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태업

by 류해인

#김 군

평소 김 군은 새벽 다섯 시면 눈을 뜬다.


오늘도 역시 다섯 시 정각으로 설정해놓은 휴대전화 알람이 채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뒤, 두 팔을 쭉 뻗었다. 그러곤 반쯤 감긴 눈으로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알람을 끈다. 그것으로 김 군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도 어제와 같다.


김 군의 하루는 어제도, 오늘도, 기막힌 운이 들이닥치지 않는 이상 내일도, 같은 모양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여기서 말하는 기막힌 운이라 함은, 그가 제출한 입사지원서가 모 회사의 모 대리, 혹은 모 과장, 여하튼 신입사원채용을 담당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그 이유는, 김 군의 입사지원서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끼적이던 일기처럼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큰 사건이나 사고 없이 고등학교와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하자면 수많은 학생들 틈에 끼어 어디에도 나서는 일없이,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듯 관성에 이끌려 지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순간에도 나서지 않았다는 말은, 어떤 방면에도 특출한 것이 없다는 방증이다, 라고 인사과 모 과장은 생각한다.


어찌 보면 조금은 무례하고, 대한민국 학생들에 대해선 쥐뿔만큼도 모르는 사람이 할법한 섣부른 판단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혹은 그녀는―그럴만한 힘과 지위가 있고 능력이 있다.


그 사람은 단지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뿐이다. 일을, 하는 것이다. 김 군은 하지 못하는 그 ‘일’이라는 것을.


여기서 말하는 그들의 ‘일’이란, 어떻게든 회사의 문턱을 넘어보려 아등바등 달려드는 취업준비생들을 거르고, 거르고, 거르고, 또 거르는 것이다.


거르고 거르다 적당한 수의 신입사원을 뽑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만일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면, 뉴스에는 이런 식의 짤막한 기사 한 줄이 올라갈 것이다.


‘○○기업, 올해 상반기 신입공채서 채용기준 한껏 끌어올려. 더 높아진 취업의 문턱.’


김 군이 살아온 인생은, 다시 말해 김 군이 입사지원서에 적어 넣은 이력은, 회사의 거름망에서 가장 먼저 걸러질만한 수준의 것이었다.


입사지원서 좌측상단의 사진만 제거한다면 이 사람이 이 사람인지, 이 사람이 저 사람인지, 저 사람이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이 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유사한 이력들의 향연이다.


□□고등학교 졸, ○○대학교 졸, GPA △.△△, 토익 ○□△점. ✩✩기업 인턴 경험 2개월.


침대를 빠져나온 김 군은 곧바로 방의 불을 켠다.


형광등 불빛에 반응하는 두 눈으로 지저분한 책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 군은 책상을 일별하고 바닥에 놓인 2리터짜리 생수병을 들고 물을 벌컥 마신다. 손등으로 입가를 대충 닦고 세면바구니를 챙겨 방을 나선다.


그는 복도 끝 방에 산다.


날마다 목도하는 적막한 고시원 복도 광경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각 방문 앞에 널브러진 각양각색의 슬리퍼가 한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서 빨리 일어나 어디든 좋으니 나가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 씨발.”


김 군이 돌연 욕을 내뱉는다.


다른 사람의 슬리퍼를 밟지 않게 조심하며 어둡고 긴 복도를 걷는다.


더없이 적요한 고시원은 김 군의 걸음걸음에 한껏 집중하는 듯하다.


별안간 느껴지는 압박감에 그는 서둘러 공용세면장으로 들어간다.


환기가 원활하지 않아 켜켜이 누적된 습기의 냄새에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김 군은 연신 욕을 뇌까리며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다. 신음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물은 차갑다.


두피를 분리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억누른다.


힘겹게 머리를 감고서야 수건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김 군.


하는 수없이 웃통을 벗어 티셔츠로 대충 머리카락의 물기를 제거한다.


“……씨발.”


김 군의 하루는 욕으로 시작된다.





#이 양

이 양은 온 식구를 깨울 만큼 우렁찬 알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학원에 늦지 않게 가려면 적어도 여섯 시 삼십 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한숨을 길게 내쉰 이 양은 이불을 걷어차고 알람을 끈다.


밤새 충전해 둔 휴대폰은 완충상태다.


불을 켜고 전날 밤에 챙겨둔 가방 속 교재를 다시 확인한다. 빠트린 건 없다.


