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2장: 운행
#지하철
“폭탄?”
“폭탄!”
“폭타아아안!!”
“포오옥탄!!”
아무도 정답을 확인시켜주지 않으니 각자 자신이 정답으로 생각하는 단어만 주구장창 외쳐대는 꼴이다.
그 덕분에 어쩌면 조금 평범한 축에 들 수 있는 지하철 인질극이 최악의 폭탄 테러로 변모하려 한다.
승객들은 그야말로 기겁하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연약해 보이는 걸로 모자라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질범과 중년 여성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났더니만 다음 순서가 다름 아닌 폭탄 테러라니.
승객들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이자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명성이 자자한 화약이 가득 들어있는 폭탄은 여간해선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류기태는 이 모든 게 김선범의 소행이라고 생각해 그를 노려본다.
하지만 당황한 얼굴은 매한가지다.
그때, 한 남자가 나선다.
김선범이다.
당당한 표정과 몸짓에 그의 새로 사귄 친구들은 기대한다.
어쩌면 폭탄을 조우하지 않고 무사히 점심식사 주문을 마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아저씨가 설치한 거 아니구나? ……지하철 운전하기 전에는 폭탄 처리반, 뭐 그런 거였어요?”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었지만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었던 선하나가 질문한다.
“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탄물 처리반의 약자로, 류기태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본인의 지식을 뽐낸다.
영웅이 되기를 자처했는지, 단체미팅 현장이 아닌 실제 야전에서 폭탄을 처리해본 전력이 있는지는 모르나 김선범이 무척이나 당당한 태도를 보인 건 사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주 익숙한 것을 마주쳤을 때 나오는 당당함이다.
“이거―”
김선범의 말을 자르고 가방이 미친 듯이 들썩인다.
폭탄이 터지는 전조 증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승객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비명을 내지른다.
이 단계에서도 김선범은 꿈쩍도 않는다.
승객들은 그의 의연한 모습에 이건 평범한 폭탄 테러가 아닌 저승길까지 동행하겠다는 ‘자살’ 폭탄 테러로 범죄의 위험도를 격상시킨다.
내일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존재이다.
“뭐야?! 역시 아저씨가 설치한 거였어요!?”
선하나는 울음을 쏟기 직전이다.
홍지선은 다리를 덜덜 떨면서 기왕 그렇게 할 거 조금만 더 일찍 움직이지 그랬냐며 남몰래 원망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오늘은 인생을 마감할 생각이 없어졌으니 다음에 날을 다시 잡아보자고 이번에도 속으로 중얼거린다.
류기태는 자기 판단이 너무 섣불렀다고,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고 그동안 관철시켜온 신념을 뒤늦게 바꾼 본인의 어리석은 변덕을 탓한다.
그 와중에도 가방은 몸부림친다.
점차 커지는 들썩대는 소리에 맞춰 승객들의 비명도 더없이 높아진다.
김선범이 가방 지퍼 손잡이에 손을 댄다.
“건들지 마요!”
“안 돼!”
김선범은 친구들의 만류에도 개의치 않는다.
그가 지퍼를 쑥 잡아당긴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폭탄이 모습을 드러낸다.
폭탄은 이제야 살겠다는 얼굴로 숨을 헐떡인다.
폭탄은 네 개의 다리가 달려있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도화선 대신 앙증맞은 꼬리가 달려있는 강아지다.
“이거 폭탄 아니에요.”
김선범이 친구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시켜준다.
“강아지에요.”
#문도현, 강재훈, 최병기
서울교통공사 관제센터, 문도현 경사 일행은 인질들의 신상 확보와 현재 점거된 열차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질사건 발생으로부터 3시간이 흐른 현재 시점에서 경찰 측, 그러니까 문도현 경사와 최병기 순경은 꽤 확실한 정보를 입수했는데, 그건 바로 사건해결에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정보다.
“자자, 현재 상황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봅시다!”
문도현 경사가 배고픔과 피로에 지친 일행을 다독인다.
단순히 점심식사를 하는 것만으로 배고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지만, 미련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가로이 뱃속을 채우고 있을 여유 따위 없단다.
