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3장: 하차
#도상준, 한재천, 문지성
식사에 이어 디저트까지 해치운 문지성, 한재천, 도상준은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때? 디저트로 군만두 괜찮았지?”
도상준 전무가 묻자 한재천과 문지성이 미세하게 고개만 까딱까딱 움직인다.
폭식으로 전체적인 신체기능이 대폭 저하된 상태다.
“그나저나 기념비적인 첫 회식을 우리끼리 해서 어쩌나.”
음식 섭취로 비로소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도상준이 혼잣말을 이어간다.
“형은 잘 도망갔나? 잡히면 골치 아픈데.”
“이제 배도 채웠는데, 뭐할까요?”
문지성이 묻는다.
라면에 이어 중국 음식까지 먹어치운 그는 오늘 저녁은 굶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큰형님찾으러가야지.”
“오, 재천 형님, 큰형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
문지성의 물음에 한재천은 내가 그걸 무슨 재주로 아냐며 투덜댄다.
사람을 찾는 건 자기 전문이 아니란다.
그렇다면 혹시 어떤 전문 분야의 재주를 가지고 계신지? 하고 문지성이 다시 묻자 한재천은 유일한 재주가 하나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됐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문지성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까 미팅에서 있었던 일 말하는 거지?”
도상준이 대신 답한다.
“칼을 잘 쓰면 뭐해, 칼이 없는데. ……뭐, 됐어. 이제 와서 칼 쓰는 거 보여준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도 없는데.”
“형님, 오늘 미팅 나가셨습니까? 부럽습니다!”
“그미팅아니야.일하러갔어일.”
“아…….”
“자자, 집중.”
셋 중 연장자 도상준 전무가 나선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움직이면 좋을지 생각해보자고.”
셋은 생각을 시작한다.
현재 위치가 경찰서라는 생각은 못해본 모양이다.
“…….”
평소처럼 문지성은 아무런 생각이 없고,
“음,음,음.”
한재천은 생각을 하긴 하지만 애용하던 칼의 행방에 대해 생각중이고,
“흐음…….”
도상준은 차분히 앉아 두 눈을 감고 골똘히 궁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식곤증에 시달리고 있다.
15분 후, 식곤증이 강력계 사무실을 덮친다.
“어우……, 배불러서 그런가. 졸리다.”
도상준이 본인의 현재 상태를 일행들에게 공유할 겸 중얼거린다.
“조금주무세요,형님.이따깨워드릴게요.”
점심식사 이후부터 한재천은 도상준을 형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의 남다른 식성에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그럴까? 잠깐 눈 좀 붙여야겠다. 이따 깨워줘, 재천 동생.”
도상준이 그대로 잠에 빠진다.
5분 후, 수마가 한재천에게로 옮겨 붙는다.
“나도졸리네.”
“형님, 주무세요. 깨워드릴게요. 전 안 졸려요.”
머릿속을 비운 채 사무실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던 문지성이 믿음직스럽게 말한다.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다.
“그래?그럼나조금만잘게.”
혼자 남은 문지성은 멀뚱멀뚱 사무실 구석에 있는 낡은 가죽소파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아까 식사하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었다.
공원에 경찰이 들이닥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
다시 5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문지성에게도 스멀스멀 잠이 쏟아진다.
“되게 졸리네. 상준 형님, 이따 저 좀 깨워주세요.”
문지성이 곤히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하고 있는 도상준에게 속삭인다.
너무 곤히 생각에 잠긴 나머지 도상준은 깊은 잠에 빠져있다.
듣는 이의 현재 상태 따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말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문지성이 설명을 덧붙인다.
“이따 재천 형님 깨워야 되니까 잊으시면 안 돼요.”
“……엉, 뭐라고?”
기적처럼 도상준이 문지성의 말에 반응한다.
눈은 감겨있는 상태다.
문지성이 다시 한 번 말한다.
“저 너무 졸려서 좀 자려고요. 이따 깨워주세요.”
“아, 그래? 그래. 좀 자둬. 내가 깨워줄게.”
도상준은 문지성에게 약속한 뒤, 다시 잠에 빠진다.
이로써 한 가지 방정식이 만들어진다.
서로의 기상을 책임지겠노라 약속한 내용이 담긴 것인데, 다음과 같다.
