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경찰서에 반드시 '경찰'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2장: 운행

by 류해인

#도상준, 한재천, 문지성

“…….”


음식이 들어있는 철가방을 들고 있는 중국집 배달원 조 모 씨는 현재 몹시 당황한다.


다름 아닌 강력계 사무실에 앉아있는 형사들의 비주얼이 퍽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꼭 형사들이 아니라, 범죄자들 같다.


사무실에는 모두 세 명의 남자가 있는데, 둥근 테이블을 빙 둘러싸고 앉아있다.


한 명은 사이즈 조정이 시급해 보이는 정장을 입고 있는 민머리고, 또 한 명은 앞머리가 두 눈을 덮고 있다.


마지막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한 인상인데 안광에 광기가 깃들어 있는 듯 필요 이상으로 형형한 느낌이다.


……아주 위험해 보인다.


배달원 조 모 씨는 셋 중 그나마 가장 평범해 보이는 문지성에게 시선을 둔 채 입을 연다.


“저……, 여기서 주문하신 거 맞죠?”


대답은 민머리, 도상준 전무의 입에서 나온다. “간짜장 둘, 삼선볶음밥 하나에 깐풍기, 사천탕수육, 누룽지탕?”


“……아, 네. 맞아요.”


배달원은 이제 됐다는 얼굴로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기 시작한다. 동시에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늘어놓는다.


“근데 역시 형사님들이라 그런가요? 인상이 참 강렬하시네요. 범죄자들이 꼼짝을 못 하겠어요.”


도상준 전무와 한재천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인다.


반면 문지성은 배달원이 들으면 오해를 살 소지가 분명한 발언을 뱉는다.


“그러니까요! 저도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니까요?”


“예? ……갑자기 뭘요?” 배달원이 반문한다.


“그러니까요!” 문지성이 수긍한다. 왜인지는 모른다.


“……아, 네? 그러니까요.”


배달원은 모든 강력계 형사들이 빠릿빠릿한 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계산을 요구한다.


“총 십만 육천 원입니다.”


음식이 테이블에 놓일 때마다 부리나케 나서서 비닐을 벗기던 도상준 전무는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한다.


“어이, 저기? 배달이 잘못 온 거 같은데?”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배달원은 쪽지에 적힌 음식내역을 읊는다.


그러자 도상준 전무는 예리한 눈초리로 잘못된 지점은 거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그 쪽지에 적힌 음식들은 분명 자기네들이 주문한 음식이 맞지만, 누락된 음식이 있단다.


그게 뭐죠? 배달원이 멍청한 질문을 던지자, 도상준 전무는 군만두라고 대답한다.


“군만두요? ……아, 서비스 달라는 말씀 따로 없으셔서.”


역시 형사는 뭐 하나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배달원이 변명을 늘어놓는다.


“미리 말씀하셨으면 가져다 드렸을 텐데.”


평소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을 제일 혐오하는 형사처럼 보이는 범죄자 도상준 전무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배달원에게 차선책이 담긴 말을 해준다.


“군만두는 디저트로도 괜찮지!”


“……디, 디저트요? 저, 그 말은, 혹시…….”


“디저트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먹을 수 있는 거니까 참 다행이야? 그리고 또 우리는 아직 밥을 안 먹었으니까 더더욱 다행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도상준 전무는 메인디시에 이어 디저트까지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되겠다며 만족한다.


문지성은 나무젓가락을, 한재천은 단무지와 양파, 춘장이 든 접시 비닐과 사투 중이다.


부지런한 동생들이 마냥 흐뭇한 도상준 전무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는 배달원을 보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저기, 우리가 좀 바빠질 예정이라서 말이야. 계산은 이따 디저트 먹을 때 해도 되지?”





#지하철

어느덧 오후 2시가 넘어간다.


핸드폰은 물론이고, 열차 내 전광판도 확인할 수 없던 승객들이 시간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인질범 아저씨, 근데요.”


선하나가 김선범에게 묻는다.


“지하철 방송이랑 전광판도 전부 아저씨가 껐어요?”


소녀의 말에 김선범은 또다시 상처 입는다.


답변부터하자면 내가 한 게 맞지만, <인질범>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호칭으로 부르는 건 역시 조금 서운하단다.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자기도 흠칫흠칫하게 된단다.


“아아, 죄송해요. 입에 붙어서.”


“기관사 양반은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거야?” 대뜸 류기태가 묻는다.


김선범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고재성이 끼어든다.