종일 실내에 있기 때문에 굳이 알아둘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녀는 괜히 일기예보를 들여다본다.


날씨는 흐리다. 어제도 흐렸고, 내일도, 당분간은 내내 흐릴 것 같단다.


서둘러 세수를 마치고 보습을 위한 기초화장품도 잊지 않고 꼼꼼히 발라준다.


어젯밤에는 비어있었던 화장솜을 담는 플라스틱 통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양은 거울 속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피부 상태를 확인한다. 탱탱하고 매끈하던 얼굴은 현저히 줄어든 수면시간과 늘어난 스트레스 때문인지 속절없이 상하기 시작했다.


큼직한 렌즈가 박힌 안경으로 가려도 소용없을 정도로 짙은 다크서클과 오돌토돌 올라온 뾰루지에 마냥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그때 어렴풋이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양의 어머니가 일어난 것이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총총한 걸음걸이로 부엌의 환한 조명을 켜고 국을 데우기 시작한다.


이 양은 아주 간단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얼마 전 새로 구입한 트레이닝바지를 꿰어 입으니 짜증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하다. 하얀 일회용 마스크를 가방에 챙겨 넣는다.


이 양의 어머니가 노크를 하고 방문을 빼꼼 연다.


“딸, 밥 먹어야지?” 애써 끝을 올려 밝음을 가장한 목소리다.


온갖 고뇌와 그 고뇌보다 더 짙은 부담감이 들어있다는 듯 묵직한 가방을 현관 옆에 두고 이 양은 대답 없이 식탁에 가 앉는다.


식탁에는 다양한 재료로 만든 반찬들과 된장찌개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이 양이 말없이 식사를 시작한다.


어머니는 반대편 자리에 앉아 뜨거운 녹차를 마시며 멍하니 딸아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들어가서 자라니까 매번 이렇게 나와 있어.”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 양이 미안한 마음을 약간의 짜증에 담아 말한다.


“잠이 와야 자지. 엄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먹어.”


이 양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곤소곤 말한다. 혹여 안방에서 자고 있을 남편이 깰까 조심하는 것이다.


“거기 밥은 먹을 만해? 맛없으면 도시락이라도 싸줄까?”


이 양은 학원 건물 지하에 있는 백반 집에서 월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도시락은 무슨.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워. 그리고 거기 밥, 꽤 괜찮아. 어차피 많이 먹지도 않는데 뭘……, 됐어. 배만 채우면 되지.”


이 양은 절반가량 남긴 밥을 싱크대에 버리고 물과 여러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종합비타민부터 비타민C, 식이유황, 루테인, 오메가3까지. 두 번에 걸쳐 알약들을 나눠 섭취한 뒤 양치질을 한다.


어머니는 그런 이 양의 모습을 그저 지그시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딸아이를 보는 어미의 모습과 더불어, 이미 닳고 닳은 한 명의 인간이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가는 또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무덤덤한 모습이 공존해있다.


지금과 같은 생활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마냥 안쓰러운 마음에 이 양의 어머니는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


“공무원이나 해. 그걸 뭘 고민하고 있어.”


딸아이의 졸업을 한 달 앞두고 남편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 문장 하나에 딸은 대학생에서 공시생이 되었다.


“엄마, 갔다 올게.”


이 양이 현관에 서서 말한다. 반년 전 처음 학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와 같은 무심한 목소리다.


“그래, 잘 다녀와. 밥 잘 먹고.”


이 양은 조용한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가 지하철역사 안으로 들어간다.


또각이는 구둣발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진다.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은 이 양은 출근하는 직장인 틈에 끼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귀에서는 요즘 음원사이트를 휩쓸고 있는 유명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이 양은 몸을 싣는다. 오늘은 운이 좋아 앉아 갈 수 있다.


이 양은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을 열어 수첩 형태로 된 단어장을 펼쳐든다.


하도 들척거려 해질 대로 해진 단어장에는 다양한 색의 밑줄과 동그라미, 별로 된 강조표시가 가득하다. 지하철은 점점 사람들도 가득 찬다.


잠시 후, 서서히 졸음이 몰려온다.


대학생시절에는 매번 잠들기가 아쉬워 하루가 멀다 하고 잠을 미루고 미루다 아침잠을 잤건만, 공시생 신세로 접어든 이후부턴 틈만 나면 잠이 쏟아졌다.


“아, 안되는데…….”


이 양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휴대폰을 집어 든다.


음악 재생을 멈추고 유튜브에 접속한다.


