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3장: 하차
#채소윤
태평경찰서 제2 조사실, 채소윤이 철제의자에 앉는다.
거기에 맞춰 최병기 순경이 먼저 입을 연다.
“금요일, 오후 16시 50분, 서울지하철 인질사건 피해자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종이에 적혀있는 문장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듯한 어색한 느낌이다.
소심한 초등학생이 수업시간에 자리에서 쭈뼛쭈뼛 일어나 발표라도 하는 것 같다.
“말을 이상하게 하시네요.” 채소윤이 톡 쏘는 말투로 말한다.
“네? 제가 무슨 말을? ……아아, 피해자라는 말이 좀 거슬리셨나요? 아무래도 피해자라는 단어가 주는 불쾌감이 있죠! 뉴스에서나 들을법한 말이니까요.”
최병기 순경은 난생 처음, 그러니까 경찰이 된 이후로 처음 경험하는 목격자 진술답게 쉽사리 당황한다.
얼마나 당황했는가하면, ‘목격자 진술서’라고 작성해야 할 부분에 ‘목격자 조사서’라고 적는다.
물론, 해당 진술서를 읽게 된 다른 경찰들로 하여금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의 오류사항은 아니지만 선배들에게 지적당하기에는 딱 좋은 화제가 될 것이다.
“아뇨, 그게 아니라, 오후 16시라는 말은 없어요. 그냥 16시라고 하지. 아니면 오후 4시라고 하던가요.”
“……아아, 듣고 보니 또 그렇군요.”
얼굴이 달아오르진 않지만 최병기 순경은 갑작스런 지적에 머쓱한 얼굴을 짓는다.
“듣고 보니 또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건데…….”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보다 정확한 의미를 내포하길 바라는 영어 선생님다운 지적이다.
“아, 그렇죠. 그렇죠. ……자, 그럼! 오후 4시 50분,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경찰이 명랑하게 두 번째 시작종을 울린다.
등과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었을 것 같은 초짜 경찰을 찬찬히 살피며 채소윤이 아직 안 끝났다는 듯이 입을 연다.
“그리고 피해자도 아닌데 피해자라고 하는 건 조금 과한 단어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오늘 지하철에서 생명이나 신체, 재산 상 피해를 입은 게 없는데요.”
“……종일 인질로 갇혀계신 거 아니었나요? 20분 전에 겨우 풀려나셨고.”
최병기 순경이 묻는다.
동시에 인질사건 피해자에게 피해자라고 지칭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인건가 의아해한다.
“방금 하신 말씀 중에 맞는 말이 하나도 없네요. 단 한 곳도.”
학생의 형편없는 발표를 들은 선생님처럼 아랑곳 하지 않는 채소윤의 반응은 사뭇 냉랭하다.
최병기 순경이 질문한다.
“……이번엔 어느 부분이 틀렸나요?”
“종일이 아니라, 오전 11시 30분, 그즈음부터 외부와 연락이 단절됐고, 오후 4시 20분에 열차에서 내렸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인질도 아니었고요. 그러니 인질사건이 아니죠!”
“그런가요?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경찰이 궁금해 하는 얼굴로 피해자에게 질문한다.
누구에게든 질문은 항상 좋은 것이다.
“그건 이제부터 경찰 측에서 밝혀야겠죠? 자신 없으시면 경찰에 신고라도 하세요.”
“아, 그렇죠……. 열심히 밝혀보겠습니다.”
겨드랑이에서 땀샘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최병기 순경의 안색이 멍이 들기라도 한 것처럼 서서히 어두워진다.
말로 얻어맞는 게 이런 느낌일까, 초짜 경찰은 생각한다.
너무 다그쳤나, 채소윤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한다.
“그나저나, 되게 어려보이세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경찰관의 표정이 얼마간 밝아진다.
“칭찬 아닌데…….”
“아……, 그런가요?”
“그런가 봐요.”
“……저, 선생님? 혹시 제가 말실수를 했을까요?”
쭈뼛대며 최병기 순경이 묻는다.
자기도 모르는 새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가 선생님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전 말한 적이 없는데.”
“선생님이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채소윤이 말을 돌린다.
“근데 갑자기 말실수는 왜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경찰이 실토한다.
“좀 피곤해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채소윤이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쉰다.
속으로는 가볍게 웃는다.
이성에게 받는 관심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 네! 그럼 신경 안 쓰겠습니다.”
“……여자친구 없으시죠?” 채소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어조로 묻는다.
“……그건 갑자기 왜요?”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요!”
최병기 순경이 깜짝 놀란다. “제가요? 아닌데요!? 기분이……, 막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제법 괜찮아요!”
“기분이 막 좋지는 않지만, 여자친구는 없으시고?”
채소윤이 사근사근한 어조로 정곡을 찌른다.