“저, 그전에 아까 점심얘기 하지 않았나요? 점심때가 한참 지난 거 같은데.”


“화장실이 만족스러웠나봐? 먹고 또 한 번 가려고? 하긴 우리나라 지하철 얼마나 깨끗해! 웬만한 상가건물 화장실보다 훨씬 좋겠다. 나도 이참에 변기 한번 바꿔봐?”


낄낄거리는 류기태의 하얀 머리칼이 들썩인다.


“가기만해요.” 선하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근데 여기서 식사를 어떻게 해요? 밖이라면 모를까.”


채소윤은 혹시 열차에서 하차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묻는다.


“그렇긴 하지. 화장실 옆에서 밥 먹는 건 좀 그래.”


류기태의 놀림거리가 된 것 같아 고재성은 기분이 상하다가도 병원을 찾는 진상 환자들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나름 저도 배려해서 가장 멀리 떨어진 칸에서 쌌어요…….”


그때, 장석기가 김선범을 향해 말한다.


“저, 아저씨…… 라고 불러도 되죠?”


“네? ……아, 네네. 편한 대로 하세요.”


김선범은 한껏 저자세를 취한다.


그에 대한 적대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본인이 계획했던 대로 소화기를 이용해 제압했으면 상황이 보다 복잡하게 흘러갔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장석기가 다 이해한다는 투로 넌지시 묻는다.


“아저씨는 아직 지하철을 멈출 생각이 없으신 거죠?”


“…….”


“눈치 볼 거 없어. 편하게 얘기해, 기관사 양반. 눈물이랑 콧물도 모자라서 똥까지 다 본 사이에 뭘 가려. 안 그래?”


눈물과 콧물을 보인 홍지선이 잠시 움찔하고, 똥을 직접 보이진 않았지만 충분히 상상하게 만든 고재성은 한숨과 함께 말을 잃는다.


류기태가 덧붙인다.


“우리 다 한가한 사람들이야. 몇 시간 더 지하철 타고 돌아다녀도 큰일 날 거 없어.”


그 말만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몇몇이 항의한다.


다들 바삐 갈 곳이 있단다. 그래서 지하철을 탄 거였단다.


“아, 그래?”


류기태는 발 빠르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기관사 양반의 사연은 바로 다음 순서에 들어보자고 한다.


그전에는 저기 여전히 우울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중년 여성의 사연을 마저 들어볼 예정이고, 또 그전에는 점심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결론내리자고 한다.


“일단, 뭐……, 네. 그렇습니다.”


김선범이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한다.


“당장 지하철을 멈추기는 힘들 거 같네요. 네, 제 얘기도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차근차근 잘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장석기가 말한다. “그럼 일단 배달이라도 시켜볼까요? 아저씨, 지하철을 잠깐 멈추는 건 가능할까요? 음식만 받고 다시 출발시키면 되잖아요.”


제 1차 협상에서 장석기의 파격적이고 호전적인 제안을 기억하고 있는 이한성과 정성도는 이번에는 또 무슨 속셈인지 알아내려 애쓴다.


“물론……, 잠깐 멈추는 건 문제없어요.”


전 인질범 김선범이 별다른 저항 없이 전 인질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자 류기태는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저기야, 기관사 양반, 도대체 목적이 뭐요? 당최 예상이 안 가네. 이렇게 물렁하게 할 거면 지하철은 뭐 하러 점거했어? 기왕 할 거 필사적으로 해야지. 아이, 참내……. 사십대 중반이면 아직 반도 안 왔는데 벌써부터 그렇게 다 죽어가는 얼굴로 살면 어쩌겠다는 거야? 인생 이거 어마무시하게 길어. 그렇지 않아? 학생?”


15년, 사실 따지고 보면 14년 남짓 살아온 선하나가 어느 때보다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더 깊이 따지고 들자면 온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시간은 10년이 조금 안 되지만 그렇다.


늙은 어른의 입에서 동의를 구하는 말이 들려오니 기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갑작스런 류기태의 일갈에 마흔넷 김선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떤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어 원 플러스 원 행사상품처럼 그때 겪은 고통이 딸려온다.


“저……, 여러분, 제 이야기 먼저 들어주실 수 있나요?” 고통 받는 표정의 김선범이 간청한다.


“아이, 좋지! 다들 괜찮지? 점심 주문은 이거 듣고 하자고? 어차피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식당도 정신없을 거야.”


