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천개의 파랑

천선란 | 허블

by 자룡파파

이 책은 누구보다 강아지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보살피는 지인이 추천해줘서 읽게 됐다. 동물권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말만 듣고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읽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불편해졌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정복자’처럼 행동하는지, 그리고 그 부당함에 맞서 애써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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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45억 년의 역사에서 인간이 등장한 시간은 고작 몇십만 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최근 1만 년 사이 인간은 급격히 영향력을 키웠고, 지금은 인간을 제외한 야생 포유류의 비율이 4%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으로 동물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락거리로 소비하고, 인간 중심의 방식에 맞추길 강요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사실이 계속 목에 걸렸다.


물론 이런 문제를 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안다. “왜 잘못된 거지? 우리가 강한 쪽인데 마음대로 하는 거 아닌가?” 같은 시선도 존재한다. 또 생각과 감정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생명들도 아픔을 느끼고, 소리로 표현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인간처럼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생물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없다’고 말하는 건 너무 쉬운 결론일지도 모른다.


나는 강아지를 키운 지 4년이 됐다. 솔직히 키우기 전까진 이런 상황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강아지와 고양이 학대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미안함과 불편함이 더 크게 남았던 것 같다.


얼마 전 산책을 하다가, 한겨울 나뭇잎 더미에 몸을 파묻고 있던 새끼 고라니를 본 적이 있다. 추위를 피해 숨어 있다가 우리를 보고 놀라 도망가던 모습이 오래 남았다. 그때 내가 느낀 건 단순한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이곳에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깐이라도 마주한 순간이었을까.


그렇다고 내가 당장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안함을 잊지 않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정도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구 밖 다른 행성으로 쫓겨나는 쪽이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책 자체도 흥미롭고 술술 읽혀서, 천선란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런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만들어 준 이 책을 추천해준 지인과, 이야기를 써낸 작가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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