앞으로 몇 번 더 찌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나요? 쓰읍, 요새 외모 관리를 통 못해서…….”
최병기 순경이 괜히 마른세수를 한다.
“얼굴은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채소윤이 잠깐 고민하더니 평가를 정정한다.
아무래도 너무 후한 점수를 준 듯하다.
“……나쁘지 않아요.”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좋다고 허허허, 웃는 최병기 순경에게 채소윤은 이번에도 칭찬은 아니었다며 아무래도 칭찬에 대한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노력해보겠다고 대답한 최병기 순경은 왠지 도리일 것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남자친구……, 아! 남편 분이 있으시겠구나?”
“……아까 사무실에서 제 신상정보 확인하시지 않았나요? 주민등록증도 가져가시던데.”
“그랬나요? 제가 아직 확인을…….”
“지금이라도 확인해보세요. 조사를 하더라도 제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게 좋지 않겠어요? 기껏 조사 마쳤는데, 이름 적는 칸이 비어있으면 보기 안 좋을 거 같지 않아요?”
채소윤이 어깨를 으쓱한다.
“네? 네. 물론이죠!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주민등록증이, ……지금은 없네요.” 경찰관이 청한다.
그는 당연한 요구를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사과처럼 하는 버릇이 있다.
“채소윤, 36세, 만으로는 서른 넷……. 미혼입니다. 남자친구, 없습니다.”
“아, 미혼이시군요! 남자친구도 없으시고, 감사합니다!”
민망함에 최병기 순경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무엇이든 처음 해보는 일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이어 헛기침을 연달아 하고는 경찰이 여전히 조심스러운 어투로 묻는다.
“……저, 이제 조사를 시작해볼까요?”
“이미 시작한 거 아니었어요?”
#선하나
“선하나 학생? 맞죠?”
조사를 맡은 문도현 경사가 목격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조사를 시작한다.
선하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선심을 쓰듯 연거푸 몇 번을 더 반복한다.
“네, 맞아요! 이제 아저씨 차례에요. 자기소개!”
“……나? 아, 나는 문……, 도현 경사…….”
“경사? 경찰이 아니라요?”
어린 목격자는 충분히 의문을 가질 법한 질문을 던진다.
“아아, 경사는 경찰 계급 중 하나야.”
목격자 조사 책임자로 있는 문도현 경사는 친절히 소녀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조사실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질문은 경찰만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경찰이라는 소리네요?” 소녀는 보다 꼼꼼하고 확실한 대답을 요구한다.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 여기 앉아있는 거 아닐까?”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문도현 경사는 선하나의 눈두덩을 노려본다.
까맣게 칠해진 꼴이 여간 꼴사나운 게 아니다.
“그러니까요! 제 말이 그 말인데.”
목격자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조사관의 시각으로 보자면, 청신호다.
흐리멍덩한 눈초리를 하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문도현 경사가 앓는 소리를 낸다.
“으음……, 오늘 지하철은 어디서 탔니?”
“지하철역에서요.”
선하나는 암산으로도 풀이가 가능한 수학문제를 풀듯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러니까 어디 역에서 탔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어.”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봤으면 됐잖아요?”
목격자는 경찰에게 질문을 모호하게 하지 말라고 주의시킨 뒤, 기다리는 답변을 해준다.
“방배역이요.”
선하나의 진술을 수첩에 받아 적은 문도현 경사는 다음으로 넘어간다.
“알아보니까, 아까 객실에서 샌드위치 주문한 게 학생이었다면서?”
“네, 맞아요.”
이렇게 대답하며 선하나가 대뜸 문도현 경사 손에 들린 낡은 수첩을 가리킨다.
“아직도 수첩을 쓰시네요?”
무의식적으로 문도현 경사는 움찔하며 두 손으로 수첩을 감싼다.
그 모습이 하도 부자연스럽고 좀스러워 보여 수사기밀이 기록된 수첩이 아니라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이름이라도 적혀있는 것 같다.
“……왜, 쓰면 안 되니?”
“아뇨? 그냥 물어본 건데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보여주면 안 될 거라도 있어요?”
“……샌드위치 주문했던 얘기, 마저 해줄래?”
문도현 경사가 딴 길로 샜던 조사를 재개한다.
사건의 궤도가 자꾸 빗나가는 경향이 있다.
“어려울 거 없죠!”
선하나는 구태여 말할 것도 없다는 얼굴이다.
“제 폰으로 주문했어요. 핸드폰 어플로 주문할 수 있는 거 알죠? 포인트도 줘요. 처음엔 그거 깜박하고 다른 아저씨가 주문하는 거 가만히 보고만 있을 뻔했어요! 샌드위치 11개 값이면 포인트가 꽤 짭짤하거든요.”
