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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타멀스 Apr 18. 2022

앵그리 실버

우리 사회의 노인 중에는 가족과의 불화로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적지 않고, 이들이 친구나 지인들과도 교류하지 않을 경우 고립화는 심해지고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진다.
원래부터 화가 많고 폭력적인 사람이 앵그리 실버가 되는 게 아니라, 단절과 고립화 상황에 놓인 노인이 불안감을 분노와 폭력성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불안, 위기감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면 태극기 부대의 노인들처럼,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에게 행패 부리듯 시비 걸고 욕하는 노인들처럼 될 수 있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중에서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러나 모든 노인이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인을 보고 깍듯이 ‘어르신’으로 불러주는 기특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는데, 눈치 빠른 노인들은 그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 그렇게 예우해 주기보다는 나름의 계산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때는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개 숙이며 어르신이라고 불러주는데 싫어할 노인은 없을 것이다


노인네라고 부르건 어르신이라고 부르건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어른이 되고 싶은 노인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동심처럼 천진난만하다. 눈치는 9단이어도 속마음은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어 한다. 물론 노인이나 노인네의 호칭이 잘못되거나 기분 나쁜 건 아니다. 누가 어떻게  부르건 호칭에서 느끼는 섭섭함보다 무시당하거나 찬밥 신세로 취급받는 것이 서러운 것이다. 사실 요즘 어른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르신으로까지 존중받고 대접받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의 인격체로 대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이 커질수록 노인들은 세상과 멀리하려 한다. 특히 한때 잘 나갔던 사람들이 더 그런 경향이 있다. 누가 일부러 끌어내린 것도 아닌데 본인의 영광과 위상이 줄어들고 예전처럼 빛을 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박탈감, 마음과 같이 몸이 따라주지 못한 것에 대한 상실감 등이 그들을 스스로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러다가 섭섭함과 박탈감, 상실감이 쌓이고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면 화가 된다. 노인들이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남에게도 화를 내는 주된 이유다. 그렇다고 남에게 화를 내며 막무가내로 고함까지 지르는 노인을 공경할 사람은 없다.


사람이 늙는 것을 흔히들 열매가 익는 것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추하게 늙지 않고 곱게 늙어 그야말로 잘 익은 노인이 되기를 바란다.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고립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따라서 비루한 노인네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세상과 등지지 말아야겠다.  꼰대나 늙다리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고집을 꺾고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발가락 하나라도 걸쳐봐야겠다. 그래서 가을날 담벼락 위에 가부좌를 틀고 햇살을 담뿍 받고 있는 늙은 호박처럼, 홀로 외로이 덩그렁 앉아 있는 것 같지만, 그 고운 때깔을 발하며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품위 있는 노인으로 늙어 가고 싶다. 설령 때깔이 곱지 못하고 품위가 떨어져 보여도 화내지 말자. 오히려 그런 나에게 친절해 보자.


그냥 늙어만 가는 사람은 노인이고, 늙으면서 익어가는 사람은 노인이면서 어르신이다. 고립에 빠져 를 못 이기는 버럭 노인이 아니라 힘이 닿는 데까지는 세상과 소통하는 어르신이 되고 싶다. 초등학생 숙제하듯 공책을 펼쳐 ‘사람을 만나야 하는 7가지 이유’를 내리 엮고, ‘어르신답게 사람을 만나는 7가지 방법’을 차근차근 적어본다. 공책을 덮고 한동안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단절을 잇고 엷어진 우정을 돋우고 싶다. 친구야, 가을 햇살이 은데 차 한잔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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