그들은 벌써 다섯 번째 점검을 진행 중이다.
아무리 점검한들 상황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직시하는 과정일 뿐이다.
문도현 경사는 삐걱대는 머릿속을 원망하기에 이른다.
강력계에서 근무할 때만하더라도 척하면 척, 착하면 착, 사건을 해결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두뇌 회전이 원활하지 않은 느낌이다.
이게 다 수면 부족과 영양 부족 사태가 빚은 현상이라는 걸 그는 깨닫지 못한다.
문도현 경사가 관제센터 구석에 죽은 듯이 앉아있는 강재훈을 흘겨본다.
쓰러지지만 않았을 뿐, 거의 빈사상태다.
경찰씩이나 됐으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질 사건이다.
인질범은 어떤 요구도 해오지 않는다.
연락 한번 취해오지 않는다.
그저 평일 오전 시간대의 비교적 한산한 지하철을 점거해서는 중앙 관제센터로의 연결을 끊었다.
그게 전부다.
“저, 형사님, 커피라도 좀 드세요.” 관제센터 직원 중 한 명이 믹스커피를 내어준다.
“아, 예, 고맙습니다.”
직원은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이어 말한다.
“아까 열차 위치를 특정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현재는 연결이 끊어져있는 상황이고요.”
“네, 맞습니다.”
문도현 경사는 인정하고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방금 프로그램 업체, 그러니까 현재 2호선 열차 내 자율주행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한 업체에 문의해봤는데요. 열차 측에서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은 거라면 얼마든지 다시 연결시킬 수 있답니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시스템이래요. 관제센터에서 특정 명령어만 입력하면 바로 연결할 수 있답니다. 지하철이랑 연결만 되면 정지시키는 건 일도 아니에요. 원격으로 바로 멈출 수 있어요.”
문도현 경사의 눈이 번쩍 커진다.
관제센터 직원이 전달하는 희망적인 메시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믹스커피에 함유된 카페인과 당 성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예기치 않은 각성은 또 다른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건 문도현 경사의 사고체계를 예전의 것으로 되돌려놓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예전이라 함은 그가 강력계 에이스로 통했던 시기를 뜻한다.
“……와, 나 왜 이렇게 멍청해졌지?”
막혔던 수로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은 문도현 경사가 돌연 중얼거린다.
그리고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인질ㆍ납치ㆍ테러 등 도심에서 벌어지는 특정 범죄를 전담하는 경찰청 내 수사팀의 팀장이다.
“네, 팀장님, 저 문도현입니다. 태평서 강력반에 있던.”
문도현 경사는 간결한 단어로 상황을 전달하고, 본인의 미숙한 판단과 의사 결정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음을 잊지 않고 전한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는 앞으로의 수사방향에 대해 읊었는데, 방금 전 관제센터 직원이 전해준 말을 인용하여 시기적절한 대응책을 곧바로 만들어낸다.
문도현이 통화를 끝내자 기다렸단 듯이 예의 관제센터 직원이 나무란다.
왜 한국말을 끝나지 듣지 않느냐는 것이다.
방금 본인 입으로 지하철과 다시 연결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나, 라고 문도현 경사가 말하자, 물론 그건 맞지만 그 희망이 찾아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문제란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데요?”
잔뜩 긴장하며 묻자, 직원은 길고긴 사유와 지리적 특성을 운운하고는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단다.
그래서 그 생각이 몇 분이냐 문도현 경사가 재차 물으니, 세상을 너무 빽빽하게 사는 것 아니냐며 직원이 다시 나무라기 시작한다.
나아가, 가끔은 여유롭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며 인생을 관통하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저기, 죄송한데, 정확한 시간을 말씀해주세요. 그래야 저희도 나름대로 수사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다른 경찰 인력들도 동원될 예정이어서 예상 시간을 전달해야합니다. 몇 분이나 걸릴까요?”
“두 시간……?”
관제센터 직원이 소곤댄다.
크나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예!? 두 시간이요!?”
화들짝 놀라는 경찰관의 태도에 덩달아 화들짝 놀란 관제센터 직원은 시간분배 측면에 있어 보다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도록 대답을 수정한다.
