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 | 21세기북스
지난주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고, 이상주의적인 기질도 있어서 평소에 이런저런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철학이라는 분야가 늘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다.
누구나 드러내놓지 않을 뿐, 저마다의 인생 철학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어쩌면 삶은 그 철학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물론 생각은 바뀔 수 있다. 다만 오래 고민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그렇다고 내 생각만 옳다고 우기는 건 어리석다. 특히 정답이 없는 문제일수록 사람 수만큼 해답이 있고, 각자에게 필요한 결론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칸트였다. 저자가 최대한 쉽게 쓰려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도, 나에겐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칸트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철학자인 것 같다. 무엇보다 3대 비판서 제목부터 벽이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읽으면서 바로 감이 오지 않아 유튜브 강의를 몇 개 찾아 들으며 겨우 따라갔다.
그래도 흥미로운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주체의 조건에 따라 세계가 구성된다는 관점,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동양 사상, 특히 “우주는 내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느낌을 주는 불교와 닮아 있어 반가웠다. 정언명법은 솔직히 현실에서 완벽히 실행하기는 불가능한 도덕철학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공리주의의 ‘결과’ 중심과 달리 의도와 선의지를 붙잡는 태도는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결과만으로 평가하면 이해는 쉽지만, 정의롭지 않을 수 있고 소수는 쉽게 외면당한다. 반대로 선의지로 행한 선택은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그럼에도 책임 있게 살려고 한다. 그 지점이 좋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곧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의도가 나쁘다고 느껴지면 분명하게 선을 긋고, 좋은 의도인 척하는 경우엔 거리를 두되 적당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주려고 한다.
앞으로 내 삶에, 아니 영연이와 나의 삶에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만 가득하면 좋겠다. 결국 행복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 관계가 오래 가려면 서로가 도덕적인 상태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