밀려오는 졸음을 물리치는데 시청각자료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기사를 들먹이며 그녀는 합리화를 시작한다.


어젯밤 잠들기 전 봤던 영상을 이어서 시청한다.


어느 직장인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다. 그저 그런 편집기술과 다루는 내용들도 지극히 평범하지만 구독자 수는 삼십만 명에 육박했다.


영상 속 여자의 얼굴이 예쁘기 때문이라고, 이 양은 생각한다.


영세한 IT기업에 다니는 여자인데, 수려한 외모 때문인지 뭔가 남다르게 보인다. 댓글 또한 영상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외모 찬양이 대부분이다.


이 양은 영상 속 여자의 마른 다리를 부러워하는 한편, 외모를 앞세워 구독자와 조회 수를 끌어 모아 부가수입을 올리는 것에 배알이 꼴린다.


그녀가 벌어들일 광고 수입을 생각해본다. 별안간 짜증이 치민다.


자기는 그런 치사한 짓거리까지 해가며 돈을 벌진 않을 거라고 다짐도 해본다.


부모님의 돈으로 학원비와 식비를 충당하고 있는 공시생의 다짐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이 양은 아침댓바람부터 열불이 솟구치는 걸 느낀다.


이내 지하철이 정차하고 이 양은 인파를 헤치고 하차한다. 노량진역이다.


이 양의 하루는 불만으로 시작된다.





#김 군

끈질기게 따라붙는 피로와 졸음을 떨쳐내며 김 군은 고시원을 나선다.


십 미터가량을 걸어갔을 때 평소와 달리 허전한 얼굴에 그는 발길을 돌린다.


부랴부랴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가 마스크를 챙겨 나온다. 씨발, 하고 또 한 번 중얼거린다.


김 군은 고시원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빵과 우유를 입에 털어 넣는다. 그리곤 뛰다시피 지하철에 올라탄다.


이른 시간에도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여럿 보인다.


김 군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다섯 개의 역을 지나 하차한 김 군은 손목시계를 굽어본다.


역사를 빠져나와 사거리횡단보도를 건넌 뒤, 낮고 오래된 빌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을 지나친다.


삼거리에 있는 주유소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해결한다.


김 군이 일하는 곳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꼬박 들르는 곳이다.


볼일을 보고 일터로 들어선다.


고가도로 아래 위치해 있는 이곳은 택배 하차작업이 이루어지는 작은 터미널이다.


커다란 트럭 한가득 실려 오는 택배물품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보내면 택배기사들이 본인의 근무지역에 맞는 물건을 챙겨 싣는 곳이다.


일명 ‘까대기’라고 불리는 작업으로, 김 군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아침 여섯 시 반부터 대여섯 시간 정도 일한다.


김 군은 손에 익은 일을 해치우는 것처럼 일터 곳곳을 밝히는 조명들을 켜고 트럭이 원활히 드나들 수 있도록 입구의 철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리곤 컨테이너박스로 된 사무실에 들어가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곧이어 작업반장이 들어온다.


“오셨어요?” 김 군은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어어. ……아, 맞다. 어쩌나? 오늘 창식이 대타를 못 구했는데?” 반장이 말한다.


“예? 오늘 창식이 형 안 나와요?”


“뭔 병원을 간대. 나도 잘은 모르고.” 반장은 입고 온 옷을 벗고 허름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나도 간간이 도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천천히 까자. 너 어차피 이거 뒤에 따로 일 있는 건 아니잖아? 공부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


“예……. 그렇긴 하죠.”


“그럼 됐지 뭐. 시간 초과되면 그만큼 시급은 더 챙겨주니까 상관없잖아?”


반장은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찬장에서 컵라면을 꺼내더니 말을 잇는다.


“밥 안 먹었지? 라면 먹자. 길이 막혀서 좀 늦을 거 같대. 기사한테 연락 왔어.”


둘은 라면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


트럭이 도착하면 1.5층 높이의 컨베이어벨트 시작지점에 맞춰 주차를 시킨다.


트럭 짐칸에는 박스가 빽빽하게 쌓여있다.


평소라면 두 사람이 컨베이어벨트 레일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서서 작업을 진행하지만 오늘은 김 군 혼자 해야 한다.


냉동실에서 꺼낸 아이스크림을 퍼먹듯 조금씩 박스들을 레일에 실려 보낸다.