[한재천 -> 도상준 -> 문지성 -> 한재천]
도상준은 한재천이 자신을 깨워주면 그때 일어나 문지성을 깨워주면 되겠다는 풀이방법을 생각해낸다.
풀이를 마친 도상준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잠든다.
그렇게 서로서로 사이좋게 물고 물리는 약속에 엮인 세 남자는 달콤한 잠에 빠진다.
문지성은 사무실 가죽 소파에 널브러져서, 한재천은 유치장 벽에 기대어, 도상준은 등받이의자에 앉은 채로.
세 명의 범죄자가 배를 채운 뒤 연쇄적인 단잠에 빠져있을 무렵, 경찰서 주차장으로 다섯 대의 순찰차가 줄줄이 들어선다.
차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차한다.
순찰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당연한 얘기지만 경찰이고, 그의 목적지는 강력계 사무실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사실이다.
어찌됐든 여기서 중요한 건, 강력계 사무실로 곧 경찰이 들이닥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싱겁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지만, 강력계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세 범죄자는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다시 유치장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보니 한결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식후 낮잠으로 매우 개운하다.
“내가깨워달라고했잖아!그런데네가자면어떡해!”
한재천이 한결 멀끔해진 정신으로 문지성의 부주의함을 나무란다.
“상준 형님, 제가 부탁드렸잖아요! 그렇게 잠드시면 어쩝니까!”
역시 말똥해진 문지성이 도상준의 게으름을 탓한다.
“아니, 재천 동생!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잠깐 눈 좀 붙인다니까 그새를 못 참고 잠든 거야? 그러게 내가 그 요상한 앞머리 좀 자르라고 했잖아! 눈앞이 컴컴하니까 한 치 앞도 못보고 아무 때나 잠이 오는 거 아니야!”
도상준은 얌전히 주인의 얼굴에 찰싹 붙어있는 한재천의 머리카락을 욕한다.
부러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그렇게 셋은 문도현 경사의 손에 이끌려 다시 유치장에 입주하게 된다.
유치장 자물쇠를 걸어 잠근 문도현 경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그리곤 서둘러 조사실로 향한다.
지하철에 갇혀있던 인질들의 조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장석기
오후 4시 45분, 태평경찰서 제1 조사실.
문도현: 몸은 정말 괜찮으신 거죠?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보시는 게…….
장석기: 아닙니다, 괜찮아요. 정말 멀쩡합니다.
문도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 그럼 바로 진행해도 될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피곤하실 테니, 중요한 질문만 몇 개 하고 금방 끝내겠습니다. 조사가 끝나면 댁까지 모셔다 드리도록 할게요.
장석기: 하긴, 대중교통 오래타면 아무래도 피곤하긴 하죠? 살면서 지하철을 이렇게 장시간 타본 적은 처음이네요.
문도현: 네? ……아, 지하철이 피곤하긴 해요.
장석기: 근데 지금은 그리 피곤한 상태는 아니에요. 그리고 조사 끝나고 따로 갈 곳이 있어서 안 데려다주셔도 됩니다.
문도현: 역시 병원에 가보시는 게 낫겠죠?
장석기: 아, 그게 아니라요. 작업실에 가야돼서요. 지금 집으로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문도현: 작업실이라 하시면……?
장석기: 그럼 작업실 얘기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문도현: 시작이요? 뭘 시작한다는 말씀인가요?
장석기: 조사요. 조사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있는 거 아니에요?
문도현: 아아, 맞죠. 맞습니다. 목격자 및 인질 안전 확인. 그리고 무엇보다 진술조사 때문에 모신 겁니다.
장석기: 음……, 목격자는 여기 있고, 인질도 여기선 같은 의미나 마찬가지고, 이제 안전 확인 차례네요? 제가 뭐부터 하면 될까요?
문도현: 저, 아까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장석기: 아, 그게 그거였어요? 몰랐네요. 죄송해요! 제가 경찰조사는 처음 받아봐서요.
문도현: 차근히 설명해드렸어야 했는데 저야말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괜찮습니다. 저도 인질 사건은 처음이거든요.
장석기: ……어, 아, 그러세요? ……음, 저기 조금 기분 나쁘실 수도 있겠지만요. 한마디 해도 될까요? 그렇다고 또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마시고요!
문도현: 보통 그런 말 뒤에 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기분 나쁘던데요. ……예, 뭔가요? 하고 싶다는 말이?