“11개? 왜 11개지? 범인은 안 먹고 승객들만 먹은 건가?” 문도현 경사가 의문을 제기한다.
“……네? 아, 사람이 11명이니까 11개 시켰죠. 범인은 뭐, 알아서 먹지 않았을까요? 집에서 따로 도시락을 싸왔을 수도 있고요! 보통 인질범들은 그렇잖아요.”
“도시락? 범인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거냐? 그걸 네가 직접 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뭘 그렇게 따지고 들어요! 그리고 그건 경찰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쇄도하는 질문에 선하나는 사춘기 소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유의 젠체하는 어투로 짹짹거린다.
“후우……, 그래. 지금 경찰들이 열심히 찾고 있으니까 범인은 금방 잡힐 거야.”
심호흡하는 경찰을 본 목격자는 이제 막 조사가 시작됐으니 너무 일찍 지치지 말라며 격려한다.
“힘내세요!”
“그래, 고맙구나.”
경찰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
힘내라며 격려해주는 사람 앞에서 짜증을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그는 경찰 아닌가.
이래저래 목격자 조사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빠듯했던 문도현 경사가 질문을 속행한다.
“그나저나 그 시간에 왜 지하철에 있었던 거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닌가?”
“학교 가는 길에 어떻게 학교에 있어요! 그건 공부하고 있는데 공부하라는 소리랑 똑같은 거죠.”
짹짹짹.
소녀가 대답한다.
“그러니까 학생 말은, 지각을 했다는 거지?”
지각깨나 해본 문도현 경사는 명쾌하게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엄밀히 따지면 지각은 아니죠! 지금 이렇게 경찰서에 있는데. ……담임선생님한테 잘 말해주실 거죠?”
방금까지 유일한 아군에게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이 선하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린 학생 조사는 최 순경한테 맡기는 건데.’
문도현 경사는 생각한다.
그는 엄지로 관자놀이를 쿡쿡 눌러 압박을 가한다.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조사 대상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겠다고 중얼거린다.
“……근데 가만있자, 어차피 곧 하교시간 아니니?”
“맞아요,”
선하나가 핸드폰 화면을 내려다본다.
“30분 남았어요. 그래서 결국 지각이 아니라 결석이 된 거죠. ……진짜 담임 쌤한테 말 잘해줘야 돼요! 알았죠?”
“학생이 하는 거 봐서.”
“놓치지 말고 잘 봐요! ……근데요, 경찰 아저씨. 조사받는 거 녹음해도 돼요?”
선하나가 핸드폰을 경찰 앞에 내보이며 씩 웃는다.
분명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렸으리라.
“녹음? 갑자기 녹음은 왜? 뭐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문도현 경사도 현재 시간을 확인한다.
조사를 시작했을 때 확인한 숫자에서 겨우 7만큼 늘어나있다.
고작 7분이 지났다니.
죽을 맛이다.
“이런 게 다 추억이잖아요! 제가 언제 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보겠어요?”
목격자의 얼굴이 필요 이상으로 환해진다.
이는 경찰의 입장에서 볼 때, 적신호다.
“앞으로 몇 번 더 와야 할 텐데…….”
문도현 경사는 오늘만 있는 기회가 아니니 기뻐하란다.
추억을 만들 기회가 수없이 있단다.
그의 말에 흥이 깨져버린 선하나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도로 넣는다.
“……근데 아저씨, 저는 경찰 조사 언제 하는 거예요? 기다리는 것도 슬슬 지겨운데.”
“……지금 하고 있는 게 경찰 조사야.”
문도현 경사는 그야말로 돌아버리겠다는 얼굴로 재킷의 안쪽 주머니를 뒤진다.
혹시 몰라 허리춤도 만지작거린다.
어린 소녀에게는 다소 가혹한 처사일지는 모르겠지만, 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몸짓이다.
문도현 경사는 참새마냥 짹짹거리는 중학생을 상대로 열을 올린다.
“지금 우리가 10분 째 하고 있는 게 바로 경찰 조사란다?”
“엥!? 언제 시작했는데요?”
어린 목격자의 눈이 있는 대로 커진다.
“여태 샌드위치 주문한 거 말고는 말한 게 없는데요!? 아아, 왜 그 시간에 지하철에 있었냐는 거랑. 아무튼 범인에 관련된 건 아무 말도 안 했다고요!”
“내가 아무 질문도 안 했으니까!” 조사관이 정답을 얘기한다.
“왜 질문을 안 하세요?”
“이제 하려고!”
하차 2시간 전, HYH-8981열차 1224호.
김선범의 부탁을 들은 승객들이 알았으니 이제 밥 좀 먹자고 칭얼댄다.
고재성이 나선다.