“아아, 백이십 분이요…….”
이제 경찰은 이 120이라는 숫자를 잘 나눠 사용하면 될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기원하면서.
#지하철
HYH-8981열차 1224호에 탄 승객들은 아마도 오늘 점심식사를 하지 못할 모양이다.
음식을 주문할라치면 새로운 대화주제가 어김없이 튀어나오고, 이제는 새로운 인물―강아지―까지 등장한다.
더플백에서 해방된 강아지는 잠시 바깥 공기를 흠뻑 들이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짖어댄다.
이 작은 짐승에게도 꽤나 복잡한 사연이 있는 듯해 류기태가 관심을 보인다.
“……얘는 뭘까?”
“강아지죠!”
귀여운 하얀 강아지의 등장에 선하나의 얼굴이 환해진다.
“포메에요, 포메. 포메라니안.”
지하철에 흘러들어온 사연이 궁금할 뿐, 조그만 짐승이 어떤 종인지 알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류기태는 금세 관심을 끊는다.
“누가 유기한 거겠죠?” 기본적으로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만져본 적은 없던 홍지선이 걱정스레 묻는다.
“음…….”
김선범이 가방 안쪽에서 쪽지를 발견하고 읽는다.
“맞네요. 누구든 잘 돌봐달라고 적혀있어요. 여기 이것저것 적어놨네요. 이름은 꾸리, 수컷이고, 3살이래요.”
자기 이름을 잘 알고 있는지 강아지는 이름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말도 잘 알아듣나 봐요.”
장석기가 팔을 뻗어 접촉을 시도한다.
그러나 꾸리는 으르렁거리며 낯선 이의 손길을 대차게 거절한다.
외려 사람보다 동물을 대하는데 더 익숙한 소년은 조용히 생수병을 열고 손바닥 그릇을 만든 뒤, 물을 부어 조심스럽게 강아지 앞발 앞으로 가져간다.
큼직한 손바닥에 담겨 있는 물과 소년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참을 망설이던 꾸리는 소년의 손바닥에 코를 박고 물을 할짝대기 시작한다.
수분을 갈구하는 어린 짐승의 다급한 혀와 촉촉한 코가 손바닥을 스칠 때마다 소년은 움찔거리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바짝 준다.
갈증 해소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하얀 털을 쓰다듬어볼까 생각했지만 애써 참는다.
“아이고, 목이 말랐네.” 홍지선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인간들이 추악한 짓은 제일 많이 한다니까. 한심하다, 한심해.”
어릴 적 반려견을 키우다 노화로 떠나보냈던 손준겸이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서 청소용품 광고에 나오는 사람처럼 이 세상 모든 더러운 것들을 지워버릴 기세로 하늘을 향해 한쪽 팔을 쭉 뻗는다.
물론 그의 손에 초강력 곰팡이 제거제가 들려있거나 하진 않는다.
“에라이, 천벌이나 받아라.”
“왜 버림받았을까요? 이렇게 예쁜데…….”
선하나는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원래 예쁘고 잘생긴 것들이 성질이 더러운 법이라며 인생 선배다운 조언을 해줄까, 고민한 류기태는 말을 아낀다.
주인의 단순한 변심부터 강아지의 안 좋은 버릇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와중에 수분섭취를 마친 꾸리가 한결 개운한 얼굴로 인간들을 두루 살핀다.
그러더니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유일하게 본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곤 그 남자가 마련해놓은 포근한 안식처로 냅다 몸을 던진다.
양반다리가 편하다며 열차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던 류기태는 갑작스레 등장한 털 뭉치에 심히 당황한다.
게다가 살아서 움직이는 털 뭉치라니.
“할아버지가 좋은가 봐요!”
선하나가 부러움 섞인 어투로 말한다.
류기태는 몸이 굳은 채로 잠시간 당황하지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다리를 조금 더 촘촘하게 위치시켜 자그마한 생명체가 조금이라도 더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으로 둘의 관계가 정립된다.
동반자가 된다.
인생의 동반자라고해서 꼭 같은 인종, 나아가 같은 종(種)일 필요는 없다.