리모컨으로 컨베이어벨트의 길이를 조정해가며 짐칸의 깊숙한 곳까지 닿게 한다. 그래야 동선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기다란 컨베이어벨트의 중간 지점에는 작업반장이 리더기를 들고 일일이 택배에 부착된 바코드를 스캔한다.


그래야만 착오 없이 물품의 도착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스를 레일 위에 올려놓을 때는 작업반장이 바코드를 보고 단번에 찍을 수 있도록 방향을 맞춰서 올려놓아야 한다.


그때 작업반장이 김 군을 향해 뭐라 소리친다.


“예?” 김 군이 되묻는다.


“더 빨리 까라고! 너무 느려! 그래서 언제 다 깔래!”


“쌀이…….”


김 군은 짐칸 가득한 먼지에 눈을 몇 번인가 깜박거린다.


“……예!”


그는 쓸데없는 이유를 들먹여봤자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대답한다.


자루 채 배달되어 오는 쌀과 같은 잡곡류는 컨베이어벨트에 걸려 잘 움직이지 않는다.


때문에 썰매처럼 생긴 깔개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2인 1조로 일할 땐 한 사람이 깔개를, 다른 한 사람이 그 위에 쌀자루를 올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혼자 하려니 시간이 배로 든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깔개와 쌀자루를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트럭 한 대, 두 대, 세 대, 차례차례 한가득 실려 있는 박스들을 옮기다 보면 옷은 땀에 젖고, 하얀 마스크 곳곳엔 까만 먼지가 묻어난다.


작업을 마친 뒤 코를 풀면 까무잡잡한 먼지가 들어찬 콧물이 나온다.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온몸이 아프고 힘이 들지만 택배하차 일처럼 짧은 시간에 짭짤한 수입을 보장하는 아르바이트는 흔하지 않은지라 김 군은 일에 열심이다.


무엇보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할당량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물을 마시며 쉬고 있을 때 작업반장이 묻는다.


“네가 올해로 몇 살이라 했지? 스물일곱? 여덟?”


“여덟이요.” 김 군은 입에 담기 부끄러운 과거라도 말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이야, 스물여덟이야? 젊다, 젊어.” 옆에서 앉아 뻑뻑 담배를 피우던 택배기사 손 씨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아이, 김 형! 너무 젊은 거 아뇨?”


“젊긴요. 하하…….” 하며 김 군은 억지웃음을 짓는다.


“그래, 요즘은 젊은 것도 아니야. 우리 딸만 해도 스물넷인데 벌써 죽는소리하던데?”


반장의 말에 손 씨가 묻는다. “형님 딸이 벌써 그렇게 됐어? 요즘은 뭐하는데? 예전에 그, 미술인가 했던 거 같은데.”


“그건 애저녁에 그만뒀지. 지금은 그냥 놀아. 비싼 돈 주고 대학 보내놨더니 취업은 안 하고. 요즘 그 뭐야, 인터넷 방송? 그거 한다고 난리야. 학원까지 다닌다니까? 요샌 그런 학원들도 있더만.” 작업반장은 혀를 끌끌 찬다. “야, 막내야 너도 그런 거 알고 있냐?”


“예? 예, 뭐. 얼핏 들어본 것도 같아요.” 김 군은 대충 얼버무린다.


“인터넷 방송? 그건 또 뭐야?” 손 씨는 새 담배를 꺼내든다.


“나도 잘은 모르지. 그냥 지들끼리 찍고 어디 사이트에 올리면 거기에 광고가 붙는데. 요즘은 그거 하는 사람들이 제일로 잘 나가잖아. 돈이란 돈은 싹싹 긁어모아. ……암튼 희한한 세상이라니까.”


작업반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저… 반장님, 이만 가볼게요.” 김 군이 말한다. 평소보다 한 시간가량 늦은 퇴근이다.


작업반장의 인사를 뒤로 하고 김 군은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얼굴을 튼 몇몇 택배기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주유소를 지나쳐가는 길에 다시 화장실에 들러 일을 보고 먼지가 가득 묻은 시꺼먼 마스크를 점퍼주머니에 넣는다.


그는 세면대 거울을 보며 속눈썹에 성에처럼 들러붙은 먼지조각을 떼어낸다.


김 군은 노곤한 몸을 이끌고 비척비척 역으로 향한다.


정오가 지난 손목시계를 보며 하루는 너무 고되고 힘들다고, 김 군은 생각한다.





#이 양

교실에서는 수업이 한창이다.


