, 바람이 분다.


스스슷 스스... 탁― 탁, 타닥―


낙엽이 데구르르.


이따금씩 바람을 타고 솟구친 낙엽이 잔잔한 하늘에 수놓은 점박이 무늬처럼 보였다.


그는 낙엽봉분을 또 하나 지나갔다.


빛을 찾아― 걸었다. 볕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김은 다시 볕 아래 서서 소리를 본다.


부스럭, 스슥...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을 내려다봤다. 아파트 화단에 몸을 숨긴 고양이였다.


하양과 노랑이 한데 뒤섞인, 흔히 볼 수 있는 생김새의 길고양이였다.


작은 얼굴을 내밀어 하릴없이 덩치만 큰 인간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유난히 크고 동그란 눈이 눈에 띄었다.


“……?”


김이 말했다.


안녕이라는 의미를 담은 고양이 언어를 알지 못하는 그로선 최선의 인사말이었다.


고양이는 그저 말똥말똥, 김을 쳐다봤다. 길고양이는 조용한 인간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몇 년 전, 김이 아직 학생이었을 때 친구의 집에서 봤던 고양이와 똑 닮아 있었다.


그 친구와는 소식이 끊겼다. 친구도 김처럼 조용한 남자였다.


김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가,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다.


갑작스런 인간의 행동에 놀랐는지 고양이는 화단을 폴짝 뛰어넘어 달려 나갔다.


생각보다 작은 몸집이었지만 그만큼 날쌨다.


한참을 뛰어간 고양이가 뒤를 돌아 김을 응시했다.


햇살을 듬뿍 받아낸 고양이의 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고양이도 붕어빵을 먹을 수 있을까? 김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고양이는 잠시 움찔댔다.


김은 내심 기대하기 시작했다. 길고양이와 간식을 나눠먹는 사이가 된다는 건, 무척 근사할 것 같았다.


고양이는 돌연 그 자리에 배를 깔고 엎어져버렸다.


이에 김도 연석에 걸터앉았다. 태양빛에 달궈진 연석이 따뜻했다.


그는 차도와 고양이를 번갈아 보며 돌아올 리 없는 대답을 기다렸다.


……부우웅, 부웅……


그때, 자그마한 트럭 한 대가 차도로 들어섰다. 짐칸이 달린 트럭이었다.


트럭은 자그마한 동네슈퍼 앞에 정차했다.


김이 기억하기로는 그 슈퍼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드르륵,


“어, 왔어?”


슈퍼 주인은 미닫이문을 열고 나와 트럭기사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름은, 모른다. 십 년을 넘게 본 사이인데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이 김은 놀라우면서도 다소간 씁쓸했다.


어쩌면 몇 번이고 말해줬는데, 김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런 부분에 유독 취약했다.


“예, 왔습니다~” 트럭기사는 짐칸을 열어 차례차례 박스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여긴 유독 아이스크림이 잘 나가네. 한여름도 아니고.”


“그러게 말이야. 초등학교가 있어서 그런가?”


주인의 얼굴엔 보기 좋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기사는 박스를 척척 내려놨다. 모두 익숙한 아이스크림 상표가 붙어있었다.


“읏차! 여기까지! 열 개, 맞죠?”


“맞습니다~ ……요즘 요놈이 그렇게 잘 나간다니까?” 주인은 봉해놓은 박스를 부욱, 뜯어 젖히고는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 ……아, 이게 새로운 맛이 나온 거구나? 몰랐네. 나중에 먹어봐야겠다. 형님은 먹어봤어요?”


“당연히 먹어봤지. ……근데, 그냥 그래. 요즘 어린애들 입맛은 당최 알 수가 없다니까? 왜 이런 걸 맛있다고들 사먹는지……. 먹어볼래?” 주인은 단숨에 포장지를 뜯어 트럭기사에게 건넸다. “자.”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기사는 한입 가득 물었다.


한참을 오물거리며 음미하던 기사는 다시 한입 베어 먹었다.


주인은 마치 직접 만든 제품이라도 되는 양 기대에 찬 얼굴이다.


“음.”