사랑이 꼭 인간들 사이에서만 꽃피우리라는 법은 없다.
“그, 저기, 뭐야,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지?”
류기태의 목소리가 약하게 떨려온다.
간지러움을 참는 사람처럼 보인다.
언제든 푸하하, 하며 너털웃음을 지을 것 같다.
꾸리가 조금이라도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해 꿈틀댄다.
“서브웨이 주문한다고 김선범 아저씨가 핸드폰 가지러가다가 말았어요.”
선하나의 말에 류기태가 손가락을 들어 김선범을 가리킨다.
“왜 일을 하다 말아?”
“아…….”
21살 연상 친구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은 김선범이 다시 조종실로 들어간다.
조종실 문이 닫힌다.
열차 칸에서 들려오던 말소리와 단절된다.
이 공간에 있으면 열차의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열차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짐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온몸이 철로 이루어진 짐승의 등에 올라타 이리저리 손을 놀리며 가다 서다를 반복해왔다.
이곳에 있으면 아무리 컴컴하고 농밀한 어둠도 해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철도와 열차가 맞물리는 조화, 힘을 받아 앞으로 치고나가는 맹렬함, 완만한 굽이를 빠져나갈 때마다 들려오는 철의 웅성거림, 김선범은 이러한 모든 소리와 움직임들을 철저히 독립된 공간에서 홀로 들어왔다.
“…….”
김선범은 괴로워하는 얼굴로 수많은 조작키와 버튼을 살핀다.
깜박― 깜박― 깜박―
몇몇 버튼에 부착된 자그마한 LED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한다.
김선범은 괜스레 기관사가 앉는 낡은 좌석을 손끝으로 훑는다.
그리곤 아무런 미련도 없는 사람이 그러하듯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놓은 핸드폰을 챙겨 조종실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여러분들한테 전달사항이 있어요.”
핸드폰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있는 김선범의 모습이 꼭 초등학생들에게 간식을 배식하기 위해 나선 선생님 같다.
“뭔데? 화장실은 열차 마지막 칸이야.”
류기태가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다리 사이에는 꾸리가 편안히 몸을 웅크리고 있다.
“그치, 의사 양반?”
고재성의 얼굴이 또다시 빨개진다.
“……뭡니까, 전달사항이?”
“먼저, 제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의 시간을 빼앗은 점, 사과드립니다.”
김선범이 고개를 숙인다.
무거운 핸드폰 무게 때문인지 몸이 살짝 앞으로 쏠려 휘청거린다.
“그건 괜찮대도.”
류기태가 승객들의 얼굴을 살핀다.
김선범의 사연과 본래 심성을 알게 된 승객들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인다.
몇몇은 가볍게 미소 짓는다.
“아저씨 덕분에 평범한 지각이 안 평범하게 됐어요.”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지각 사유가 생긴 선하나는 내심 기뻐하는 눈치다.
김선범이 조금은 개운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전달사항은……, 여러분한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보통 전달사항이 아니라, 부탁이 있다고 하지 않아요?”
채소윤이 선생님답게 화자의 발화 의도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려한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도 곁들인다.
“아, ……그렇죠?”
김선범이 어색하게 웃는다.
사소한 지적도 망설이지 않는, 그야말로 올바른 친구를 사귄 것 같은 느낌이다.
“……네, 여러분한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천천히 말해보세요.” 홍지선이 격려한다.
“고맙습니다.”
예의를 차린 뒤, 김선범이 천천히 말을 꺼낸다.
오늘 처음 만난 친구들 앞에서 선뜻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감이 있다.
부탁은 말을 꺼내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간단한 일이라고 해도 그렇다.
그래도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강재훈
그로부터 약 두 시간 후, 인질이 된 한 소년의 아버지에게 문자 하나가 도착한다.
―지하철에서 내렸어요.
그와 동시에 서울교통공사 관제 센터 직원이 소리친다.
“열차 연결됐습니다!”
잠시 후, 오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던 HYH-8981열차가 정차한다.
우르르 현장으로 몰려간 무장 경찰들이 열차에 진입한다.
열차는 텅 비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