이 양은 앞에서 14번째 줄에 위치한 책걸상에 앉아있다.


이곳에서 150여 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넓고 길쭉한 교실 중간쯤엔 작은 모니터가 설치되어있다.


현재 진행 중인 수업을 비추는 것이다. 뒤쪽에 앉은 학생들은 현장감이 풍부한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졸지 마라~ 졸려? 이 시국에 잠이 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칠판을 종횡무진 누비며 강의에 열중하던 강사가 소리친다. 그의 얼굴에는 측은함을 넘어선 경멸이 담겨있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라도 못 자겠다. 안 그래? 안 쪽팔려?”


강사는 맨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을 보며 말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더욱 열을 낸다.


“아니, 혹시 여기에 건물주 자식 있어?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상권 좋은 곳에 건물이 있다. 그래서 뭐, 가만~히, 정말 집에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매달 꼬박꼬박 돈이 들어온다. 손 한번 들어봐.”


아무도 들지 않는다.


“없어? 한번 들어봐. 민망해서 그래? 그게 왜 민망하니? 나 같으면 자랑하고 다니겠네.”


이 양은 무심코 주위를 둘러본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짜증 섞인 얼굴을 짓고 있다.


“지겹지? 평생 들을 잔소리며 같잖은 충고나 자랑은 여기서 다 듣는 거 같지 않아?”


“예 그렇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어떤 남학생이 말한다. 교실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강사는 씩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한 번 더 하자. 내가 아까 건물주 얘기했지? 뭐, 요즘……, 아니지 요즘이 아니지. 애초에 쭉 그렇게 흘러왔지. 돈이 돈을 버는 거야. 원래 그게 세상 이치라고. 그래서 연예인들이 돈 좀 모았다 하면 그렇게들 부리나케 건물부터 사고 보는 거야. 그런 식으로 건물 사두고, 돈 들여서 외관도 좀 더 그럴싸하게 바꾸고. 그렇게 몇 년 지나면 바로 본전 뽑는 거야.

그때 이후론 뭐,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하고 사는 거지. 할 필요가 없지! 월세. 말이 월세지. 정말 월세야. 진짜 매달 내야 하는 거라고. 상상이 돼? 건물주는 똥을 싸든, 잠을 퍼질러 자든, 밥을 처먹든, 매달 월세가 통장에 꽂히는 거라고. ……사족이 길었는데.”


강사는 플라스틱 병에 든 커피를 홀짝였다.


“어쨌든, 내 말의 요지는 이거야. 우리한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희박하잖아? 까놓고 말해서 없잖아? 내가 이거 강사노릇 몇 년 한다고 대한민국 어디 건물 한 채라도 살 수 있을까? 아, 뭐, 지금부터 아끼고 아껴서, 나중에 나이 먹고 집이며 차며,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으면 저기 어디 한적한 동네, 한 3층짜리 상가건물 하나는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근데 그럼 뭐 해. 나이는 이미 먹을 만큼 다 먹었는데. 돈놀이는 해보기도 전에 죽을 걸? 진짜 부자는 젊어서, 몸 건강할 때 부자여야 하는 거야.”


교실 곳곳에서 긍정의 끄덕임이 빗발친다.


“우리가 건물주가 될 확률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거지. 근데 여기서 건물은 일종의 상징 같은 거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야. 불로소득이 있느냐, 없느냐, 그거야.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죽어라 일을 해서 계속 돈을 벌어야 하거든. 나처럼 말이야. 내가 지금 이 분필을 놓잖아? 그럼 당장 다음 달부터 수익이 제로야 제로. 우리 가족 다 굶어 죽는 거야. 쌀 사 먹을 돈이 없거든.

……자, 핵심은 이거야. 우리는 돈을 벌어야 돼. 일단 돈을 벌려면 직업이라는 걸 가져야 하는데, 이 세상 그 많은 직업 중에 공무원이 되면 나이 많다고 중간에 해고당할 일도 없고, 다 늙으면 연금이라는 것도 나온대!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 다들 그런 생각으로 여기 온 거 아니야? 맞지? 그런데 그 공무원이라는 건, 일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한테만 주어진단 말이야. 아무한테나 나랏일을 시킬 순 없잖아? 그 자격을 취득하려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돼.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선 공부를, 그것도 강도 높은 공부를 해야겠지. 왜? 이걸 하려는 사람이 존나게 많거든! 여기도 봐봐. 지금 이게, 와, 씨, 몇 명이야? 말도 안 나오지. 그런데 잠이 쏟아지네? 그럼 뭐야? 한마디로 좆 된 거지.”