“제 핸드폰으로 주문하시죠. 병원에서 자주 시켜먹습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핸드폰을 조작하는 그의 모습을 본 류기태가 어림없다는 목소리로 끼어든다.
“의사 양반, 아까 똥 싸고 손 안 닦았잖아?”
“예에? ……제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는 고재성은 급기야 자기처럼 건강한 항문을 가진 사람은 대변을 배출하고 나면 별도의 후처리 과정이 필요 없을 만큼 말끔하다며 자신의 청결 상태를 피력한다.
흔적 자체가 잘 안 남는단다.
그러다보니 마트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구입한 적이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단다.
“자네가 자네 항문이 건강한지 어찌 알아? 직접 본 적이나 있어?”
“그런 적은 없지만…….”
“됐고! 나는 의사 양반 말고 다른 사람이 주문한 샌드위치 먹고 싶어. 아무나 좀 빨리 해봐봐.”
류기태가 지원자를 살피려 빙 둘러보자 선하나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응한다.
“제가 할게요. ……잠깐만요. 어플 업데이트해야 돼요.”
잠시 후, 선하나가 제법 큰소리로 외친다.
“자, 각자 먹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프로모션 하는 거 있으려나? 난 항상 그거 먹는데.”
고재성이 아는 체한다.
“그게 저렴해요.”
“로스트치킨이네요. 프로모션 상품.” 선하나가 건조하게 대꾸한다.
“난 잘 모르니까 알아서들 시켜. 계산은 의사 양반이 할 거야.”
“……또 접니까?”
계속되는 류기태의 깐족거림에 고재성은 슬슬 짜증이 솟는지 표정이 일그러진다.
대화가 마음먹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자 심술이 난 성인 남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이다.
“또? 자네가 뭘 했는데? 주문은 저기 학생이 하고 있잖아?”
과장된 몸짓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류기태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손뼉을 친다.
“아! 똥 싼 거? 그것도 자네가 하긴 했지. 물론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확인할 마음도 없고.”
“……예예, 제가 살게요. 마음대로 주문하시죠.”
고재성이 알아서하라며 지갑에서 카드를 건넨다.
선하나가 고재성의 카드를 받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저 어플이랑 연동되어 있는 카드 있어서 제 체크카드로 할게요. 대신 돈은 톡으로 보내주세요.”
중학생의 재빠른 판단에 고재성이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못 먹는 채소 있나요? 오이나 올리브 뭐 이런 거요.”
선하나가 채소를 고른다.
“저, 오이…… 안 좋아해요.” 홍지선이 조심스레 손을 든다.
“저도요, 오이.” 장석기도 취향을 공유한다.
“저는 다 잘 먹으니까 알아서 주문해주세요. 안에 들어가 있을게요. 이따가 배달 도착시간 알려주세요.”
김선범은 그렇게 말하고 조종실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그가 가장 아끼던 것들이 들어있다.
“아! 알았다! 샌드위치 먹고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 그렇게 된 거군요!”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된다는 듯 최병기 순경이 외친다.
“저도 그렇게 채소를 갑자기 많이 먹은 날에는 가끔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평소에 채소를 잘 안 드시는구나? 의사 선생님도 별 수 없나 봐요!”
“……그런 거 아닙니다.”
고재성이 우울하게 대답한다.
어쩌다 목격자 진술조사에서 똥이 화두에 오르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샌드위치랑은 관계없어요. 원체 그냥 속이 안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샌드위치는 먹지도 못했어요.”
“왜요?”
“그걸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한참 지나서 보니까 주문이 취소된 상태였어요.”
주문 내역을 확인한 써브웨이 서울 모 지점 점장 장 씨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요식업 업계에서 장장 10년을 몸담았는데 지하철 승강장으로 음식을 배달해달라는 주문은 처음이다.
게다가 정확한 시간에, 분까지 맞춰 배달해달라는 요구사항이라니.
최대한 빨리 가져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주문량으로 보아하니 장난전화일 가능성도 있다.
음식을 준비하기에 앞서 장 씨는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요량으로 주문 내역서에 기재되어있는 번호로 전화를 건다.
통화는 바로 연결된다.
“예, 저기…… 고객님, 방금 로스트치킨 15센치 11개 주문하신 거 맞으시죠? ……역, 승강장이요.”
선하나는 조금은 신이 난 듯 보인다.
해맑은 목소리다.
맛있는 음식을, 그것도 다른 사람 돈으로 먹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네, 맞아요! 승강장 바닥에 번호 적혀 있잖아요? 거기서 1-1에 놔두고 가시면 돼요. 시간 잘 지켜주세요! 주문은 제대로 들어간 거 맞죠?”
“네, 일단 주문은 들어갔는데……. 알겠습니다.”
어린 학생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점장의 의심은 한층 짙어진다.
장난전화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