이윽고 트럭기사가 입을 열었다. 맛있는 걸 먹었을 때 내뱉곤 하는 ‘음!’하는 감탄사가 아닌 끝을 저 밑바닥까지 내린 소리였다.


“그냥 그러네요. 너무 달다. 특별할 게 없는데요?”


그래도 기사는 슈퍼주인의 호의에 보답하듯 남김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그치? 그렇다니까?” 슈퍼주인은 본인의 입맛이 절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인정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에 대한 품평을 마친 둘은, 박스를 뜯어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은 현재 가진 천 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


이윽고 그는 시선을 고양이에게로 옮겼다. 고양이는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볕을 쬐고 있었다.


깜박_깜박_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당장이라도 까무룩 잠이 들 것 같았다.


김은 고양이의 기분 좋은 선잠을 방해할 마음은 없는 터라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휘이잉,


바람이―


…스스슥, 탁, 탁, ……타다닥, 턱, 턱―


낙엽이―


김은 다시 볕을 찾아 걸었다.


해가 하늘 높이 떠올라서일까, 그림자는 점차 짧아졌다.


짧아진 그림자만큼 볕이 늘어갔다. 볕을 찾아 애써 걸을 필요가 없었다. 볕은 어느 길에나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는 가다 서다를 되풀이했다. 걸을 때마다 주머니에 넣은 손에서는 지폐의 감촉이 느껴졌다.


붕어빵이 될지, 아이스크림이 될지 알 수 없는 천 원.


삽상한 바람과 따스한 볕 아래 서있는 김은 거듭 생각했다.


거듭한 숙고 끝에, ……입을 열었다.


“…….”


조금 전에 지켜봤던 슈퍼주인과 트럭기사의 열띤 대화는 얼마간 김의 호기심을 자극시켰지만, 써늘한 바람이 부는 날에 먹는 ……을 자빠트리진 못한 듯했다.


그러나, ……을 먹기 위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는―


다시 걷는다.


햇살이 따사로웠다.


그는 다시 놀이터로 가 ……을 먹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을 확인했다.


붕어빵 수레는 여전히 초록 비닐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민준, 하윤 엄마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엄마.


그 간단한 단어는 이따금씩 김의 마음속에 세찬 폭풍을 일으키곤 했다.




김은 엄마가 준 돈을 남자에게 건넸다.


돈을 받아 든 남자는 말없이 흘긋 김을 내다봤다. 의도를 살피는 눈빛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눈앞의 존재를 확인하는 눈이었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숙여 능숙하게 붕어빵을 구워냈다.


반죽 - 팥 - 반죽 - 뒤집기


김은 그 순서를 알고 있었다.


그는 남자의 손이 순서에 알맞게 움직이는지 지켜봤다.


김은 순서가 정해진 당연한 것을 좋아했다.


잠시 후, 남자가 붕어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김에게 건네주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놀이터를 마주 보고 있는 커다란 상가건물을 향해 걸었다.


건물 앞 작은 주차장에 세워진 태권도도장 봉고차가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뒤꽁무니에는 ‘밝은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이 타고 있습니다!!!!!!’ 하고 프린트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느낌표가 무려, 여섯 개다.


김은 주차장을 지나쳐 건물 옆면을 돌았다.


약국, 카페, 세탁소, 반찬가게,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보였다.


스스스…,


널찍한 건물이 바람을 막는 것인지 낙엽들이 섣불리 몸을 띄우지 못하고 움찔대는 것으로 그쳤다.


김은 마냥 걸었다.


상가건물을 빙 둘러 걸으며 즐비한 가게 속 상인들을 흘겨봤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 하고 내던지듯 중얼거린 김은 샛길을 통해 다시 아파트단지로 들어섰다.


다시금 적적한 풍경이 들어찼다.


마주 보고 서있는 아파트 사이로 직사각형 모양의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은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것처럼 곳곳이 비어있었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걷던 그의 눈에 지하주차장 입구 옆 경비초소가 들어왔다. 초소는 비어있었다.