그 타이밍에 교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점심시간.


이 양은 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이렇게나 커다란 건물의 주인은 누구일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신의 아버지가 건물주가 아닌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건물주의 딸이었다면 이런 개미굴 같은 공무원학원에 틀어박혀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원망도 한다.


이윽고 이 양은 돈 걱정이 없는 삶을 상상해본다. 좋은 집, 차, 옷. 그녀가 상상한 것들은 죄다 영화와 드라마가 보여준 단편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빈곤한 상상력으론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그려내는 것조차 버겁다.


지하식당가에 도착하자 음식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식당에는 같은 처지의 학생들로 들끓는다.


모두들 한날한시에 드레스코드를 맞춰 이곳에 모이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옷차림이다.


“…어?”


이 양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만치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한 남학생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의 하얀 피부와 긴 다리가 돋보인다. 이미 학원에서는 연예인 같은 존재다.


많은 여학생들이 그의 얼굴과 몸을 보며 마른 입술을 훔치곤 했다.


그중 자신감이 넘치는 걸로 모자라, 불효를 서슴지 않겠다는 마음까지 넘쳐버린 몇몇 여학생들은 혼자 입맛을 다시는 걸로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그건 바로, 삭막한 공무원 학원에서 행할 수 있는 극상의 호감표현인 비싼 간식과 본인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는 것.


한번 그런 광경이 펼쳐지자, 행여 놓칠세라 너도나도 그 남학생에게 애정이 담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생태계 피라미드에서 최상층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그러하듯, 그 남학생 또한 연애사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누구보다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그로선 전혀 급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학생들의 호의에 예의 바른 태도로 일관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사려 깊은 모습에 감동한 여학생들은 급기야 그를 공공재, 혹은 신화적인 존재로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개인적인 연애상대가 아닌 저만치에 서서 인간세상을 굽어 살펴주는 존재.


반면, 이 양은 진정한 덕질이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내키는 대로 마음을 표출해대는 만행을 저지르진 않았다.


이렇게나마 우연히 그를 마주칠 때면 흘긋 훔쳐보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이었다.


곳곳에 포진한 그의 팬들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두 눈을 번뜩인다. 하지만 누구도 일정 거리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그네들의 갈 곳 잃은 사랑과 다소 한심스러운 의지가 빚어진 협약은 무사히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식사하는 자리로부터 한 칸씩은 마치 성역이라도 된 듯 비어있다.


이 양은 부러 널널하게 비어있는 자리를 지나쳐 그가 마주 보이는 먼 자리에 가 앉는다.


자리에 앉으니 식당 아주머니가 안숙한 미소로 아는 체를 한다.


“학생, 왔어?”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서도 이 양의 신경은 그에게 몰려있다.


“오늘은 고기도 있어. 빨리 가져다 먹어.” 식당 아줌마는 다정하게 말한다. “그렇다고 또 왕창 가져왔다가 남기진 말고.”


이 양은 넓은 접시를 가져다 한쪽에 밥을 푼다. 뒤섞이지 않도록 유의하며 원하는 반찬들을 가지런히 담는다.


제육볶음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식사 중에도 이 양의 시선은 그의 움직임을 좆느라 바쁘다.


몇 번이나 젓가락질이 허공을 가른다.


밥과 반찬들을 입에 넣으면서도 그와의 연애는 어떨까, 세 줄이 들어간 츄리닝이 아닌 한껏 꾸민 모습은 어떨까, 어떤 성격일까, 상상한다.


이미 이 양에겐 오늘 반찬으로 나온 제육볶음이 유난히 짭짤하든, 콩자반의 콩이 견과류마냥 딱딱하든, 오징어채의 오징어가 상했든 상관없다.


그녀는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서야 깨달은 참이다.





#김 군

김 군은 오천오백 원을 주면 원하는 만큼 밥과 반찬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고시원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참이다.


참고로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식사 후에는 성욕처럼 들끓는 흡연욕구를 참아내는 게 고역이다.


담뱃값이 너무나도 비쌌기 때문에 돈이 궁할 때면 어김없이 등한시되는 것이 바로 담배였다.


지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원망하고 욕을 퍼부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금연과 흡연을 왕래했다.


이쑤시개를 담배처럼 물고 빨고 해도 니코틴의 맛이 느껴질 리 만무하다.