장석기: 담당조사관이라고 하나요? 어쨌든, 다른 분으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기분 나쁘신 거 아니죠? ……표정이 어두워졌는데요.
문도현: ……아닙니다. 충분히 건의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왜 다른 조사관한테 목격자 조사를 받고 싶으신지?
장석기: 방금 그러셨잖아요? 인질 사건이 처음이라고요. 아무래도 그게 좀 걸려서요. 기왕 조사받을 거 많이 해보신 분한테 받는 게 낫지 않겠어요? 구관이 명관이라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요.
문도현: 그게 이유라면 이 경찰서에서 더 나은 선택지는 없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해봤거든요. 안녕하세요? 구관이고 명관입니다. 물론, 인질 사건은 처음이지만요. 그건 인질 사건‘만’ 처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장석기: 다른 분은요? 아까 사무실에 다른 분도 계시던데.
문도현: 그 친구는 목격자 진술조사 자체가 처음이에요. 조사실에 들어온 것도 처음일겁니다. ……적절한 대답이 됐을까요?
장석기: 아주 적절한 답이 됐어요. 이제 보니 전문가가 여기 계셨네요! 물론 인질 사건은 초짜지만.
문도현: 그것 참 다행이네요. 전문가처럼 보인다니.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될까요?
장석기: 물론이죠! 그런데, 제가 첫 순서인 이유가 있을까요?
문도현: 없습니다. 다른 분들도 순차적으로 진행할 겁니다.
장석기: 바로 시작할까요? 어떤 것부터 말씀드리면 될까요?
문도현: ……꼭 준비해 오신 게 있는 것 같네요?
장석기: 아아, 제가 이런 거에 좀 익숙해서요. 남들 앞에서 말하고 이런 거? 그 얘기도 이따 해드릴게요. 아아아, 목 좀 풀고요. 자, 시작할게요. 음, 제가 오늘 아침 열시 반이었나? 그때쯤 집에서 나왔어요.
장석기는 서운한 마음을 품은 채 현관문을 나섰다.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정말 조금만 서운해 하려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서운한 감정은 물에 젖은 종이와 같아서 서서히 번져갔다.
또, 한번 스며든 서운함은 자연건조든 뭐든 마르고 난 뒤에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또 놀아?”
오늘 밤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장석기의 말에 대한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어머니의 말에 장석기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반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아들에게 그새를 못 참고 또 놀러나간다는 식의 대답을 하는 어머니에게 어떤 말을 해야 적당한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장석기는 혹시 몰라 지난 몇 주간의 외출을 곱씹었다.
2주 전, 미뤘던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에 방문했다.
일주일 쯤 전에는 평소 존경하던 래퍼가 소속되어 있는 소속사에 다녀왔다.
거창한 오디션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형식의 평가를 받고 왔다.
“톤은 좋은데, 나머지는……, 조금 애매하네요.”
장석기의 랩을 들은 소속사 관계자는 그렇게 말했다.
‘애매하다’ 누가 들어도 절대 기분이 좋을 수 없는 말이고, 특히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살인 선고나 다름없는 말이다.
애매한 건 희미하다는 뜻이고 희미하다는 건 기억에 각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각인되지 않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별이 될 수 없다.
음악의 세계가 그렇다.
장석기는 조금 전에 들은 어머니의 말에 대한 근거를 거듭 생각해보려했지만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그 두 번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작업실에 다녀온 게 전부다.
작업실은 합정역 지하방이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그는 매일 아침 8시부터 두 시간동안 창고 정리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후에는 작업실로 가서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만들고 녹음을 한다.
밤 11시가 되면 집 근처 독서실에서 야간 총무로 새벽 1시까지 일한다.
그때도 역시 자리에 앉아 가사를 쓴다.
오전 2시 경, 집에 돌아와 침대에 기절하듯 잠드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런 생활을 유지한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부모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건 두 달이 조금 넘었다.
“나 음악하려고.”
군복무를 마친 장석기는 부엌 식탁에 앉아있는 부모님께 말했다.
장고의 장고 끝에 뱉은 말이었다.
“……음악? 갑자기 무슨 음악?”
“…….”
질문은 역시 어머니의 입에서만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그저 감정 없는 표정에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힙합. 사실 예전부터 조금씩 하고 있었어.”
아들의 대답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어머니가 물었다.
“그럼 지금처럼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엄마 아빠가 뭘 도와줘야 되는 거니?”