―싸악 쏴아... 쓰으―


어렴풋하게나마 들려오는 빗자루소리로 보아 어디선가 경비원이 부지런히 낙엽을 쓸고 있을 것이다.


“저기요~”


김은 한낮으로 내달리는 시간에 발맞춰 부지런히 오르는 기온을 고스란히 느꼈다.


“저기요!”


무의식적으로 김은 목소리가 한가득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겐 그런 일이 잦은 편이었다.


중년의 남자. 유난히 부리부리한 눈이나 높이 솟은 코가 젊었을 적에는 미남소리를 적잖이 들었을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곰살궂은 인상이었다.


남자는 멋쩍은 얼굴로 김을 보며 말했다.


“저, 미안한데, 차 좀 밀어줄래요? 다리가 이래서…… 힘을 못 주거든요.”


남자는 왼쪽 무릎 밑으로 깁스를 하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낀 목발이 유독 불편해 보였다.


“…….”


김의 멀뚱한 표정에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똑같은 의미가 담겨있지만 조금은 구성이 다른 문장을 다시 뱉었다.


그제야 김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남자는 김이 자신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남자는 목발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김은 남자의 차를 힘껏 밀었다. 생각만큼이나 무거웠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생전 처음 깁스를 해봤는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네요. 하하.” 남자는 예의 머쓱한 웃음을 만들어보였다.


“…….”


아는 것이 나오자 김은 냉큼 방긋이 웃어보였다.


김은 사람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사실 모든 대화에 능하지 못한 편이다.


반면, 목발을 짚은 남자는 대화에 목마른 사람처럼 굴었다. “여기 아파트 사세요?”


“…….”


김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엔 연약한 미소 하나가 걸려있다.


휘이잉―


어김없이 바람이―


“이야, 그렇구나. 난 여기.”


남자가 다시 목발을 들어 올려 등지고 있는 아파트를 가리켰다.


“1017동.”


그렇게 말한 남자는 거무튀튀하게 그을린 얼굴을 찌그러트리며 웃었다.


“…….”


김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손바닥을 내보이며 남자의 부상 입은 다리를 지목했다.


그리곤 꽤나 시기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대화를 걸어온 사람에 대한 예의 같기도 했다.


“아, 이거요?” 남자는 깁스를 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축구하다가……. 일요일마다 여기 앞에 초등학교에서 조기축구를 하거든요. 근데 안 어울리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이 꼴이 났네.” 남자는 하핫! 하고 파안대소했다.


남자의 입이 보다 크게 열리고 상체도 살짝 뒤로 젖혀졌다.


김도 조금은 더 활짝 웃었다.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김이라도 지금이 헤어질 타이밍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김은 조금 어색하지만, 이만 가보겠다는 의미를 지닌 미소를 지었다. 이때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보다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


“아, 네! 고마웠어요.”


남자는 끙끙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목발을 조수석에 집어던지듯 넣었다.


김은 남자를 일별하고 다시 경비초소를 지나쳐 갔다. 여전히 비어있었다.


이내 깁스를 한 남자가 운전하는 차량이 천천히 김을 지나쳐갔다.


아까보다 한결 넉넉한 햇살을 받은 자동차는 황황히 빛났다.


자동차는 좌회전을, 김은 우회전을 한다.




……엄마가 갔어.


한쪽 볼에 작은 미소를 내건 채 아빠의 입술은 분명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은 웃지 않았다.


메마른 볼에 살며시 번지는 적막한 미소는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미소를 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웃는 건 쉽지 않다.




자신은 아직 이곳을 빠져나갈 여건이 못 된다고 김은 생각했다.


정면에 아파트단지로 들어서는 쭉 뻗은 외길이 펼쳐졌다.


길의 중간지점 왼편으로 학원 버스 전용정류장이, 우측에는 철쭉이 심어져있는 화단이 들어차있었다.


이른 여름만 되면 쪼뼛한 봉오리가 터지듯 벌어져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바람과― 바람이―


……휘이이이―


외길을 따라 질러간 바람은 아파트 외벽을 만나 여러 갈래로 부수어져 흩어졌다.


길 끝에 우두커니 서있는 낡은 시계탑은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은 잘못 본 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서 재차 확인했다.


