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안갯속을 홀로 더듬는 그놈이나 나나 한심한 것인지 대단한 것인지는 몰라도 우린 서로를 보고 짐짓 놀랐다. 저놈도 분명 뭔가가 필요해서 눈을 뜨자마자 이곳으로 나왔을 텐데 뜻하지 않는 이방인을 만난 것이다. 혹시 우리가 같은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놓고 쟁탈해야 하는 경쟁자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저놈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여차하면 행동을 개시하려는 동작을 취하고 나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2.
하지만 이곳은 내 구역이다. 나에게 소유권이 있고 내가 관리하는 곳이다. 아버지 때도 그랬고 할아버지 때도 그랬다. 그러니까 저놈은 함부로 이곳에 들어와서 얼씬거리면 안 되는 놈이다. 도둑이거나 아니면 경계선을 착각하여 의도하지 않는 월경을 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이 땅이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땅을 놓고 서로 주인 행세를 하는 꼴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저놈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듯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3.
그놈이 사라졌다. 얼마나 몸이 날렵했던지 내 눈이 그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섣불리 맞짱을 떴다가는 쏜살같이 날아올 그놈의 일격에 꼼짝없이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놈은 공격하지 않고 나와 기싸움을 한 지 5초도 안되어 사라졌다. 혹시 안갯속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일하는 동안 계속해서 그놈을 의식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아침 내내 알밤을 주웠으나 자루의 반절도 채우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알밤 한 됫박쯤을 땅바닥에 뿌려놓았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4.
그놈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나의 꿈속에 수많은 그놈들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오색 색동옷을 입은 그놈들이 하늘을 무대로 공중곡예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쳇바퀴를 굴려가며 온갖 기기묘묘한 재롱을 보여주는데 한시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 나는 앙코르를 외쳤고 커튼콜을 세 번이나 요구했다. 그놈들은 나의 앙코르에 답했고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알밤 한 됫박씩을 던져주었다. 마지막에는 아침에 눈이 마주쳤던 그놈이 쳇바퀴 꼭대기에 올라 브레이크 댄스 파워무브를 보여주었다. 그놈의 긴 꼬리에서 나오는 현란한 춤 솜씨에 하마터면 잠을 깰 뻔했다. 나는 알밤 자루를 통째로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