그는 애꿎은 이쑤시개를 물어뜯으며 고시원으로 돌아와 공용부엌에 상비되어있는 믹스커피를 타먹는다. 혀끝으로 밀려오는 달달함에 위로를 받는다.


김 군은 서둘러 양치질을 하고 가방을 챙긴다. 곧장 근처 시립도서관으로 향한다.


지원하는 회사에 맞게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기 위함이다.


분명 남들에게 본인을 소개하기 위한 ‘자기소개’서라고 했으나, 무의식의 저편 깊숙한 곳에 상주하고 있는 것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끼워 맞춘 기억이나 잔뜩 부풀린 추억들을 열거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김 군은 생각한다.


자기소개서에서는 그간 해온 모든 행동에서 당위성과 감상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통해 뭔가를 깨우치거나 배운 점도 있어야 했다.


현재의 성격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에 대해 역추적하듯 가정형편과 분위기, 교우관계, 어릴 적 미비한 사건사고들까지 파고들어야했다.


과거의 나를 착취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이 그럴싸하게, 아주 그럴듯하게 보여야 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애석함은, 김 군이 생각하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일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회사의 입장에선 전혀 그럴듯하지 않은 일로 비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럴듯하지 않은 인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건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다.


김 군이 묵묵하게 걸음을 이어간다.


산중턱에 위치한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길고 긴 오르막길을 올라야한다.


운동하는 셈치고 오르기에도 버거울 만큼 경사가 심한 곳이다. 김 군은 가방을 고쳐 메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절반쯤 올라갔을 때 별안간 요란한 벨소리가 울린다.


“어, 엄마.”


김 군은 남아있는 기운을 한데 끌어 모아 짐짓 밝은 목소리를 낸다.


엄마의 귀에는 어떻게 들렸을지 걱정스럽다.


엄마를 지방에 홀로 두고 상경한 것이 항상 죄송스러웠다. 구직자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 미안함은 배가되었다.


―아들~ 밥은?


“먹었지. 엄만?”


―엄마도 먹었어. 도서관 가는 거야?


가파른 오르막에 헐떡이는 김 군의 숨소리를 듣고 추측하는 것이리라.


“응. 엄마 일은? 안 힘들어? 허리 아플 텐데.”


―아프긴 무슨. 하나도 안 힘들어. 일하면서 공부하는 아들이 힘들지. 편의점은 할 만해?


“아침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이 와서 조금 바쁘긴 한데 괜찮아. 손님 없을 땐 앉아서 틈틈이 공부도 할 수 있고.”


먼지 가득한 짐칸이 아니라 깨끗한 편의점에서, 무거운 택배박스가 아니라 바코드를 찍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김 군은 속으로나마 중얼거린다.


―다행이네. 아들, 뭐 필요한 건 없어? 용돈 안 필요해?


“에이, 됐어! 용돈은 무슨. 있어봤자 쓸 일도 없어요. 괜찮아.”


―알았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그때, 휴대폰 너머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 엄마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 밥 잘 챙겨 먹고! 또 통화해.


김 군은 통화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열람실 좌석은 평소처럼 만석이다.





#이 양

이 양의 수업은 오후에도 계속된다.


과목에 맞춰 강사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적절한 잔소리와 동기부여, 가혹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당신네들은 옳은 선택을, 아주 시기적절한 선택을 한 거라고, 위로와 격려까지 해준다.


졸음이 몰려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수업에 집중한다. 눈을 부라리듯 힘을 잔뜩 주고 있으면 잠깐은 졸음이 가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그날의 마지막 수업이 끝난다.


이후로는 개인자습시간이다. 학원독서실에서 공부를 이어하거나, 귀가한다.


화장실에서 옷까지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놀러가는 학생들도 여럿 있다.


이 양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이상, 학원 강의실에 마지막까지 남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올 때까지 공부를 하고 간다.


기껏해야 삼사십 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부쩍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작거리는 학원을 우르르 빠져나가기 싫었다. 언젠가 학원 근처를 지나다 고등학교 동창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서로 웃으며 건네는 “고생해.” 라는 말이 그렇게 비굴할 수 없었다.


“학생, 여기 청소해야 되는데.” 익숙한 얼굴의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말한다.


“아, 네.” 이 양은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강의실을 나선다.


학원은 더없이 고요하다.


벽면에 붙은 특강홍보지와 합격후기들을 본 이 양은 참 묘하다고 생각한다.