다시 보아도, 열한 시다. 역시나 시간은 누구에게든 어느 것이든 자리를 내어준다. 죽임을 당한다.


“…….”


김은 부러 기대에 찬 듯 중얼거렸다. 마치 기다리던 약속시간이라도 된 것 마냥.


그는 시계탑에서 우측으로 돌았다. 계속


―걸었다.


틈틈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돈은 바지주머니에 들어있었다. 천 원이라는 가치, 그대로다.


슈퍼를 지나, 길게 늘어선 은행나무와, 낙엽봉분을 서너 개쯤 지나서 놀이터에 다다랐다.


김은 기대에 차서 놀이터 구석을 응시했다. 붕어빵수레는,


……움직이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한 남자가 수레를 끌고 있었다.


―드륵, 드륵... 드르륵―


수레에 달린 네 개의 바퀴가 굴러갔다.


드르륵, 덜컹, 턱, 드륵... 사삭, 끼이익― 끼익,


작은 돌에 걸리기도, 낙엽을 지르밟기도, 보도블록에서 아스팔트로, 그 경계를 넘어 굴렀다.


김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엄마에 이어 아빠 역시 세상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긴히 쓸 데가 있다는 듯이.


마치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삶을 제공했다는 듯이 당연하게.


김은 그 점을 무척 이상하게 여겼다.


타인의 말을 잘 볼 수 있도록 말을 앗아간 것과 같은 이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한 지점만큼은 다른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몹시 중요한 어느 부분. 죽음과 단절 너머에 무언가가.


홀로 남은 김은 평소처럼 말 한마디 없는 집이라는 공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가시처럼 밀려드는 침묵에 고통을 느꼈다.




휘이...


바람은,

점차 잠잠해진다.


김은 목발을 짚은 남자를 도와주었던 주차장을 지났다. 주차장은 여전히 한산했다.


이번에도 경비초소를 지났다. 이번에는 경비원이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일전에 봤던 경비원이었다. 낙엽을 쓸던. 봉분을 만들어내던.


…붕어빵수레는 경비초소를 지나 왼쪽으로 돌았다.


“…….”


김의 발이 땅에 붙었다. 그의 얼굴이 말을 한다.


겁과 망설임을, 그리움과 걱정을 말한다. 김이 머뭇거리는 사이 수레는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갔다.


김은 부랴부랴 달려가 수레를 쫓았다. 수레는 단지를 빙 두르고 있는 인도로 접어들었다.


―드륵, 키잉, 키잉, …끼릭, 크악,


보도블록과 맞닿은 수레바퀴는 짐승의 울음 같은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렇게 오 분쯤 지나자 수레는 다시 우측으로 돌아 들어갔다.


김은 현재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이대로 쭉 걸어가 다시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익숙한 아파트단지가 나올 것이다.


붕어빵수레가 멈췄다.

수레가 드디어 기지개를 켰다.


수레를 끈 남자는 익숙하게 수레의 바퀴를 고정시키고 초록이불을 걷어냈다.


이어서 짊어지고 온 배낭에서 반죽으로 보이는 누런 액체가 든 커다란 봉투를 뜯어 어딘가에 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익숙한―

황금빛의 양은주전자.


휘이잉_


다시,


바람이 분다.


그쯤 되자, 김은 슬금슬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여유롭게 붕어빵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자, 그는 마음먹었다.


덜그럭, …달그락, 텅텅, ……깡깡, 깡,


붕어빵수레에서 별안간 금속음이 들려왔다.


이 모든 것들이 붕어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피어올랐다.


김은 붕어빵수레가 잘 보이는 근처 벤치에 가 앉았다. 그리곤 하염없이 붕어빵수레를 바라봤다.


하도 만지작거려 꼬깃꼬깃해진 천 원을 그러쥔 그는 얼른 근사한 붕어빵이 구워지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반죽 - 팥 - 반죽 - 뒤집기


당연한 순서를 되새기며.


첫 번째로 만들어진 붕어빵은 당당히 본인 차지가 될 거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며 그는,


……휘이잉,


바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