“아아, 그러니까 내 말은……. 휴학을 하고 싶다는 말이야.”
“……지금 3월에 복학을 안 할 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어머니는 그제야 조금 심각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응, 1년 동안은 음악만 해보고 싶어서.”
군대를 막 전역한 스물셋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는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학교 잘 다니다가 갑자기 무슨 음악이야. 빨리 졸업하고 취업할 생각을 해야지.”
“그래, 석기야……. 음악 같은 건 주말에 하면 되잖아.”
평일은 학업에만 집중한다.
음악은 주말이나 여가시간을 활용한다.
이 생각을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장석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음악으로만 채워진 생활을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컴퓨터공학과라는 학과 특성상 학기 중에는 여가시간이 충분할리가 없었다.
수많은 과제와 각종 시험에 휩쓸려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1년 휴학하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1년 늦게 졸업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설득을 시작한 장석기는 며칠에 걸쳐 부모님을 납득시켜야했다.
길고긴 인생에서 1년간의 휴학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값진 경험이 될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공들여 도전해보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
오히려 학생 신분일 때 도전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안전한 도전을 할 수 있는 건 그야말로 대학생만의 특권이다.
휴학이라는 제도를 이용한다면 돌아갈 곳을 남겨둔 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거기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나도 다 내팽겨 치고 음악에만 몰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휴학은 아주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을 돌린 것이 장석기의 진심어린 호소였는지, 될 대로 되라는 포기였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결국 그의 휴학이 결정됐다.
군 전역 이후 1년간의 휴학기간동안 장석기는 아주 다양한 음악과 사람들을 접하고 작사와 작곡에 대해 공부했다.
틈날 때마다 랩 가사를 적고 멜로디를 작곡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진 못했지만, 어엿한 래퍼로서 크게 성장했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바로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음악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그는 끊임없는 불안에 고뇌했다.
그 불안은 음악에 대한 재능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닌, 음악에 대한 욕망이 진실 된 것인지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음악을 진짜 좋아하는 걸까?
정말 래퍼가 되고 싶은 걸까?
이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휩싸여있었고 그 끊임없는 의심 속에서 고통 받았다.
사실 그는 이러한 의문들에 진즉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가족이 반대하는 휴학까지 결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차마 확신을 가질 순 없었다.
외려 섣불리 확신이 서는 것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휴학 기간동안 장석기는 확신했다.
음악을 사랑하고 래퍼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하루하루 커져갔다.
종일 좁고 탁한 공기가 가득한 작업실에서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적고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세세하게 연구하는 생활이 전혀 지겹지 않았다.
밥을 배불리 먹고 난 뒤에도 졸리지 않았고, 수면시간이 부족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래퍼가 되어 활동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가사와 멜로디 구성을 고민하느라 쉽사리 머릿속을 비우지 못했다.
음악을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생산하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장석기는 더없이 반가웠다.
음악을 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심이 서자 그는 안심했고 감사함마저 느꼈다.
그런 기분 좋은 확신을 끝으로 1년의 휴학을 마쳤다.
그 이후론 정말 정신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부모님과의 약속대로 복학을 하고 학업을 이어갔다.
장석기는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휴학을 결심했던 스물셋과 서른 사이에는 3년간의 남아있던 학교 생활이 있고 그 고생 끝에 받은 4년제 대학교 졸업장이 있고, 2년간의 직장 생활이 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스물일곱에 입사한 회사에서 2년간 근무하고 퇴사한 장석기는 곧바로 작업실을 마련했다.
컴퓨터와 마이크, 이 두 가지 물건만 들어갈 공간이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대단한 것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작업실을 마련하느라 저축한 돈의 절반이 사라졌지만, 그는 마냥 행복했다.
학교와 직장을 오가면서 고통 받았던 시간들을 음악으로 치환하고 치유해가며 하루하루 충만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음악은 여전히 멀리 있었다.
앨범을 발표하고 몇 번 무대에 오른 적도 있지만, 수익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돌연 떠오른 지난 달 수입에 장석기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오늘 밤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급한 일이 생겨 오늘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에 다시 날을 잡아 만나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메시지를 보낸 그는 서둘러 걸었다.
작업실로 가기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곳에서 그는 때 아닌 지하철 인질극에 휘말리게 된다.
내내 지하철에 갇혀 있다가 해가 지고서야 작업실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