합격을 위해선 남들 다 듣는 학원 강의와는 별도로 특강을 수강해야 한다고 넌지시 경고하는 것 같다.


합격후기를 들여다본다. 하나같이 방긋 웃는 얼굴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 밑에는 합격한 시험과 공부기한, 사용한 교재 따위가 기재되어있고 꽤 긴 격려의 말과 본인의 수험생활을 함축한 글이 빠지지 않고 적혀있다.


이 양은 훗날 합격하더라도 절대 이런 후기 같은 건 쓰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공무원학원들이 밀집해있는 거리에는 무리 지어 다니는 이 양과 같은 신세의 학생들로 넘쳐난다.


남학생들은 PC방과 당구장으로, 여학생들은 카페로, 빨려 들어간다.


그들에겐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많아 보인다.


이 양은 혹여 그런 분위기에 휩쓸릴까 두려워 서둘러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간다. 유혹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은 어김없이 사람들로 들끓는다.


지하철이 사람을 옮기는 건지, 사람이 지하철을 옮기는 건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이 양은 대롱 매달린 손잡이에 의지한 채로 유튜브에 접속한다.


등원할 때 보는 것과는 달리 죄책감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동영상 시청에 매진한다.


“다녀왔습니다.” 누가 들어도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이 양은 귀가한다.


“어, 왔어? 고생했어.”


이 양의 어머니는 아침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딸을 반긴다.


그녀의 ‘고생했어.’에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귀가한 후에는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저녁을 먹는다. 아침과는 다른 메뉴들로 구성된 밥상이다.


식사 후에는 샤워를 하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이 양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책상 앞에 앉는다.


그때 이 양의 아버지가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온다.


“딸, 어때? 할 만하지?”


“…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당히 가혹한 질문이다.


아버지의 물음에 짧게 대답한 이 양은 복습을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책에 집중한다.


“아빤 잔다. 너무 무리하진 말고, 고생해라.”


분명 격려와 걱정이 담긴 말이지만 왜 이리도 매정하게 들려오는 것인지, 이 양은 무척 의아해한다.


“네.” 이 양은 짧게 대답한다.


방문이 닫힌다.


그녀는 그날 배운 수업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 이해하려하고, 이해가 안 되면 암기한다.


그러다 불현듯 피어오르는 불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한숨만 쏟아낸다.


이윽고 옅은 피로가 밀려오고, 이 양은 휴대폰 알람이 제대로 설정되었는지 확인한다.


현재 본인의 인생에서 단언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울릴 알람뿐일 것이라는 생각에 급격히 우울해진다.


그녀는 지칠 대로 지친 몸을, ……기실, 걱정한 만큼, 견디지 못할 정도로 힘들지 않음에 다시 한 번 의아해하며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대로만 하면 합격할 수 있는 건가?


한참을 생각한 그녀는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하니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고 결론짓는다.


그렇게 이 양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김 군

자기소개서를 퇴고하고 영어공부를 마친 김 군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시원으로 향한다.


저녁은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했다.


그는 버스환승시간이 삼십 분이 아니라 삼십 시간 정도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버스정류장을 그대로 지나쳐 걷는다.


여느 때처럼 도로는 차들로 붐빈다.


저 사람들은 언제 직업다운 직업을 갖고 언제 돈을 모아서 저런 차를 구입했을까.


그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달은 휘영청 밝고 바람이 제법 거세다. 구름이 유난히도 빠르게 지나간다.


꺼놨던 휴대전화를 켜 채팅방을 열어보니 읽지 않은 수백 통의 채팅메시지가 와있다.


내용인즉슨, 오랜만에 대학동기들끼리 모이자는 것이다.


스무 명 가까이 초대되어 있는 채팅방에서 열렬히 떠들고 있는 친구는 다섯뿐이다.


모두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로, 그들의 메시지에는 화면을 뚫고 나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엿보인다.


그네들이 취업한 회사들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의 은근한 태도와 말투는 매한가지다.


“……씨발.”


걸음을 재촉한다. 답장은 하지 않는다.


김 군은 가는 길에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 사 마셔야겠다고 중얼거린다.


맥주는 꽤 비싸지만 오늘만큼은 그래도 된다고, 오늘은 어떤 특별한 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비가 입금되는 날도 아니지만, 그래도 된다고, 내일 새벽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무거운 택배박스를 나르러 가야하지만, 아직은 오늘이니 괜찮다고.


그렇게 김 군의 하루가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