이야기가 꽤 길어질 수도 있다는 염려의 말은 꺼내지 않는다.


대신 김선범은 기왕 이렇게 된 거 금일 본인의 열차 방문 목적부터 밝히기로 한다.


“제가 오늘 지하철을 탄 이유는, 사실……, 열차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그 인사가 생각보다 길어졌구나!? 작별인사 그게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야. 그건 또 내가 잘 알거든.” 류기태의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일단 끝까지 들어보죠?”


홍지선의 제지에 류기태는 “그것도 좋지!” 하며 대답한다.


“아, 네, 어르신 말씀도 맞아요. 도저히 열차를 떠날 수가 없었어요.”


김선범이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킨다.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데 능숙한 몇몇 승객이 알아챈다.


그들이 이어질 말을 기다린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 승객이 되어주세요.”


“…….”

“…….”

“…….”

“…….”

“…….”

“…….”


결심에 찬 화자의 표정과 듣는 이에 따라 달콤한 고백처럼 들릴 가능성도 농후한 단어 선택에 승객들은 당황한다.


“뭐야? ……프러포즈? 이야, 채 선생! 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채 선생은 맞지만 프러포즈는 아니었던 채소윤이 경악하는 얼굴로 부정한다.


“이상한 소리 좀 그만 하세요!”


“아,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요…….”


이미 열 살 난 항문 질환에 고통 받고 있는 아들이 있다는 정보를 공유했건만. 다소 자유분방한 결혼관을 지닌 류기태의 말에 덩달아 질겁한 김선범은 이제 본 이야기가 시작될 테니 조금만 더 집중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


“그것도 좋고! 자자, 다들 집중 좀 합시다. 집중!”


홍지선은 칼로 본인을 노릴 게 아니라, 저 말 많은 노인네를 노렸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래도 혹시 모를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볼 겸 칼의 위치를 확인해보지만 허사다.


가장 소중한 칼을 이미 두 번이나,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잃을 뻔했던 이한성이 갓난아기를 품듯 칼이 보관된 가죽 가방을 끌어안고 있다.


유일하게 집중력 없이 산만하던 류기태가 조용해지자 비로소 김선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서 말했듯이 자기는 지하철을 운행하는 기관사였단다.


어릴 적부터 철도를 좋아했고,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는 거의 첫사랑이나 다름없단다.


“첫사랑이랑은 잘 됐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말이 상당히 많은 경향이 있는 류기태가 번쩍 손을 들고 질문한다.


“……잘 된 편이죠. 오래 만나긴 했으니까요. 지금도 같이 있잖아요.”


그렇게 대답한 김선범은 이 질문을 끝으로 더 이상의 질문은 삼가달란다. 그리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입을 다물어주면 이야기하는데 훨씬 수월할 거 같단다.


“언제는 이야기에 집중하라더니?”


류기태가 억울함을 토로하자, 그의 옆에 앉아있던 홍지선이 기관사 이야기 뒤에는 점심식사를 비롯해 본인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으니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조해달란다.


“아아, 맞다, 맞아.”


자기가 이야기 진행에 주요 저해 요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류기태가 순순히 인정한다.


홍지선에게 고맙다고 속삭인 김선범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관사 일이라는 게 조금 반복적이고, 약간 더 사실을 보태자면 전부 반복적이다 보니 흔히들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단다.


특히 깜깜한 지하를 헤치고 나가는 게 꼭 시련과 역경을 뚫고 나아가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단다.


게다가 자기가 운전한 2호선 열차의 경우 야외 승강장도 적잖이 있어 더더욱 재밌었다고 한다.


시간마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광을 보고 있으면 눈이 아리고 정신까지 아려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눈이 아린 건 엄연히 햇빛 때문 아니냐며 따지고 들려다 류기태는 간신히 참는다.


분명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주어질 게 틀림없으니까.


만약 그런 시간이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질문할 시간은 넘쳐난다.


이야기를 마친 화자가 곧바로 무대를 떠날리 없기 때문이다.


쌩쌩 달리는 지하철에서 뛰어내려 귀가하는 사람은 없겠지?


아마도?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릴 적 가장 좋아하고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관심 가졌던 것을 제가 직접 운전하다니, 얼마나 멋져요! 그렇게 행복하게 지냈어요. 동료들이랑 같은 장소에서 일하지는 못하지만, 일종의 동료의식도 생겼고요. 그러다 친한 동료 중 하나가 소개팅을 시켜줬는데, 거기서 아내를 만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